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3권(72)
제2절 군련군의 상황
제1항 적의 상황
아군 방비 상황이 지극히 미약한 호남지구 일대를 단시일 내에 석권한 적 괴뢰 제6사단은 전주~하동 방면으로부터 진주로 침입한 후 마산을 목표로 8월 초순 그 사령부를 진주~마산 간의 청암리에 두고 동진 및 동북진을 기도하고 있었고, 동 괴뢰 제4사단은 진안 방면으로부터 거창을 거쳐 합천 방면으로 침입하여 동진한 후 대구 배후를 위협하는 반면 대구~부산 간의 국도 일대를 교란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 후 연합군 제25사단, 제24사단, 국군 민 부대, 국군 해병대 및 경찰대 등에 의하여 낙동강 서부지구 작전에 있어서 재기불능의 大 타격을 받고 그들의 모든 기도는 수포화되었다. 본 작전 기간 중 이 방면에서의 적의 타격은 주로 고성~통영~군북~진동~현풍~창녕 등의 각 지구 전투에서 그 전력을 대부분 소모시키고 막대한 손해를 받았다.
그러므로 적은 8월 하순경에 이르러 낙동강 중류 일대와 국군 정면의 최후 공세에 호응하여 제2사단 및 새로운 증강부대 괴뢰 제9사단, 제10사단, 제11사단을 대전 방면으로부터 이 전투지구에 투입하였다.
전 전선에 걸친 대부분인 적의 정황에 관해서는 다음 항에서 아군의 상황 진전에 따라 국부적으로 축차 기술하겠다.
제2항 아군의 상황
4283년 8월 2일 연합군은 한국전선에 있어서 남부 방면과 동남방을 담당하여 남침하는 적을 저지하고 있었다.
즉 대구 동촌 비행장으로부터 칠곡~왜관~선산 동북방 상곡동~낙동리~상주 북방 원동리를 연하는 선을 경계로 하여 그 이서를 연합군이, 그 이동을 국군이 각각 담당하였다.(부도 제37 및 제41 참조)
8월 초순 거대한 미증원파견함대는 한국에 상륙을 시작하였으며 로렌스 B. 케이시 소장이 지휘하는 아 연합군 제2사단의 선봉 부대는 8월 중순에 상륙할 사단 후속부대의 도착 준비를 위하여 이때부터 상륙을 개시하였고, 8월 3일 제5 독립 전투연대는 하와이로부터 한국에 도착 즉시 진주 전선으로 투입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에도와르 A. 크레이 준장이 지휘하는 제1해병대 전위부대가 중장비를 갖추고 켈리포니아 주 펜들톤 병영으로부터 장구 항해하여 부산에 도착하였고 8월 중순 맥아더 장군은 100명의 국군장병을 미군 중대 정도의 부대에 각각 분산 배속시켜 아군으로 하여금 언어, 지리의 안내 등 기타 제반 편리를 도모하게 하였다.
낙동강 선에 전략적인 최후방어선을 설치한 아군은 중대한 긴박성에 임하였으며 연합군이 적과 대전전까지 제반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용전을 거듭한 국군의 업적은 실로 지대하였고 상륙하여 전개하는 연합군에게 막대한 힘이 되었다.
용감한 국군은 지형, 기후, 언어 및 풍속에 일숙(逸熟)하며 승리에 대한 정열과 통일을 희구하여 용전하였다. 국군장병이 전반적으로 미식 무기와 전술적 지식의 결핍이 커다란 곤란이었으나 미군은 전투지대에서 용감한 국군에 최대한의 역할을 부여하였다. 미 증강군의 도착과 더불어 맥아더 장군 및 워커 중장은 제4기 작전을 맞이하여 국련군을 후퇴시켜 동남부에서 강력한 방어태세를 완비하고 최후 발악으로 망동하는 적을 분쇄하려 하였다. 북한 괴뢰군은 연장된 불안정한 보급로를 이용하고 있었으며 한반도 전체를 정복하려는 그들의 야욕은 점차로 희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