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교습일지 - 운전이 무섭다

in EverSteem8 days ago

밀린 숙제를 하는 3월이다. 이 숙제는 2월의 스텔라가 하기로 약속했던 일이다. 3년 전에도 시도해 보다가 결국에 그만 둘만큼 어렵고 도전적인 일이다. 운전이다. 이전에도 남편은 은근슬쩍 운전을 하면 좋아질 점에 관해 말하고 운전연수를 받아보길 권유했다. 그의 바람은 3년 전부터 한결 같이 이어졌지만 내 마음은 동하지 않았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도전과 모험의 패기가 나를 감싼 2월의 어느 날, 운전을 시작해 보겠다고 말을 꺼냈다. 뭐가 씌었는지 하필 엄마집에 있던 그날에도 운전을 배우겠다고 하는 내게 엄마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라는 듯 열렬한 지지를 보내주며 물질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엄마는 내심 더 나이가 들고 운전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 딸내미가 언제든지 달려와주길 바라고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엄마가 그리 크게 기뻐한 건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다. 2월의 바쁜 일이 점차 끝나고, 모험과 도전 모드의 나는 벌려놓은 모든 일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새로운 자극과 낯선 환경에 벅찼다. 다시 조용하고 고요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벌려놓은 일은 수습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운전연수가 무척 신경 쓰였다. 아, 이제 진짜 해야 하는데.

마음 같아선 모조리 취소해버리고 싶었지만, 내 안에 무언가가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아마 오랜 기간 기다려야 할 거다. 앞으로 하지 못할 이유만 가득할 테고, 하고 싶은 이유는 다 사라질 거다. 둘째 주가 넘어가면서부터 초조해졌다.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하기로 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그냥 지금 하자고.

2월 초 신나서 봐두었던 당근 마켓의 강사님께 연락을 했다. 그다음 날 바로 교습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이렇게 그냥 운전을 한다고? 괜찮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날 강사님이 몸이 안 좋아서 또 몇 가지 불운한 이유로 강습이 그다음 주로 밀렸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아마도 우주가 어떤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 내가 운전하는 걸 바라지 않는 거 아닐까? 하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불운은 벌어지지 않았다. 연달아 화, 수, 목요일 운전 강습 일정이 잡혔다. 첫날 두 시간의 운전을 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냉정을 유지하고 차분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집중해 보려고 애썼지만, 몇 번의 순간엔 정신이 혼미했다. 손에 땀이 나고 발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용인 에버랜드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운전 교습은 안전했다. 내가 불안해하니 강사님은 내가 엑셀만 제대로 밟으면 부산까지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강사님은 능숙하게 내 핸들을 함께 붙잡았고 필요한 순간 브레이크를 누를 수 있었다. 엑셀과 깜빡이만 누르면 됐다. 거의 체험판처럼 운전을 체험해 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남은 시간도 나는 안전하고 별 문제없을 것이다. 게다가 강사님은 사람들의 리뷰대로 친절했다.

동시에 운전이 너무나 무서웠고 운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왜 운전을 해야 하지? 운전을 안 하고도 잘 살 수 있는데. 어떤 강제적인 필요성이 조금도 없는데 내가 왜 굳이 운전을 하겠다고 이 공포와 불안을 느껴야 하는 거지? 울고 싶어졌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소감을 묻자 나는 '자율주행차 사줘...'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보통 겁이 없는 편인데, 운전은 왜 이다지도 내게 공포감을 주는 걸까?

첫째, 운전이 내 약점이자 부족한 능력을 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공간 지각력이 유난히 떨어지는 내게 차폭을 맞추거나 주차를 하기 위해 핸들을 왼쪽, 오른쪽으로 꺾는 일은 조금도 이해가지 않는다. 게다가 기계 조작이 무척 서투르다. 내 손에 닿으면 기계들은 비명을 지르며 고장 나거나 오작동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커다란 기계를 감으로 조작해야 하다니. 이건 악몽이다.

