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마약투약은 중대한 범죄, 허재현을 즉시해고 한다"

in #drug5 years ago (edited)

20160407_01010107000004_01L.jpg

#2018년 5월22일 (화) 마약일기-2

(전편에 이어/회사 징계위에 출석해 "평생 회사 쓰레기통을 치우겠다"고 말했다 https://steemit.com/drug/@repoactivist/7g93cn)

나와 2년가까이 일했던 선배가 징계위원으로 출석해 있었다. 그나마 암흙속 한줄기 빛처럼 느껴지는 분이다. 그는 오랫동안 얼마나 내가 성실하게 일해왔는지 직접 눈에 담아온 분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이 선배는 나를 좀더 측은하게 생각해주지 않을까.

“허재현씨는 경찰청 출입기자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마약인지도 모르고 투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선배는 날카로왔다. 그래. 상식적인 날카로움이다. ‘어떻게 경찰청 출입기자가 필로폰이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이해가 안될 것이다. 마약이란 물건에 노출되는 과정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왜냐면, 마약이란게 ‘너 마약할래? 원하면 줄게.’ 뭐 이런 식의 질문과 사전양해 등이 오가며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할때 프로포폴같은 약을 그렇게 투약받으니까.

당연히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들여온 약이 아니라는 것쯤은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이 처한 상황과 대화의 맥락 속에서 짐작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약인지, 어디서 어떻게 들여왔고, 이것을 하게 되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 파악하는 것은 좀더 복잡한 차원의 문제다. 사람마다 마약을 경험하게 되는 상황은 워낙 다양해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어버버버' 하다가 하게 되는게 마약이라고 볼 수 있다. 기자가 어버버버하다니. 용납하기 어렵겠지.

‘몰랐다’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복잡한 그 과정을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징계위원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이미 사회적 마녀사냥은 시작되었고, 나는 빨리 화형시켜 재로 뿌려 버리는게 좋겠다고 작정해 들어온 사람들일텐데.

11년 기자로 지내는 동안 마약과 관련한 취재를 해본 적이 없다. 마약이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봤어야 말이지. 제기랄. 내 주요 관심사는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소수자들,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관료들과 그들에 유착한 자본권력이었지 마약 사범들은 내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냥 좀 이해 안가는 사람들인데 딱히 내가 나서서 비판 보도를 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사람들. ‘인생을 살면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국가가 하지 말라는 저런 약을 왜 하는가. 내가 굳이 싫어할 생각도 없지만 아무튼 좀 한심한 사람들.’ 이 정도가 내가 마약 사범들에게 가졌던 관심의 양이었다.

국회의원 김무성의 사위가 마약사건에 연루된 것을 두고 여론이 들끓었던 적이 있다. 나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자가 마약을 했는지 안했는지 궁금했냐고? 천만에. 그자가 마약을 판매했는데도 부실하게 수사받고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의혹에 관심 있어 취재를 했을 뿐이다. 죄를 저질렀는데 유력 정치인의 사위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았다면 권력형 비리 아닌가. 마약이 등장하는 사건에서도, 내 관심은 마약이 아니었다.

이러니 내가 비록 경찰 출입기자여도 마약을 눈으로 볼 기회는 없었다. 그저 마약은 하얀 가루이고 어찌저찌 주사기로 투입하는 것 정도의 이미지만 갖고 있었을 뿐이다. 기자라고 해도 경험해보지 않은 정보에 대해서는 일반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 선배는 참석한 징계위원들중 가장 심하게 나를 추궁했다. 의외였다. ‘이 선배는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나를 선처해주려고 저러시는 걸까’ 생각될 정도였다.

“저는 아직도 제가 필로폰을 투약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우울증 해소에 도움이 되고 신경을 안정시켜준다는 설명을 듣고 이게 불법 약물이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정말 자세한 건 몰랐습니다. 직감적으로 내가 마약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투약 직후라 정신이 통제 불능상태였습니다. 제가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니라, 징계위원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마약 범죄가 보통 어떤 상황 속에 우발적으로 벌어지게 되는지 설명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어찌저찌 해명을 했다. 내 입장에선 해명, 객관적으로는 변명. 징계위원들은 말이 없었다. 20여분간 소명을 한 끝에 회의실을 나왔다.

