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검사 時歷檢査+Movie 100] 해동밀교를 찾아서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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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감을 주는 밀교에 대한 말들은 쉽게 사람들을 현혹한다. 공중 부양을 한다던가 영생불사하며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신비한 능력으로 사람을 치료하거나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나 힘에 혹해서 밀교에 발을 들이밀려는 이들을 위해 그들은 자신을 감추어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그러므로 더욱더 신비로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존재하는 힘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은 빡빡한 현실을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 극복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신비는 존재하지 않을 때에야 신비롭고 또 강력하다. 그것이 세상에 풀어지면 그것들은 한낱 항생제 한방만 못한 비리비리한 힘으로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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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퇴마록을 읽지 않았다. 그 세대도 아니고. 그것이 유행하던 때에는 이미 마법에 입문했던 터라 가공이 아닌 현실이 더 짜릿했단다. 천만 부가 팔렸다며? 가공할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IMF 시대를 관통하는 텍스트였으니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꼬. 그 엄혹한 자본의 힘에 굴복한 한반도의 청춘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삼십 년이 흘렀다.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하여 이제 사람들은 삐삐도 아닌 개인 전화기를 들고 다닌다. 그 속에는 TV도, 내비게이션도, 카메라도 들어 있다. 천지가 개벽하는 데 밀교의 수도자들은 아직 장풍도 쏘지 못하고 있다. 면벽수행을 하면 카톡 소리에 초연해질 텐가. 절식을 하면 주사 몇 방에 몇십 킬로를 감량할 수 있을까? 드러난 힘, 연구된 힘이 숨겨진 힘, 연마된 힘을 초월한 지 오래니, 밀교의 수도승이라고 축지법으로 달려봐야, 테슬라 자율주행차에 누워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는 청춘들에게는 뭐 하는 건가 싶을 뿐.



그럼에도 사람들은 비밀에 다가가고 싶어 한다. 낮말도 밤말도 디지털 로그에 모두 기록되는 세상에서, 비밀은 어떻게 만들고 또 어떻게 감출까. 포렌식 한 방이면 모든 것을 들통 낼 수 있는 세상에 여전히 비밀이 있고 숨겨진 것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의 속이겠지.



사람 속을 알 수가 없어. 비밀이 그곳에 모두 담겨 있으니 우리는 디지털 포렌식으로도 밝힐 수 없는 그것에 다가가려고 '너의 비밀'을 궁금해하고 또 궁금해한다. 그러나 그 비밀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며, 하늘도 모르고 신도 모른다. 그리하여 힘이 그곳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의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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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밀교海東密敎'는 <퇴마록>에 등장하는 가공의 종교이다. 가야 수로왕의 인도 출신 왕비 허황옥 시대에 인도에서 들어온 밀교의 현지화된 교단이라는 설정이다. 한국화되었다니 인도의 그것은 어떠한지 모르나, 원한과 복수의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오컬트 무협 장르의 이것은 마치 <귀멸의 칼날>을 연상시킨다. 누가 그러던데 일본은 자연재해가 많아서 귀신들이 왜 나만 죽고 너는 살았냐를 억울해하는데, 한국의 그것은 온통 개인적인 복수와 원한이 베이스라 사연을 잘 듣고 풀어주면 조용히 물러간다고. 귀신의 지정학이라니. 그리하여 하나 같이 한국의 무당들은 잘 풀리지 않는 인생에게 조상 탓을 해댄다. 억울하게 죽은 조상들이 들러붙어 네 인생이 그 모양이라고. 그러니 굿을 해야 한단다. 무슨 굿을 할까? 돼지머리, 소머리 피를 뿌리고 떠나달라고 간청을 하면 조상의 원한이 풀어질 텐가. 원한이라면 조상까지 갈 것도 없이 풀리지 않는 당사자의 것으로도 태산을 이룰 텐데, 그것도 그대로 쌓여 후손들의 인생을 꽁꽁 묶어댄다면 그 카르마는 무엇으로 해소가 가능하단 말이냐. 그러나 작용은 반작용을 부르고 물극은 필반이니. 차라리 필요한 것은 더 깊은 절망과 더 깊은 원한이 아닐까? 바닥을 치지 않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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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오컬트의 모든 시나리오는 굿으로 풀리는 일이 없고 오로지 바닥을 향해 달려간다. 반드시 목숨을 걸고 바닥을 치고 나서야 해결책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좋다. 원한과 함께 공덕도 동시에 쌓는 일이니. 그래서 비장해지는 것이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니까. 심지어 나라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 이 지독한 오컬트의 나라는 심지어 조계종의 최고 실력자였던 총무원장을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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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불타던 날, 탄핵이 시작된다.'



조계종의 총무원장이라면 카톨릭의 김수환 추기경, 기독교의 조용기 목사쯤 되겠다. 게다가 이제 막 퇴임한 실세 중의 실세로 윤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단다. 사찰 국립공원 입장료 징수 문제로 저쪽과 한바탕한 이 실세는, 좌파와의 전면전을 선언하고 대놓고 윤을 밀었다는데. 수행이 부족했는지 사람을 잘못 보았나 보다. 일등 공신의 논공행상에 소홀했다며 원한을 품은 채로 이번에는 저쪽 편의 대북송금 관련 건에 관여했다나? 그러다 도대체 그 속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여차저차하다가 그냥 자진을 당해버리고 만 것이다. 분신자살을 한 것이다. 중이 절에다 불을 질러서 말이다.



'소신공양'이라고 자기 몸을 태워 부처에게 바치는 이 행위는 참으로 밀교스럽다. 마치 <퇴마록> 속 괴물로 변해버린 서교주의 마지막과 흡사한 이 장면에는 윤도 명도 걸쳐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어른거리는 한 여인도. 사람의 마음에 관한 일이라 그것은 비밀이고 마법사인들 그 속을 알 턱이 없으나, 천만 부가 팔린 소설보다 더 비밀스러운 현실이 한반도에 전개되고 있으니 다시 조상 탓을 해야 할까? 그러니 이 오컬트 국가의 국민이라면 죽기 전에 반드시 복수를 잊지 말거라. 그 한을 품고 귀신이 되어 후손들을 옥죄는 일일랑 이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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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을사년의 하늘은 연초부터 붉게 타올랐다. 이미 많은 사고가 있었으니, 올해의 여름은 얼마나 뜨거울지 가늠을 할 수가 없다. 조상님들의 원한 때문에 그런 거라면 굿이라도 해서 잘 달래 보겠건만, 산 사람들의 원한은 현재진행형이니 무엇으로 이를 막고 풀겠는가. 소신공양으로 바쳐진 총무원장의 그것으로도 달랠 길이 없고, 도리어 그의 원한이 한반도에 야차를 풀어버렸다면 이놈들이 해치는 놈이 범인이리라. 나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아야지. 대가를 치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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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신부가 믿는 신은 비밀스러운 힘을 주겠다 유혹하는 악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월급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말씀으로' 연금이 끊길까 두려워, 직이 날아갈까 두려워, 이편에도 섰다 저편에도 서는 나랏님들의 적나라한 처세 앞에서 필요한 것은 해동밀교의 신비한 힘이 아니라 삼십 년을 견뎌낸 말씀, 이야기의 힘이리라. 천만 부라니. 게다가 삼십 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것의 애니메이션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장을 열어버렸으니. 하이텔에 연재되던 그것이 말이다.

스팀잇에 연재되던 그것도 말이다.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96. 퇴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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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ours ago 

마법으로 말아주시는 글이 너무 맛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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