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바람 계곡의 라총수
뒤집힌 세계는 없는 세계도, 없어져야 할 세계도 아니다. 그것은 의식의 반대편, 삶의 저편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처럼 분리될 수 없는 나의 세계이다. 나의 세계의 일부이고 의식으로 감지할 수 있는 세계보다 크다. 많이 크다.
자석을 반으로 잘라도 N극과 S극으로 분리되지 않고 다시 N극과 S극의 극성을 되찾듯, 뒤집힌 세계 역시 아무리 부정하고 외면해도 어디로 가지 않는다. 그대의 밤과 꿈을 장악한 채 악몽으로 출현하고 때론 대낮에도 불쑥불쑥 나타나 평온한 삶을 마구 파헤쳐 놓는다. 억압되었던 분노의 모습으로, 감춰두었던 욕망의 모습으로. 투사된 그것은 내 주위에 빌런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은 연결되어 있는 나의 뒤집힌 세계의 억압을 따라 내게 날카롭고 탱탱한 촉수를 꽂고는 에너지를 빨아대는 것이다.
인생은 무의식의 자기실현이라는 현자의 말을 삶에서 풀어내려면 우리는 꿈을 살아야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억압과 대면해야 한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다. 피하고 싶고, 대면할 용기가 없어 뒤로 감추어 두었으니 어디에 놓았는지 찾기도 쉽지 않고. 그것을 끄집어내 밝은 태양 아래 두는 일은 자신을 부정하는 일 같아 선뜻 마음이 나서지 않는다. 그래도 그것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도망쳐선 안 된다. 마주해야 한다.
뒤집힌 세계에는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무의식의 내면은 온통 어두운 것만이 아니다. 그건 살아 온 인생의 이면이니 페르소나에 갇히지 않은 건강한 내면을 가꿔온 누구라면, 모험과 만용, 도전과 몸사림의 경계를 거침없이 왔다갔다 한 삶의 기억을 소유하고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어두운 억압과 뒤틀린 욕망이 갇힌 냄새 나는 지하실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과 아슬아슬한 모험담이 가득한 'Stranger Things'의 저장소일 것이다. 그대의 뒤집힌 세계는 어떠한가? 거미줄과 곰팡이가 가득한 지하 감옥인가? 스릴만점의 이야기보따리인가?
그리고 관계들,
그 곰팡이의 정체도 이야기의 정체도 근원은 관계이다. 상처를 남기는 것도 추억을 남기는 것도 관계들이다. 인간의 무의식은 온통 관계에 관한 기억들로 가득하다. 그것이 어떤 색이고, 그것들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는 모두 자신의 관점에 달려 있다. 아름답고 그리운 기억들인지,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인지. 그러므로 뒤집힌 세계와의 전쟁은 해석 투쟁이다. 좋은 기억들을 현재로 가져와 에너지의 근원으로 삼는 일은 쉽지만,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스릴만점의 모험담으로 바꾸는 해석 투쟁은 현재와 연결되지 않으면, 현재의 삶의 방식, 태도, 선택과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을뿐더러 도리어 발목을 잡아채는 괴물의 촉수가 되어버린다.
그대의 뒤집힌 세계는 어떠한가? [스팀시티]는 매번의 여름, 그 뒤집힌 세기로 그대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뒤집힌 세계를 마주했다. 서로의 뒤집힌 세기를 목격했다. 아름답고 참혹했다. 가슴 아프고 환멸스러웠다. 할 수 있는 건 계속 춤을 추는 일뿐이었다. 뒤집힌 세계에 자신을 가둔 이들이 현실로 돌아오려면 제 발로 친구들을 향해 달려 나오는 수밖에 없다. 친구들은 그저 노래하고 춤을 출 뿐이다. 열린 포탈이 그만 닫히지 않도록 수피처럼 계속 회전하는 일뿐이다.
"그래, D&D 밖에서는 난 영웅과 거리가 멀어. 위험을 감지하면 냅다 튀기 바쁘거든. 내가 그런 인간인 거 이번 주에 알았지."
"너무 그러지 마."
"봐. 내가 따라온 유일한 이유는 저 친구들이 널 바로 뒤따랐기 때문이야. 혼자 남아 있기 너무 쪽팔렸어. 1초도 망설이지 않더라. 단 1초도. 바로 뛰어들었어. 너희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너라면 다시 잘해볼 거야. 그건 너무나 분명한 진짜 사랑의 표시였거든."
친구는 1초도 망설이지 않는다. 망설이기는커녕 하이파이브를 치는 것이 친구다. 같은 곳을 보고 있을 테니. 그리고 우리는 이미 보았다. 전 세계 100개 도시에 세워진 우리들의 시공간. 뒤집힌 세계와 깨어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된 마법의 도시를.
오늘 라총수는, 그 꿈이 시작된 바람 계곡으로 다시 들어간다. 바람 계곡은 라총수의 뒤집힌 세계일까? 진짜 현실일까? 어디가 라총수의 현실이고 어디가 라총수의 뒤집힌 세계인지 알 수 없다. [스팀시티]의 총수에게는 그것이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들, 친구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 라총수의 세계이고, [스팀시티]는 그 두 세계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된 세계이니까.
그러니 함께하는 이들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뒤따르는 친구들이다. 남는 이들은, 망설이다 닫혀버린 포탈 앞에 서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뒤집힌 세계의 몬스터들이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람 계곡의 라총수는 바람의 언덕에 올라 매일 아침 주문을 외우겠다고 했다. 그것은 그대를 부르는 주문이다. 뒤집힌 세계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그대에게 여기라고, 바로 이곳이라고, 너의 진짜 세계로 어서 뛰어오라고 손짓하는 마법의 주문. 그리고 신과 거래하는 주문이다.
"I'd get him to swap our stranger city!"
And if I only could
I'd make a deal with God
And I'd get him to swap our places.
Say, if I only could
Be running up that road
Be running up that hill
With no problems.
If I only could, be running up that hill.
If I only could, be running up that h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