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호랑이가 너를 잡아먹을 거야
어떤 유튜버가 업業의 본질에 대해 논하며, 예전에는 포장마차와 술집들 사이에 새벽까지 여는 빵집이 꼭 하나씩 있었는데, 이 때에 이 빵집이 추구하는 업의 본질은 '죄책감'이라고 하더라. 고단한 사회생활을 술로 푼 아버지들이, 잠들어 있을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을 담아 한 봉지 사 들고 들어가게 만드는 '죄책감'.
업業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춘자에게 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비지니스를 넘어 '삶의 방식'이 아닐까? '이렇게도 살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대안이나 답이 아니라, '세상에 어떤 이들은 이렇게도, 아니 이렇게밖에 살 수 없어.'라고 말해주는 어떤 '삶의 방식', '운명' 같은 .
그 방식대로 살아온 춘자의 흔적이 [스팀시티]의 여기저기에도 많이 새겨져 있다. 책을 만들고, 지구를 여행하며, 이탈리아에서 화장품을 들여다 팔기도 하고, 인도 산골짜기에서 양털을 가져다 장갑과 모자, 목도리를 만들어 팔기도 한다. 서울에서는 플리마켓을 하기도 했는데 심지어 파리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올해는 아예 인도의 산장호텔에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해 버리기까지 했으니. 파리, 파리라니. 파리에서 전시회를 하다니! 게다가 호텔까지. 재벌 3세냐?
그런데 그 전시회에 참가한 어떤 작가는 아예 파리로 유학을 가겠다고 삶을 전환해 버렸고, 전시회에 방문한 파란 눈의 프랑스인 관람객은 그 인연으로 이번 전시회 참여 작가가 되어버렸다. 시인으로. 자신의 나라에서도 발표해 보지 못한 시를, 세계에서 가장 핫한 나라이자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국인 한국에서 발표하게 된 것이다. 브라보!
춘자의 회전하는 삶의 방식에 자꾸 사람들이 휘말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진작에 휘말려 인생이 한참이나 나아갔고, 다른 누군가는 멀찍이서 위험스럽게 바라보고, 또 어떤 누군가는 휘말릴세라 도망쳐 버렸다.
춘자는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한 번 신으면 영원히 춤을 멈출 수 없는 빨간 구두를 신었기 때문이다. 양사나이가 건네준 빨간 구두는 춘자에게 재앙인지 축복인지 알 수 없다. 그건 춘자도 아직 모르는 듯. 그러나 그의 인생은 얼마나 순탄한지(?) 역술가도 부러워할 만한 팔자를 가지고 태어나, 그대로 살고 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물론 한 가지가 빠져 있긴 하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돈'. 그것만 없다. 그렇다고 원하는 것을 못 한 적은 없다니. 돈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을 신남과 행복으로 꽉꽉 채웠다면, 양손 무겁게 돈을 들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생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춤추는 인생은 또한 얼마나 가혹한지, 결국 춘자는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돈이 조금 떨어졌다던가, 요즘 지갑 사정이 좀 거시기한 그런 수준이 아니다. 빈털터리란 말 그대로 빈털터리. 현대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될까 두려워 노예 신세를 놓지 못하는, 바로 그 상황을 매번 넘고 또 넘는다. 아마도 너라면 포기했을 그 상황에도 춘자는 춤추기를 멈추지 못한다. 그건 오기나 근성, 깡 같은 것이 아니라 양사나이가 베푼 저주이자 축복이다. 덕분에 춘자는 매번 인생을 건다. 매번의 도전에 언제나 목숨을 건다. 굶어 죽어도 해야된다며. 그러니 이쯤 되면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운명. 그러니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춘자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타협이라든지, 홍보나 마케팅이라든지, 적당한 유도리라든지 할 것이 없다. '노오오오오오옵!' 처음에는 성향이나 취향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운명이었다. 춤추기를 멈출 수 없는 자의 운명. 그 고단한 삶을 너무도 잘 아는 마법사는 탄식을 하며 슬며시 반 발짝을 빼 본다. '고마 해라, 900년 했으면 됐다.' 첫 번째 인간 생을 사는 전생의 호랑이는 짜릿하고 신이 나겠지만.
운명의 날줄에 얽히는 것은 돈도, 배경도, 명성도 아니다. 오로지 인연의 씨줄만이 춘자의 매트릭스를 촘촘하고 단단하게 직조한다. 거칠기 짝이 없는 운명의 날줄에 참으로 신기한 인연들이 찾아든다. 이번에는 지은이들이었단다. 계속 나타나는 지은이들, 지은 이들.
그러니 춘자는 괴팍한 게 아니다. 그의 신나는 인생을 직조해 온 운명과 인연의 씨줄과 날줄이 너무도 촘촘하고 단단해서 어디로 움직일 공간이 없는 것이다. 융통성 따위는 없이. 관대한 마법사는 그 지독함에 혀를 내두르지만, 해 온 게 마법질이라 춘자의 회전반경을 벗어나기란 글러버렸다. (아니 마법사의 회전반경에 휘말린 춘자인가? 춤추는 인생들이란 이리저리 휘말리기 마련이지만)
그러니 멀찍이서 바라만 보는 그대는 접근을 삼가라. 인생 조지는 수가 있다. 다만 용기가 생겨나거든, 태산만 한 용기가 가슴을 못살게 굴거든 양사나이를 만나라. 올 가을엔 인도 산골짝까지 기어 올라가지 않아도,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숲 사이 고즈넉한 동네 한옥에 양사나이께서 직접 행차하시었다니. 이 얼마나 복된 소식인가!
마법사는 얼씬도 않을 테니 마주칠 까 두려 말고, 주인장 춘자도 상주하지 않는다니 미리 약속하지 않으면 만날 일은 없단다. 그러니 염려 말고 돌핀호텔 406호에 몰래 들러서, 슬며시 양사나이를 만나라. 그러나 혹여라도 그가 스텝을 밟자며 손을 내밀고서 이렇게 말하거든,
당신은 분명히 지쳐 있어.
지쳐서 겁을 먹고 있어.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어.
무엇이고 모두 잘못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발이 멈춰버리지.
...
그러니까 발을 멈추면 안 돼.
아무리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데 신경 쓰면 안 돼.
제대로 스텝을 밟아 계속 춤을 추란 말이야.
그리고 굳어버린 것을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풀어나가는 거야.
아직 늦지 않은 것도 있을 테니까.
쓸 수 있는 것은 전부 쓰는 거지
최선을 다하는 거야.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당장 도망쳐라! 그의 손을 단호하게 뿌리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라. 아니면 '쓸 수 있는 것은 전부 쓰게' 된단다. 빈털터리가 된다 이 말이야. 춤을 춘다는 건, 멈출 수 없는 춤을 춘다는 것은 발가벗겨진다는 얘기니까. 몸에 지닌 모든 것이 원심력에 날아가게 된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자유해지지만. 그러니까 운명이 아니면, 발이 얼어붙어서 한 발짝도 움찍일 수 없는 운명이 아니면! 도망쳐야 하는 거야. 너에게는 도망칠 힘이 남아돌 테니까.
그리고, 다신! 얼씬도 하지 말아라.
호랑이가 '어흥!' 하고 잡아먹을 테니.
<dolphin hotel room number 406>
날짜 _ 20241025 - 20241103
추신 :
혹여나 죄책감이 들거든
빵 한 봉지 사다 놓게 가게나.
춘자는 던킨이라네.
[위즈덤 레이스 + City100] 102. Dolphin Hotel in Seoch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