둘째, 운전은 모든 운전자의 팀플레이다. 모든 것엔 처음이란 게 있고 초보자 단계가 존재한다. 처음은 누구나 어렵고 불안할 수 있고, 낯선 환경에서 익숙해질 때까지는 실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행위는 아무리 서툴러도 그게 남에게 피해가 되거나 목숨을 위협하진 않는다. 수영을 못하면 중간에 가다가 멈춰서 진로 방해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를 다치게 하거나 다른 이의 수영을 아예 방해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수준별로 레인이 나눠져 있고, 느리고 서툴다면 초보자는 얼마든지 초보 레인에서 따로 연습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운전은 다르다. 엄청 서툰 초보자도 예외 없이 똑같은 교통 흐름에 참여해야만 한다. 도로는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성격 급하고 바쁘디 바쁜 K 운전자들과 똑같은 도로를 사용해야만 한다. 물론, 봐달라는 신호로 '초보운전'이라는 스티커로 잘 봐주세요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서투름 실수가 상대를 불편하게 하거나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니!

사실 다른 차가 와서 내게 부딪친다거나 내가 피해를 받을까 봐 걱정이 되지 않고 나의 상상 속 공포는 나의 어리바리한 모습과 조작 실수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역시 운전은 선택이니 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이로운 게 아닐까란 결론에 도달했다. 운전하면 좋을 이유가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지고, 공포와 불안만이 남았다.

그럼에도 운전을 해보자 마음 잡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비명을 지른다는 이유로 또 그만둔다면, 다음에 시도하기 더 어려울 거다. 분명 2월의 스텔라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운전을 하기로 결심했던 거다.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면 삶이 윤택해지고 가족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날은 예고한 대로 엄마 집 근처까지 운전하고 왔다. 장장 2시간 30분의 여정. 첫날보다는 공포감이 많이 줄었고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비록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엉망이고 핸들 조작이 엉망이다.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난 여전히 어떻게 곡선구간에서 자연스럽고 유려하게 핸들을 조작하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주차는 거의 모르모트처럼 강사님의 말에 맞춰 이행만 하지 대체 어쩌다가 차가 선에 맞춰 주차되는 건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가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창 길을 달리다가 경쾌하게 강사님이 말했다.

"운전하다 보며 재밌어요. 게임한다고 생각하세요."

게... 게임이요? 그의 말처럼 운전을 즐기는 날이 내 인생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운전은 엄청난 긴장과 스트레스를 주고, 만약 운전에 꽤 익숙해진다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느끼며 삶과 우주에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 운전을 좋아하긴 어려울 거다.

3월은 즐길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미뤄둔 숙제처럼 지금이 아니면 안 할 것 같은 일들. 제일 못하는 일, 좋아할 수 없는 일, 즐길 수 없는 일, 그러나 사는 데 기능적으로 유용하고 필요한 일. 어쩌면 나를 제외한 많은 이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

20일 위파사나 명상을 하는 것보다 운전을 배우는 게 더 고되게 느껴진다. 하기 싫다는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도망치려는 내 마음을 안고 다독이며 괜찮다 말한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이제 앞으론 운전에 익숙해질 일만 있을 뿐, 운전과 멀어지는 길은 없는 거다.

운전을 할 줄 아는 미래의 스텔라가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씨익 웃고 귀엽다고 말하면 좋겠다. 내일도 운전 교습을 한다. 내일은 조금 더 정신 차리고 있는 구간이 길어지기를. 차와 조금 더 친해지기를.


p.s. 삶의 역경은 이야기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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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주행 연습이 제일 어려웠던 기억이납니다. 강사 님이 저를 이끌었던 곳이 합정동이였는데 정말 양쪽에 주차되어있고 1대정도만 다닐 수 있는 길을 가라고해서~ 식은땀이 났던 기억이 나네요.

능숙한 드라이버가 되시길 바랍니다~

헉- 전 아직 골목길 진입도 안해보았는데 상상만 해도 아찔해요. 합정동이라니 ㄷㄷㄷㄷㄷ

응원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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