2020 선거 단상. 회고를 위한 기록
이번 총선을 겪으면서 들었던 몇 가지 생각과 고민을 기억을 위해 기록한다. 다른 분들과 최대한 겹치지 않게.
- '범여권'이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었던 표현 중 하나가 '범여권'이다. 여당(與黨 : 거드는 당)은 집권당의 다른 표현이고, 대통령제인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다. 따라서 여당은 오직 더불어민주당뿐이며, 위성정당을 공인하는 더불어시민당도 여당이라 해야 맞다(참으로 기가 막히는 상황이지만). 열린민주당, 정의당 등은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다. 수구언론에서 이걸 모두 싸잡아 '범여권'이라 칭하는 건 이해가 가지만(견제심을 불러 대동단결하라는 술책), 심지어 정치학자마저 이 용어를 쓰는 건 부당하다. 선거에서 여당과 연합했다는 의미(여당과 함께 하겠다는 뜻이므로)라면 약칭으로 쓸 수도 있겠으나, 나머지는 부당하다. 이번 선거판을 망친 핵심 용어가 바로 범여권이다.
- 정책이나 인물이 중요하다고?
내가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지만, 선거에서 정책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떤 정당이 그 동안 약속을 얼마나 잘 지켜왔고, 얼마나 지키려고 노력해왔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 현실적인 힘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힘이 없으면 약속을 지킬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정치 세력을 만드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유권자는 조금씩만 마음과 표를 주기 때문이다. 인물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정당을 결정하는 순간 그의 인물됨은 정당의 천막 언저리에 머무는 것이다. 가령 더불어민주당이 박주민을 후보로 받아들인 순간,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천막은 박주민을 포용하는 정도까지라도 볼 수 있고, 또한 박주민 역시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천막에 동의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경우 지역구 투표는 당만 보고 선택해도 좋다고 본다. 사실 지역구 공약이라는 게 정당 이름만 가리면 거기서 거기이다.
-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중도 보수정당이다. 역사적 형성 과정을 보면 스펙트럼은 중도좌파 보수에서 중도우파 보수까지 펼쳐져 있으며, 이를 통해 극우 수구세력을 밀쳐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수준의 스펙트럼을 가지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미래통합당이 영남 자민련으로 쪼그라들면, 더불어민주당은 분화될 여지가 생긴다. 나는 한국의 진보정당은 민주당의 분화에서 시작할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여러 실험이 있었지만, 진보정당은 모조리 실패했다. 현 단계에서 세대교체에 성공한 유일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밖에 없다. 정의당은 세대를 딱 한 번 교체했고(권영길에서 심상정으로), 그것도 벌써 오래 전 일이다(노회찬의 빈 자리가 너무 크다). 40대 당권 등 파격이 가능할까? 미래통합당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노인정이고 그냥 구리다.
- 감시와 협치를 말하는 자가 배신자다
전체로서의 국민은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180석이라는 힘을 실어줬다. 왜? 그 힘을 과감하게 쓰라고. 더 이상 발목 잡히지 말라고. 눈치 볼 필요 없다고. 그런데 왜 벌써 감시와 협치라는 말이 나오느냔 말이다. 반동이다. 입으로 뭐라고 좋은 말을 해도 그건 말이 아니라 오물이다. 5월 30일에 출범하는 21대 국회는 과감한 추진과 국민적 협조가 필요하다. 그거 한 번 해보자고, 이 코로나 와중에 집구석에서 기어나와, 이런 결과를 낸 거 아닌가? 김수영은 소비에트에는 있던 중용(中庸)이 4.19 정부에는 없다면서, 반동, 답보, 죽은 평화, 나태, 무위라고 꾸짖었다. 다시 그럴 수는 없다. 온 국민의 힘으로 부패를 청산하고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진도가 나가고 있으면 그냥 곱게 봐줘야 한다. 100년 넘는 친일파 잔재를 청산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니?
- 책임과 배려를 말하자
대한민국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 말은 사실 진술이기도 하고, 소망 진술이기도 하다. 둘 모두에 걸쳐있다고 하는 편이 맞으리라. 따라서 지구의 리더에 맞는 자세와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바로 주인의식이다. 그건 쟤가 잘 하나 보자,가 아니라, 내가 하겠다,는 자세이다. 이건 국민교육헌장스런 주장이 아니다. 작은 사업을 직접 경영할 때, 논문이나 글 한 편을 직접 쓸 때, 유투브 클립 하나를 손수 만들 때, 이럴 때의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평가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비평도 참여의 한 방식이겠지만, 비평을 위한 비평, 칸을 채우기 위한 먹물은 또 얼마나 많은가. 배려라고는 했지만, 자격이 없으면 가차없어야 정신 차린다. 가차없이 배려하자.
이제 일상으로 복귀할 때인가? 아직 코로나19가 있다. 더는 전과 같은 일상은 없을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연애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게 젊은 세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