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스티미언:엔딩크레딧] 시.....

in #busy6 years ago (edited)


pixabay: manolofranco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니, 판단력이 살짝 모자란 호구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평단가 3,720,000만원의 비트코인캐시를 2.6개 갖고 있으며, 평단가 2200원의 언브레이커블코인을 900개 갖고 있으며, 평단가 97,000원의 퀀텀을 15개 갖고 있으며, 평단가 950,000원의 이더리움을 0.5개 갖고 있으며 평단가 3,000원의 스팀을 157개 갖고 있으며 평단가 3,800원의 스팀달러도 갖고 있으니 그게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이런 숫자 나열로 감이 오지 않는다면 표현을 바꾸어 2600만원 가량의 투자금을 -85%에 이르게 한 흑우라고 해두자. 그는 바쁜일도 없고 친구도 없는 주제에 매일, 매시, 매분 매초 휴대폰 메신저를 들여다본다. 10여개의 코인관련 단체 카톡방, 15개 남짓한 코인관련 텔레그램 채팅방에 가입되어 있는 탓이다. 늘 그렇듯이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그는 그 채팅방을 펼쳐서 얼굴에 갖다 놓고 눈을 뜨긴 했지만 그 안의 텍스트들은 말 그대로 비어있는 동굴 같은 동공에 반사되어 날아가버렸다. 단톡방의 방장이 사라고 해도 사지 않고, 팔라고 해도 팔지 않는 그가 도대체 왜 그 방에 들어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공부 못하는 아이가 '집합과 수열'부분만 새까매진 정석수학책을 가방 속에 매일 넣고 다니며 꺼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나 할까. 아무도 그런 학생을 보고 '정석 수학을 존버하는 우수한 학생'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가 해당코인들을 거래소 지갑에 넣어둔 채 한 두시간에 한 번씩 열어보는 것도 존버라고 부르기 힘든 이상한 행동이다. 어쩌면 기우제를 옆에서 지켜보는 농부나, 추첨이 끝난지 8주가 지난 로또복권을 지갑에 넣고 다니며 일부러 확인하지 않는 심정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어제 아침, 그 중 하나의 채팅방에서 "XX거래소에서 OO코인이 수백만배 가격으로 매도되었다"는 메세지를 보았다. 왠지 모르게 그 한 줄의 메세지는 각막을 뚫고 들어가 뇌의 깊숙한 부분까지 파고들었다. 그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는데 , 구매한 코인의 일부분을 말도 안되는 가격에 예약매도를 걸어놓는 것이다.


'혹시 내 코인도?'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나도 시..로 시작하는 코인을 샀어. 왠지 욕 같기도 하고 연예인 이름 같기도 한 그 코인.


그는 출근을 하는 차 안에서 거래소에 접속하려고 했지만 썩어빠진 폰과 무뎌빠진 그의 손가락은 좀처럼 제대로 된 글자에서 만나지 못하고 자꾸 오타가 일어났다. '운전 중에는 어렵겠군, 오늘은 이상하게 신호대기도 너무 짧단 말이야.' 그의 눈은 전방을 향했고 손은 늘 그랬듯이 핸들을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만큼 잘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의식은 한 가지 생각에만 집중했고 그 자리에는 무의식적 판단에 의한, 사람에 의한 자동운전만 남아있었다.


만약 지금 20억이 생겼어. 그럼 뭘 하지? 피씨방에 가서 야간정액을 끊나? 6개월 회원권을 끊나? 출근해서 바로 종이에 휘갈기나? '지금까지 즐거웠습니다. 계속 뺑이치세요 낄낄낄' 아니.. 이런 게 중요한게 아니야. 전액 인출해서 스팀을 사야지. 백만스파! 내가 똥글만 써도 벌떼같은 댓글과 보팅이 붙을꺼야. 그래, 이거야! 모든 태그의 대세글을 모두 아재개그로 덮을 수 있는 능력. 내겐 그런 게 필요해.


출근 후에도 그는 컴퓨터에 앉을 수 없었다. 그날따라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해야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았기에.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컴퓨터에 앉을 수 있었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묻는다. "뭐 좋은 일 있어요?"


그는 생각나지 않는 암호를 떠올리며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며 답했다. "뭐, 월급쟁이 인생에 딱히 즐거울 만한 일이 있겠습니까."라는 말에서 '까'를 발음할 때 아래쪽과 윗쪽의 어금니가 살짝 가까워졌다. 비밀번호가 2회 틀렸다는 메세지 때문이었다.


드디어 접속에 성공했다.
그런데 화면이 이상하다.
나도 시.. 코인을 샀단 말이야! 왜 잔액이 그대로지?
아니, 어제보다 더 떨어졌잖아.


화면을 자세히 살피고 그는 시....로 시작하는 2음절의 단어를 나즈막히 내뱉으며 수긍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가 갖고 있던 것은 평단가 1,460원의 시베리안체르보네츠였다. 현재가격은 전날과 비슷하게 430원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쳐다보며 말했다.


"어이, 자네 오늘 웃다가 인상 쓰다가 다시 웃다가 한숨 쉬고... 왜 그래?"





사세요, 시베리안 체르노비츠(SIB). 업비트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자매품, 언브레이커블(UNB)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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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배 오른 친구는 어떤 친구였나요?

해커가 바이낸스의 API를 조종해서 시스코인을 초고가에 매도하고 BTC를 챙겨갔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잘 정리된 기사가 있어 링크로 덧붙입니다.

https://www.blockinpress.com/archives/6538

시로 시작하는 다른 코인이네요. ㅎ

ㅎㅎㅎ코인 종류가 워낙 많아서...즐거운 주말 되세요.

저를 에베레스트 정상에 불시착하도록 해준 고마운 친구는
작년 연말에 수백배 불려서 수천배를 바라보며
수조원의 미래를 내다 봤었는데
요즘 소식이 업네요 ^^
첨 뵙고 팔로합니다. ^^

친구를 에베레스트 산에 떨어뜨려놓고 본인은 잘 착륙했는지 백두산에 불시착했는지 난파했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네요. 저는 집사람과 합의 하에 코인판에 돈을 넣으면서 집사람 차를 BMW로 바꿔주기로 약속한 날이 점점 다가와서 걱정이 됩니다. 지금 상황이면 집에 있는 차를 팔아서 오토바이로 바꿔야 할 판인데ㅋㅋㅋㅋ

전 20억이 있으면 바로 은퇴요 ㅎ

사표 낼 때 엄청 짜릿할 것 같네요ㅎㅎ 예전에 봤던 만화에서.. 로또 1등 당첨된 주인공이 자기를 갈구는 상사에게 "자꾸 그러면.. 이 회사 콱 사버린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제게 20억이 있다면 아이들과 여행부터 다녀올래요~ ㅎㅎ

그거 좋네요. 걱정없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거 좋지요. 일단 쉬면서 생각해보면 더 좋은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저도 20억 있으면 죄다 스팀 살거 같아요.ㅋㅋㅋ
코인 이름은 스팀과 비트코인만 아는 코알못인지라..ㅋ

20억이라는게 지방광역시에서는 괜찮은 집을 하나 사놓고 남는돈으로 평생을 생계에 쫓기지 않고 살 수 있는 돈이라.. 잠깐의 공상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ㅎㅎ스팀도 오르락내리락하겠지만 다음 고점일 때는 1만원은 넘지 않을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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