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1(화)역사단편168. 독사신론讀史新論(49) 새로운 눈을 떠야한다.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 것이다.
< 출처: 단재 신채호, 讀史新論[독사신론]>

<단어출처: 다음, 네이버사전>

아무리 글을 읽어봐야 소용없다.
기준을 고치는것이 먼저다.
수당.JPG
그림은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도를 표시한 것이다.
우측의 2번은 수나라의 수도였던 낙양
좌측 1번은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 오늘날의 서안)이다.
대륙의 두 나라와 우리의 고구려가 어디서 전쟁을 했는지는
차츰 밝혀야 겠으나,
그 나라들의 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당태종 이세민의 집은
북경이 아니라,
섬서성의 귀퉁이였다.
북경에서 이세민이 살던 장안까지는 900km가 넘는 거리다.
소위 2천4백리다.

오늘도 선생의 글을 읽어간다.

이세민이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선동하면서
연개소문을 비난하는 욕설을 퍼부었는데
고려의 김부식은 그걸 가져다가
연개소문과 고구려사를 썼다.
그걸 곧이 곧대로 수용하면 바보 아닌가?

嗚乎(오호)라,
彼 盲眼 歷史家(피 맹안 역사가)가 其 鴻濛筆法(기 홍몽필법)으로
我 絶世英雄(아 절세영웅)을 埋殺(매살)하여
我 數千年 後人(아 수천년 후인)으로 하여금
其 眞面目(기 진면목)을 莫覩(멱도)케 하였도다.

彼 支那人(피 지나인)은
壹次 泉蓋蘇文(일차 천개소문)의
霹靂手腕下(벽력수완하)의 震驚(진경)을 適(적)한 以後(이후)로
數千餘年(수천여년)을 餘悸(여계)가 未定(미정)하여
談論(담론)의 餘(여)와 文字의 間(간)에
泉蓋蘇文(천개소문)의 歷史(역사)를 相傳(상전)하되
其 形貌(기 형모)는 天人과 如히 仰(천인과 여히 앙)하며
其 兵略(기 병략)은 鬼神과 如히 驚(귀신과 여히 경)하는지라.

是以(시이)로 三尺 虬髯의 風彩(삼척규염의 풍채)는
唐人 太平廣記(당인 태평광기)에 畵出(화출)하였으며,
非常英雄(비상영웅)의 功德(공덕)은
王氏[安石(왕씨안석)] 經筵講論(경연강론)에 讚美(찬미)하였으며
旌旗壁壘 四十里(정기벽루 4십리)의 氣勢(기세)는
柳公權 雜著(유공권 잡저)에 揭現(게현)하였으며
高句麗大將 蓋蘇文(고구려대장 개소문),
去屠長安壹瞬息(거도장안일순식),
今年若不來進功(금년약불래진공),
明年八月就興兵(명년8월취흥병)의 快詩(쾌시)는
如蓮居士 稗談(여련거사 패담) 에 載有(재유)하였으니,
此等 說(피등 설)이 我 泉蓋公(아 천개공)의 實蹟(실적)되는 與否(여부)는
妄斷(망단)함이 不可(불가)하나,
抑亦 彼國 當時(억역 피국 당시)에
泉蓋公(천개공)에게 驚倒(경도)한 壹斑(일반)은 可推(가추)할지로다.
彼 李世民(피 이세민)의 眼前(안전)에 納媚(납미)하던 唐 史氏(당 사씨)는
비록 其壹手(기일수)로 萬目을 掩(만목을 엄)하여
國恥(국치)를 諱(휘)하였으나 畢竟 不得(필경 부득)하였도다.
<출처: 讀史新論(독사신론)>

鴻濛筆法(홍몽필법):어지럽고 혼란스러운 필법
埋殺(매살): 묻어서 죽임
揭現(게현)
莫覩(멱도): 보지 못하도록 덮다
震驚(진경): 떨며 놀람
餘悸(여계): 여운, 여파
餘(여): 남기다
形貌(형모): 외모
仰(앙): 우러러보다
太平廣記(태평광기): 북송 태종의 지시로 엮은 소설집
<한(漢)~북송 초기>까지의 소설류를 광범위하게 수집한 것이다.

王氏[安石(왕씨안석)] : 송나라의 정치개혁을 추진했던 사상가
柳公權(유공권): 당나라의 정치가(778~865)
去屠(거도): ~에 가서 죽이다.
旌旗(정기): 깃발
如蓮居士(여련거사): 속세를 떠나 살아가는 선비
納媚(납미): 환심을 사려고 아첨함
掩(엄): 가리다
諱(휘): 숨기다
抑亦(억역): 아마도
驚倒(경도): 몹시 놀라 넘어짐
壹斑(일반): 하나의 흔적

(옮기면)

아아,
저 눈먼 역사가들이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글을 써서
우리의 절세 영웅을 묻어 없애버려,
수천년 후사람들로 하여금 영웅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저 지나인들은
연개소문의 번개와 같은 솜씨에 한번 크게 혼이 난 이후로
수천 여 년 동안 그 여운을 진정하지 못하여
말이나 글로써 연개소문에 관한 역사를 서로 전하여 왔는데,
연개소문의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과 같이 우러러보며
그 군사 전략은 귀신과 같이 놀랍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3척에 이르는 용같은 수염을 가친 풍채로
당나라 사람의 <태평광기>에 그려냈으며,
비상한 영웅으로서의 공덕은
'왕안석'의 <경연강론>에서 찬미 하였으며,
깃발과 보루가 40리에 펼쳐진 기세는 '유공권'의 <잡저>에 나타나고 있으며,

"고구려 대장군 연개소문이
장안을 순식간에 쳐 들어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갔네.
금년에 쳐들어오지 않으면, 내년 8월에는 병사를 일으킬 것이네 "라고 한
호쾌한 시가 여련거사의 <패담>에 실려 있으니
이러한 말들이 우리 연개소문의 실제 자취 인지에 관해서는
단정을 내리지 못하겠으나,
아마도 그 당시 중국인들이 연개소문에게 놀라 넘어질 정도였다는
하나의 흔적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저 이세민의 눈앞에서 아첨하던 당나라 역사가들이
비록 한손으로 만 사람의 눈을 가려 나라의 부끄러움을 숨기려 하였으나
결국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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