나를 해고하지 말아달라며 국가보안법 피해자 유우성씨가 징계위원회 증인으로 출석해 주었다. 우성이는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한겨레에 허재현 기자는 꼭 필요한 사람이니, 죄는 미워해도 사람 자체는 미워하지 말아달라”며 선처를 부탁했다고 한다.

무슨 정신으로 징계위원회 출석을 마무리했는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와 차분하게 회사의 결정을 기다렸다. 국가인권위원회 고위 관계자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저명한 인사들이 탄원에 참여해주었다. 마약사용자를 과도하게 범죄시하지 말라는 유엔의 권고까지 첨부해 제출했으니 그래도 좀 회사가 이성적으로 판단해준다면 좋을텐데. 아니, 그런거 말고 차라리 나를 불쌍하다고 감성적으로 판단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실낱같은 기대를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오후 2시쯤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메일을 열어 징계위원회 심사결과를 확인했다.

“언론사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적용 대상에 포함될 정도로 언론사 구성원들에게 보다 높은 도덕성과 책임이 요구 된다. 사회의 공기로서 언론사에게 부여된 막중한 책임과 역할을 고려할 때 그 어떤 조직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한겨레신문사 직원이 마약 투약이라는 중대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허재현의 중대한 불법행위로 인해 회사의 명예와 신뢰도가 심대하게 실추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허재현을 즉시 해고 한다.”

그래. 나는 중대 범죄자구나. 이제 모든 것을 인정하고 내려놓자. POP 나영정씨와 몇몇 사람들에게 “해고가 확정되었다. 그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기를 껐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몇시간을 주검이 되어 누워 있었다. 나는 사형당했다. 이대로 세상의 모든 시간이 정지할 수만 있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텐데. 사형당했는데 의식이 있으니 괴롭다. 제발 누가 내 의식까지 끊어줘. 지금 이순간 누가 마약을 치사량만큼 넣어 숨통을 끊어주면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일텐데.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https://steemit.com/drug/@repoactivist/4vbegb

▶정기후원 / http://repoact.com/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3

Sort:  

Congratulations @repoactivist! You have completed the following achievement on the Steem blockchain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You published more than 50 posts. Your next target is to reach 60 posts.

You can view your badges on your Steem Board and compare to others on the Steem Ranking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To support your work, I also upvoted your post!

Vote for @Steemitboard as a witness to get one more award and increased upvotes!

repoactivist님 저는 선생님의 글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기존에 보았던 사람들이 하였던 똑같은 비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질문드립니다. 답하기 곤란하시다면 답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먼저 저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평범한 일반인이기에 마약을 어떻게 접하(게 되)고 어떻게 투약하(게 되)는지 알지 못하는 것에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필로폰을 투약하게 되셨나요? (잘 알고 계시겠지만 필로폰 복용의 경우 10년이하의 징역형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입니다.) 시간이 촉박해 대답하는 어버버버 어버버버가 아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작성할 수 있는 글을 통해 알고 싶습니다.

타인의 강요가 아닌 본인의 의지로 투약한 것은 맞나요? 만약 강제적인 것이라면 저희 같은 일반인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투약하게 될 경우가 있나요?

모발검사 결과를 기다리셨다고 하는건 본인이 안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신건가요? 아니면 검출만 안된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하신건가요?

그리고 마약이 합법인 곳인 곳에서의 투약과 마약이 불법인 곳에서의 투약은 그 나라 국민이라면 다른 처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예) 캐나다, 대한민국, 대마초

제가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으나 선생님의 글은 마약 복용자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하지만 미사여구 및 곁가지들을 쳐내고나면 남는 큰 줄기는 결국 '나의 범법행위는 합리화 될 수 있다.이러한 처우는 과하다'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범법행위가 개인의 사정이나 변명으로 합리화 될 수 있다면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정말로 대한민국에서 마약 복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계셨을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흥미로운 글 감사드립니다.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그동안 이 분의 글을 처음부터 읽어온 독자로서, 그동안 글 들에 나온 정보에 기반하여 몇 가지 대신 답하자면, 모발 검사 받는 동안에도 본인이 무슨 약물에 노출되었는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분이 글을 쓰는 이유는 '본인의 범법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행위로 인해 주어진 죄값보다 너무 과도한 비난을 받는 현실 속에서도 정신을 추스리고 살기 위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곰돌이가 @dj-on-steem님의 소중한 댓글에 시세변동을 감안하여 $0.011을 보팅해서 $0.029을 지켜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6323번 $69.786을 보팅해서 $81.303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