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자유와 구속, 그리고 미래] 2-1. 중세. 피를 머금은 화폐의 부활

in #coinkorea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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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2년,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목사는 10월 28일 세상에 휴거가 다가와 멸망할 것이라는 종말론을 퍼트렸습니다. 그 말을 믿은 사람들은 돈을 내다 버리거나 탕진해버리는 등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았죠. 물론 그 날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은 텅 비어버린 통장을 보고 바보같이 속은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해야 했습니다.

만약에 이런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믿음이 전 세계적으로 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영화 딥 임팩트나 아마겟돈에서처럼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거나, 혹은 내전이 일어나 당장 몇 분 뒤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되면요? 북한이 땅굴을 국회의사당 아래까지 파두고 그 밑에 수백 수천대의 전차를 숨겨두었다가 일거에 쳐들어 온다면요?

정말로 말도 안되는 가정들입니다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화폐는 어떻게 바뀔까요? 보스니아 내전 당시 포위된 한 도시에서 살아남은 남자의 증언을 들어봅시다. 전문 참조

Q. "현지 화폐가 가치가 있는가? 혹은 돈으로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살 수 있었나?"
A. "불가능하다. 가끔 외국 화폐로 뭔가를 살 수 있지만(미국 달러나 독일 마르크) 그게 가능한 드문 경우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화폐 가치는) 저평가 되어있었다. 예를 들어 콩 1캔은 30~40 달러나 했다(전쟁 전에는 0.5달러 정도). 하지만 이런 경우조차 매우 드물다. 거래는 대부분 물물교환 형태였다. 현지 화폐는 매우 빠르게 침몰했고, 몇주나 몇달 정도만에 가치를 잃었다."

Q. "계좌에 있던 사람들의 돈은 어떻게 되었는가?"
A. "모든 화폐 경제는 약 1년 만에 완전히 붕괴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 물론 그 상황 속에서도 부자가 된 사람들은 있었다."


생존을 소재로 한 게임인 'This war of mine'입니다. 여기서도 화폐 시스템은 진작에 무너졌죠

전쟁이나 외부의 침입,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신뢰로 세워진 경제 시스템입니다. 당장 누군가가 내 목숨을 위협하는데 금붙이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요. 화살 한 발, 칼 한자루, 총알 하나가 더 중요하죠. 재미있는 것은, 인간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거래를 하고 교환을 했습니다. 단지 화폐만 다른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이런 화폐 경제의 붕괴는 비단 이런 극단적인 상황 뿐 아니라, 외부와의 연결이 차단된 중세 장원에서 매우 잘 드러났습니다.

카롤루스 대제 사후 프랑크 왕국이 세 토막나자, 왕의 통치 권력은 자연스레 약해졌습니다. 약해진 통치력을 틈타 다시 장원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영주들은 수익의 일부를 금붙이로 바꾸어 왕에게 주고, 스스로의 무력을 가끔 임대하는 대신 완벽한 자유를 얻었죠. '자신들을 손 대지 말라'는 겁니다. 한 영주의 장원 안에는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굳이 국왕에게 손을 벌릴 필요가 없었죠. 국왕이라 해봐야 가진 것도 별로 없었고요.

이렇게 써놓으니 장원이란게 무언가 대단한 생산 공동체처럼 보입니다만, 정확히 말해서 없으면 없는대로 살았다가 맞는 표현입니다. 보통 중세시대라고 하면 우리는 성과 기사, 검과 로맨스를 떠올립니다만, 실제 중세시대는 그야말로 암흑기에 가까웠습니다. 튼튼한 돌로 높게 쌓아올린 성벽과 해자 대신 마을을 두르고 있는 목책이 '성벽'이었던 장원도 꽤나 많았습니다.

제한된 인구가 만드는 생산력은, 그리고 그나마도 이것저것 다 자기네들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농노들은 어쩌다 운이 좋으면 하루에 옥수수 한 개를 먹는게 전부였죠. 평소엔 옥수수가 살짝 샤워하고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멀건 죽으로 때웠습니다. 포도주나 부드러운 빵은 장원을 소유한 영주조차도 평소에는 쉽게 먹기 힘들 정도로 매우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흑사병이 엄청난 피해를 준 원인은 연약한 경제와 이로 인한 취약한 위생, 건강상태였습니다

이런 사정만을 놓고보면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시장 경제가 발달하고,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으로 대표되는 대형 중앙 집권 국가가 나왔는지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 답은 바로 '바이킹'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침 간빙기가 찾아와 그린란드와 북해 일대의 유빙이 물러갔을 무렵, 가늘고 긴 드라카르로 육지와 바다, 강 모두에서 잽싸게 기동할 수 있었던 바이킹, 노르만 족,은 기존의 소농경제 중심의 장원을 부숴버렸습니다.

기사와 농노, 장인들로 구성된 조그만 공동체인 장원에서는 체계적으로 약탈을 위해 몰려오는 노르만 족을 쉽게 격퇴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자료를에 따르면 바이킹은 9세기에서 10세기 무렵 금 600 파운드, 은 27만 파운드를 약탈해갔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런 약탈 자금은 북해 인근의 국가를 굉장히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자금은 무역로를 잇는데 중요한 유인으로 작용했고, 수많은 사치품과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이후 다시 기후가 추워지자 이들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버리고 본격적으로 남하했으며, 이후 '정복왕'으로 불린 윌리엄 1세를 낳은 노르망디 공국을 만들게 됩니다.

