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평(時代漫評) - 271. 한국형 페미니즘 운동의 전개방향에 대해서,

in #busy6 years ago (edited)

조선시대에 선비들은 어린시절에 천자문과 함께 가장 먼저 공부를 하게 되는 책이 사자소학(四字小學)이었다. 이 사자소학의 첫 구절에 등장하는 것이, ‘부생아신(父生我身) 모국오신(母鞠吾身),이라는 내용이다. 이 구절을 뜻 그대로 해석을 하자면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네' 가 된다.

이 구절의 뜻을 생각하는 순간에 좀 이상한 것을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어머니가 나를 낳으시지 아버지가 나를 낳으시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아버지가 날 낳았다는 말이 여성들에게는 물론 현대의 남성들까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자소학은 우리가 반드시 배워서 지켜야 할 생활규범과 어른을 공경하는 법 등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가르치는 생활철학의 글이지만, 이 구절은 분명 이상하다. 그런데 어쩌면 이 구절의 모순성은 오늘날 한국에서의 특수한 페미니즘 문화의 시작점이 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자소학에서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가 날 낳았다는 것은, 남존여비의 유교적 사상을 잘 나타내는 말이고 이것은 확대 해석했을 때에 여성에게 뒤집어씌우는 칠거지악에 이르게 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부계중심의 출생적 신분대물림을 기준으로 하여 살아온 나라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날 낳으셨다는 구절을 그렇게 사자소학에서 당연하게 삽입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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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 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인 ''페미나(femina)'에서 파생된 말이다.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에서 제일 문제삼는 것은 생물학적인 성(sex)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gender)이다.

그런데, 사자소학에 등장하는 "아버지 날 낳으시고,,," 의 구절은 한국의 페미니즘 문화가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gender이 아니라 sex에 더 가까운 페미니즘적 문화를 형성시킨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패미니즘 운동의 전개양상은, '평등'과 '차이'가 대립하는 이중적모습을 띄고 있는데, 남성과 똑 같아지기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는 입장과 남성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면 어떤 문제에서 평등한 것일까? 또 차이가 나는 것이라면, 그 차이는 자연적 생물학적 차이인가 아니면 사회적 경제적인 차이인가. 이에 대한 입장이나 시각에 따라서 페미니즘의 정의나 운동방향은 달라지게 된다. 오랫동안 유교문화권에서 아버지 성씨의 계승이 기본적인 조건이었던 한국에서는 여성 페미니즘 운동이 쉽게 전개되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생물학적 출생의 개념부터도 남성중심으로 규정되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가장 난해한 여성권익 향상의 해법을 구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들의 고민이 아닐 수 없을 듯하다. 지난시대까지만 해도 철저하게 머리 속에 뿌리박혀 있던 "아버지가 날 낳으시고의 ,,, 생물학적 개념을 넘어선 문화적 개념이 더 우선시되는 부계중심적 문화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문화적 특성에서 기인한 여성불평등의 개념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문화권 속에서, 외국에서 시작이 되어진 페미니즘 운동을 들여와서 전개하려고 하게 되면 한국의 문화적 사회적 특성에 맞는 독특하고도 난해한 운동전개 양상이 발생하게 되면서 결코 쉽게는 풀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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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4위로 서울시장에 낙선한 녹색당 소속 신지예(27)씨의 인터뷰 내용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서울시장에 출마를 했지만 낙선을 했는데, 신씨 스스로는 “선거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도를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을 뿐”이라며 “모든 존재가 평등한, 진정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낙선 소감을 밝혀서 관심을 끌고 있다.

그의 주장은, "페미니즘이란 여성인권 운동에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소수자들을 아우르는 사상이다. 여성에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페미니즘적 인식이, 우리 사회가 정상이라 생각하는 ‘남녀의 혼인으로 이뤄진 가정’, ‘가부장제’ 등에 따르지 않는 개개인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약자인 여성을 지원해 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단순 성대결을 넘어 이분법적인 성구분이 사라지는 시대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여성과 남성의 결합을 ‘정상가구’라고 부르며 이들만을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동거하는 커플이나 비혼자들도 다양한 삶 속에서 다양한 주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꿈꾼다”라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는데, 솔직히 신지예씨의 똑똑한 소신 발언에 너무너무 공감되는 바이다.

한국형 유교문화의 폐습에서 기인한 특유의 여성차별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명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화적 뿌리와 그 답습을 견제하는 한국식만의 해법이 등장해야하는 것인데, 신지예씨의 소신있는 페미니즘 문화의식은 나 역시 공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왜 신지예씨의 소신있는 페미니즘 문화의 주장에 대해서 적극적 공감을 하느냐면, 한국형 페미니즘의 운동의 해법은 결국에는 남녀성차별 해소의 차원을 뛰어넘어서 가장 민주적이면서도 각 개인의 다양성과 차이점까지도 더불어서 인정하게 되는 완전평등의 사회로 나아가게 만들수 있는 가장 특이한 한국형 페미니즘 문화의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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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뿐 아니라 각 나라마다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겠지요...ㅎㅎ

한국이 연령 차별이 심하고 수직적인 건 유교 교리가 아닙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나온 남고여저식 가족 모델의 장려, 일제 강점기와 독재 정권 시기를 거쳐서 생겨난 권위주의적 통치에서 나온 거란 말입니다.
오죽하면 미국인 타일러도 한국이 위계적인 원인에 대해 유교가 아닌 권위주의에서 왔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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