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3권(3)

in AVLE 일상6 days ago

제3항 아군 작전계획의 개요

이 기간 중의 아군의 작전은 국련 증원군의 전선 투입과 전반적 반격 태세의 완비를 기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를 득하고자 강력한 지연작전을 수행하는 데 있었으므로 김천 선까지는 전 전선을 연결하는 소위 연익방어작전(延翼防禦作戰)에 치중한 것이 아니고 중요지구를 중점적으로 계속 확보하기 위한 소위 중점 방어작전을 위주함으로써 열세한 병력과 불리한 지형으로서 적의 출혈을 강요하고 적의 남침을 최대한으로 저지하는 데 있었다.

즉 지형적으로 횡단선이 가장 장대하고 지역이 광대함에 반하여 방어병력이 희소하였던 호남지방의 북측 관문인 교통의 요충 대전을 최대한으로 확보함으로써 계속 상륙하던 국련군 주력의 왜관, 대구 이선 선으로의 진출을 엄호하여 호남지방에 침투 남침을 기도하는 적을 저지하고 아군 주력을 왜관, 대구 이동의 선으로 전진 낙동강에 연한 신방어선에 배치케 하여 부산 교두보 진지를 강력히 유지하는데 아군 작전의 중점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전 함락 후의 국련군은 태백준령에서 지리산으로 뻗은 호령산맥(芦嶺山脈)의 산간을 관통하는 경부 간선 도로에 의거 과감한 지연전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一) 미군의 작전계획

(1) 미 제24사단의 작전계획

경부 간선 도로에 연하여 대전포위를 기도하고 남침하는 적 주력을 대전 북방에서 저지하여 호남과 영남에 이르는 교통의 요지 대전을 유지함으로써 함창~예천 방면에 진출 중인 미 제25사단 및 상륙 중에 있는 미 제1기갑사단을 엄호하여 최대한으로 시간적 여유를 득하는데 작전의 주안점이 있었던 것이다.

(2) 미군 주력부대의 작전계획

7월 9일 한국에 상륙을 개시한 미 제25사단은 청주 혹은 충주방면으로부터 남하 대전을 포위하고 아군의 철수로에 진출하여 후측면을 위협하려는 적을 저지하고자 함창 및 예천 방면에 진출하고 7월 18일에 상륙을 개시한 미 제1기갑사단은 영동 방면에 진출하여 미 제24사단의 철수를 엄호하고 미 제24사단과 교대하여 서울~부산간 도로를 남하하는 적 주력을 저지하려는 계획이었으며 미군의 방어선은 일부 주력의 진출에 따라 대전 부근의 반월형으로부터 점차 동해안에 이르는 선 방어로 변경하려 하였다.

(二) 국군의 작전계획

(1) 작전계획의 개요

아군과 미군과의 전투지경선은 육본 작명 제44호(부록 제5 참조)에 의하여 병천리~오성리~부강리를 연속하는 선에서 금강 상류에 연하여 동서로 분할 되었으며 아군은 국련군의 동부를 담당하여 중앙선 및 동해안선으로 남침하는 적 부대를 저지하고 대구, 부산 방면을 포위하려는 적의 기도를 분쇄하고자 병력을 축차 낙동강의 최후 방어선에 철수하여 이 주저항선에서 적을 섬멸할 전기를 포착 일대 반격전으로 전이할 계획이었다.

(2) 아 제2군단의 창설

아 제2군단은 국본 일반명령 (육) 제14호(부록 제3 참조)에 의거하여 단기 4283년 7월 12일 영시 부로 창설되어 제6사단 및 제8사단을 각각 이에 예속되었다.

제2군단의 창설 목적은 아 제1군단 서측의 사단을 규합하여 통일된 전투력으로써 적의 남침을 저지 격멸하려는데 있었으며 육본 작명 제42호(부록 제1참조)에 의거 제6사단 및 제25연대 제1대대를 통합 지휘한 제8사단장이 동 군단장의 지휘하에 들어갔다. 이로써 제1, 제2군단 간의 전투지경선은 제6사단과 제1군단의 전투지경선으로 결정되었다.(부록 제1 참조)

제4항 정부 이동 및 육군본부의 대구 이동

대전이 적의 점령하로 들어가자 정부는 부산으로 이동하는 일면, 각부의 연락 기관을 대구에 두었으며 육군본부도 이에 수반하여 전략적 견지에서 7월 13일 육본 작명 제41호(부록 제2 참조)에 의거 정보국, 작전국 및 통신감실의 일부는 김천에, 그 전진지휘소를 두고 기다 모든 국, 감실은 대구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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