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고등학생 때는 매년 전주 국제 영화제에 갔다. 그래봤자 학교 근처의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영화의 거리로 공연을 보러 간 것이 전부지만, 가끔은 공연을 본 후에도 같은 장소에서 이어지는 야외 상영을 그대로 남아 보는 일도 있었다. 5월의 선선한 날씨, 교복을 입고 늦은 밤까지 사람들과 바깥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기억은 내게 오랫동안 낭만적인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전주를 떠나 있을 때도 꾸준히 영화제를 찾았다. 그 사이 언제부턴가 영화제에서 더는 야외 상영을 하지 않았다. 그 해의 가장 주목받는 인디 뮤지션이 오던 공연도 유료로 바뀌거나 대폭 축소되었다. 아쉬웠지만 나도 그때쯤에는 부대행사보다 영화제 참석 자체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영화제 작품을 보는 것으로 만족을 대신했던 것 같다.
올해 영화제 시간표를 짜다 어린이날을 기념해 <아기공룡 둘리>를 전주돔(영화제를 위해 임시로 만든 가건물)에서 무료로 상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답답한 실내에서 영화를 보고 싶진 않았지만, 사람들과 늦은 저녁 함께 보던 야외 상영의 기억이 떠올라 예매했다.
관객은 대부분 아이가 있는 가족이었다. 예상대로 돔은 어둡고 답답하고 좌석도 불편했다. 영화가 시작된 후로도 계속 아이들이 입장하거나 돌아다녀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영화는 촌스럽고 지루했다. 언젠가 봤던 기억이 나 중간엔 잠깐 졸기도 했다.
그렇지만 영화가 끝나고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환한 표정으로 돔을 나가는 것을 보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뭉클함을 느꼈다. 엄마가 봤을 영화, 내가 봤던 영화, 또 나보다 한참 어린아이들도 볼 수 있는 영화. 나는 영화제 내내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작품을 보기 위해 애썼지만, 예술의 본질은 이런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과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