순수하게 약탈에 의존했던 로마와는 달리 콘스탄티노플과 바그다드라는 무역로와 날렵한 범선인 '크나르'로 대표되는 노르만족의 항해술, 그리고 장원의 폭압과 낮은 삶의 질에 도망나온 장인들이라는 수많은 요인들이 얽히면서 장원 체제는 점점 무너져 갔습니다.


노르만족의 배 '드라카르'입니다. 해병대 고무보트처럼 지상에선 들고 나르기도 했죠.

체계화된 약탈자의 수탈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힘들었던 영주들은 점점 통치와 치안 유지를 위해 많은 비용을 요구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농노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토지의 생산성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으며, 토지와 관계없이 스스로의 생산성을 증명할 수 있었던 수공업자들은 앞다투어 장원에서 달아났죠.

이들이 도착한 곳은 '도시'였습니다. 장원을 가진 영주들의 힘을 빼고 싶었던 국왕은 '자유 도시'를 만들어 수공업자들과 무역자본을 끌어모았고, 거기서 나온 자금력을 통해 군사를 키웁니다. 정리하면 각각의 장원에서 약탈된 물품들이 집중되고 흐르면서 탈출구를 만들었고, 마침 정치적 기회를 노리던 왕과의 결탁을 통해 다시 한번 화폐 경제가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시대와 중세시대 도시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한 이유를 가지고 만들어진 도시인지, 혹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몰리면서 형성된 곳인지의 차이죠. 토지라는 강력한 생산 수단이 없었던 수공업자들과 상인들은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했고, 수많은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그 진보를 따라가지 못한 장원이라는 체제는 점점 뒤쳐져 갔습니다.

도시가 발달하기 전, 토지는 부를 축적하는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은 토지를 장악한, 정확하게는 장원을 통해 토지의 안전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영주 계층을 중심으로 돌아갔죠. 농노의 생활이 결코 좋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상당량의 곡물을 수탈당해야 했고, 스스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으며, 항상 질병을 비롯한 모든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토지에 종속된 '사은품'에 불과했으니까요.


프랑스에서 국물 요리를 기피하는건, 농노들이 주로 먹던 것이어서가 아니었을까요?

장원이라는 체제를 부수고 다시 화폐 제도를 만드는데는 수많은 핏물이 흘러야 했습니다. 그 핏물을 타고 도래한 것이 바로 '상업 혁명'입니다. 이 상업 혁명으로부터 비로소 개인의 경제적 자유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고, 금융이라는 개념과 근대적 화폐 시스템이 점점 자리를 잡아나가게 됩니다. 300년간 잠들어 있다가 전란과 피를 마시고 등장한 화폐는 봉건 영주에게는 재앙이 되었습니다. 무력으로 도시를 제압할 수도 없고, 착취를 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결국 봉건 영주들은 제압 대신 교역을 택하게 되고, 생산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장원은 더더욱 빠른 속도로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피렌체에서 일어난 자유 시민들이 영주를 완전히 내쫓는 의결안인 '정의 법규' 공표 사건은, 금력을 통한 권력이동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또 다른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로 교황과 황제였습니다.


요 며칠 있었던 일이랑 엮어보니 폭압적인 영주어뷰징하는 고래가 사는 장원특정 태그을 벗어나 수공업 기술이 있던글 솜씨와 콘텐츠가 있는 자유민작가들이 탈출한 도시커뮤니티... 하하.. 의도하고 쓴 것은 아닙니다.

처음으로 글을 모호하게 끊었습니다. 다음화와 함께 봐 주셔야 더욱 잘 이해가 될 듯 하여... 아무튼 다음화도 서비스 서비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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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히네요. 현재의 역사네요. 현재의 투영이구요..
감사해요~~~

내용이 어려워 몇번 끊어 읽었습니다. 깊게 생각하게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블록체인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역활을 하고 해당공동체안에서 풍요를 누리는 세상이 만들어 졌으면합니다.

요즘 자기 전에 noctisk님 글 읽는 재미가 있네요 ㅎㅎ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

암호화폐가 퓨전된 역사책을 한 권 읽고 있는 느낌입니다. 수공업 기술이 있는 분들이 더욱더 많이 몰려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서비스 서비스... 마지막 극장판 개봉이 빠를지 비트코인의 해방이 빠를지 ㅜ 둘다 정말 요원해보입니다 ㅎㅎ 소재 고갈 없이 다방면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셔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화폐의 개혁에는 핏물이 필요한데..
암호화폐를 위해서도 그럼 핏물이 필요할까요? ㅋㅋ
마지막줄의 주석을 포함한 글에 미소 가득품고 댓글을 다네요.^^
감사합니다.!!

이글을 읽으면서 고딩시절 배웠던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해주셔서 재밌네요ㅎㅎ

어렸을때 장원을 동경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동화책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포스팅을 마치고 잘 준비를 하기 전에 잠시 들려 포스팅 읽었습니다^^
스티밋내에서도 현실처럼 관계가 넓지 못하여 다양한 글을 보지 못해 말미에 흐린 스티밋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해하진 못했네요. ㅎㅎㅎ

하루 마무리 잘 하시고 좋은 밤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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