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물, 바람, 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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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요에서는 부드럽고 찰진 흙이 물과 섞이고, 바람과 불의 도움을 받아가며 옹기로 탄생된다. 옹기장의 섬세한 손이 만들어내는 푸근하면서도 소박한 옹기. 옹기는 자신이 겪은 그 모든 시간, 그리고 자신을 구성한 흙, 물, 바람, 불의 기억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옹기는 우리 전통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기후와 자연환경에 따라 지역에 맞게 조금씩 특색 있게 발전해왔다. ‘숨을 쉬는 그릇’으로 부각되며 최근 더욱 관심을 받고 있는 옹기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쓰임새를 갖고 있어 우리네 부엌과 방을 비롯해 실생활 곳곳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한국인을 닮은 옹기
고향과 어머니를 연상할 때 우리는 개인적인 경험이 없더라도 항아리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정갈한 장독대를 떠올릴 만큼, 옹기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생활필수품이었다. 김장철이면 항아리를 묻기 위해 땅을 팠던 기억, 추운 겨울날 묻혀있는 항아리에서 꺼낸 시원한 동치미 국물의 기억, 소나기가 쏟아지기라도 하면 급하게 장독대로 달려 나가 항아리 뚜껑을 덮던 개인적인 기억들은 또 어떤가. 마치 흑백필름 속의 한 장면처럼 가끔 한 자락씩 꺼내 볼 수 있는 아련한 추억이 된다.
항아리를 비롯한 옹기는 생김새부터 한국인을 닮았다. 푸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소박하다. 넉넉한 인심을 담고 있는 듯하고, 분명 아낌없이 줄 듯 한 모양새이다. 떡 벌린 입, 풍만한 어깨, 완만한 몸을 가진 항아리는 대부분 저장용기. 된장, 간장 등의 장항아리와 김치 항아리, 물, 쌀 등 우리 식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래서 옹기는 한국인에게 일용할 양식이자 목숨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으리라. 옹기는 크기나 용도에 따라서 다양하게 불리어졌는데, 푸레독, 중두리, 오가리, 젓동이, 소줏고리, 시루 등 이름부터 정겹기 그지없다.
옹기의 우수성
여주는 예로부터 도자기가 유명했다. 옹기는 도기의 일종으로 잿물을 발라 1200도 정도에서 굽는 것을 말한다. 과학적으로도 입증될 만큼 뛰어난 옹기의 통기성과 방부성은 발효식품을 중심으로 발달한 우리 식문화를 더욱 발전시키며 한국인과 함께 해왔는데, 우리 몸에 좋은 용기라는 평가는 오히려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급속한 현대화가 이루어지던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옹기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외면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옹기를 만들던 사람들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옹기 만드는 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옹기요와 옹기장들이 점차 사라지며 그야말로 옹기의 맥이 끊어지게 될 위기였던 것. 이제 전국적으로도 옹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옹기요에서 이루어지는 작업
여주 이포리의 ‘오부자 옹기’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 보유자 김일만과 그의 네 아들이 함께 옹기를 만들고 있는 곳이다. 네 아들이 모두 가업을 잇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 큰 아들의 두 쌍둥이 아들까지 옹기제작을 배우고 있다고 하니 삼대가 함께 옹기를 만드는 셈이다.
평범한 마을의 초입에 자리한 ‘오부자 옹기’에는 작업장, 건조장, 가마 시설들이 들어서있다. 작업실에서는 옹기장 김일만과 그의 첫째 아들, 막내 아들이 옹기를 만들고 있었다. 옹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물레 위에 점토가 달라붙지 않도록 백토를 뿌리고 점토를 올려놓은 후 방망이질을 하며 넓게 펴서 바닥을 만든다. 흙을 가래떡처럼 둥글게 만든 ‘질가래’를 붙여가며 기벽을 쌓아올리는데 기벽을 사이에 두고 도구를 이용해 두드려가며 형태를 잡아 옹기를 만든다. 옆에서 보기에도 무척이나 힘이 들어 보였는데, 칠순의 옹기장 김일만은 묵묵히 흙을 만지고 두드리며 옹기 만드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매일 젖은 흙을 만지는 일을 하다 보니 옹기장의 손은 갈라지고 트기 일쑤. 특히 겨울에는 손이 터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한다.
큰 옹기는 만들면서도 건조를 시켜야 한다. 흙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때문에 아랫부분을 말려가면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숯불을 담아 놓는 통인 ‘부드레’를 옹기의 바깥쪽에 놓기도 하고, 줄에 매달아 안쪽에서도 건조를 시킨다. 불을 잘 조절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물레에서 옹기를 다 만들면 천으로 된 긴 ‘들보’를 이용해 옹기의 아랫부분을 잘 감싼 후에 두 사람이 마주 잡고 옹기를 운반해 건조장으로 옮긴다. 건조과정에서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뒤틀리거나 파손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옹기를 만드는 일은 흙을 고르는 일에서부터 가마에서 꺼내는 마지막 순간까지의 전 과정에서 그야말로 정성과 기술이 필요한 일. 작업장 맞은편 산비탈 아래에는 가마가 자리 잡고 있다. 요즘에는 현대식 가마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화목을 이용한 옛 옹기 가마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 조선 말기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통가마는 경사면을 따라 길게 반원형 원통 모양을 하고 있다. 경사면의 낮은 곳에 불을 때는 불통이 있고 배연구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불을 때면 열기와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전통 가마에서 옹기를 구워내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이 필요한데, 온도 조절을 잘 못하면 옹기를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마는 옹기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마 옆쪽으로는 화목으로 쓸 나무가 켜켜이 쌓여있다. 지속적으로 불길을 내기 위해서는 화력이 좋은 소나무가 으뜸. ‘오부자 옹기’에서는 일 년에 네 번 정도 가마 작업을 한다는데, 멀쩡한 모습으로 있다가도 뜨거운 불 속에서 깨지고 쓰러지고 파손되는 옹기를 보면 옹기장은 속이 쓰리다. 하지만 뜨거운 불 속에서 살아남아야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옹기의 운명. 옹기요에서, 부드럽고 찰진 흙이 물과 섞이고 바람과 불의 도움을 받아가며 옹기로 탄생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삼라만상의 기본 요소라고 여겼던 네 가지 원소에 옹기장의 섬세한 손길이 닿아 만들어지는 소박하지만 푸근한 옹기. 옹기는 분명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흙, 물, 바람, 불의 기억을 모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 글_이사이 사진_이준호 주노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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