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3권(45)

in AVLE 일상17 days ago (edited)

제2절 전투 경과의 개요

제1항 국련군의 대전, 김천 간의 철수 개요

7월 20일 여명(黎明)을 기하여 적은 전차 부대를 선두로 대규모의 대전시 공격을 개시하고 아군의 보병 및 포병 진지를 유린(蹂躪)하였다.

미 제24사단은 예하 각 연대 및 포병부대에 대하여 7월 20일 이른 아침 철수 후퇴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제19연대와 제34연대는 이 돌변한 상황에 따라 새로운 방어진지를 설정할 지점의 결정도 없이 막연히 주저항선으로부터 이탈하여 대전시로부터 이동을 개시하였다.

미 제19연대는 사단 작명에 의거 제2대대를 미 제34연대에 배속시켜 해 연대를 지원하게 하고 기타 부대는 영동으로 철수한 후 철로와 자동차로서 김천 북방 약 5마일 지점에 횡좌(橫座)한 천연적 방어진지로 향하여 일대의 유리한 지형을 점령하였고, 제34연대는 7월 20일 일몰시 미 제21연대장으로부터 대전을 포위한 적을 분쇄하고 아군의 혈로 타개를 위한 특수임무부대 및 전차 1개 소대의 지원을 얻어 포위망을 돌파하고 대전~세천 간의 터널(1047~1494)를 통과하자 대전시를 포위하고 있던 적은 대전시로부터 통하는 모든 도로에 장애물을 이미 설정하고 아군의 철수로를 봉쇄 차단하였으며 이 터널에서 아군을 대기하였으므로 미 제34연대 및 제19연대 일부는 적으로부터 기습을 당하여 대혼란을 일으켜 그 일부의 부대는 부득이 단절 당하고 말았다.

7월 20일 일몰 후 미 제21연대에서도 전초부대의 철수를 명령하고 야음을 이용하여 철수작전을 개시하였다. 그리하여 7월 21일 이른 아침 미 제24사단은 아군이 철수 연후의 도로와 철도 및 터널은 적에게 주는 이용 가치가 지대함으로 폭파할 것을 명령하였다.

계속 남침하는 적은 아군의 맹렬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증강하여 강습해 왔으며 아군은 지연전을 감행하면서 축차 영동 방면으로 철수하였다. 한편 미 제21연대 제1대대는 영동의 서남방(1069~1469)에 도로 장애물을 설정하여 적의 추격을 지연시켰다. 이때 미 제19, 제34연대의 장병 300명이 영동 남방 약 15마일 지점에 있다는 보고에 접하였다.

7월 21일 일몰 전 미 제21연대는 야간을 이용하여 미 제8기갑연대와 교대할 것을 명령 받았으나 22일 12:00까지 제8기갑연대와 더불어 현진지를 고수한 후 철도 혹은 자동차로서 영동으로 향하였다.

한편 미 제34연대는 각 대대를 영동의 낙오자 수집처에서 재편성한 후 (1070~1469)선으로부터 동북방 (1068~1474)선까지를 방어할 것을 명령받아 7월 21일 17:00에 김천 동북방 6마일 지점에 철수 이동하였다.

또한 사단 포병대는 7월 22일 15:00 대전시를 이탈하여 철수를 개시하였으나 각 도로에 구축한 장애물과 적의 소화기 및 기관총의 사격에 다대한 손실을 보았다. 즉 미 포병대 예하 제13 및 제63포병대대는 성공리에 이 지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으나 제11포병대대는 모든 장비와 탄약을 유기하였다. 7월 21일 포병대 본부 및 동부 중대는 영동 동방 4~5마일 지점으로 이동하여 제63 야포대대와 합류하고 제13 야포대대는 영동 서방의 신 진지로 이동하였다.

7월 23일 13:00 미 제24사단 포병대는 제11 야포대대 B 중대를 제외하고 전부 미 제1기갑사단 제8기갑연대에 배속되어 동일 20:00 왜관 부근의 새로운 진지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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