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2권(25)
6월 29일의 정황(부도 제16 참조)
05:00 사단장은 전황을 보고하여 폭격을 요청하는 다음과 같은 전문을 발송하였다.
(1) 강릉에 적 보병 2개 연대와 우세한 포병과 전차부대가 집결하고 있음.
(2) 아 사단은 적의 우수한 장거리포 30문의 맹포격을 받아 부득이 후퇴하였음.
(3) 아 사단 전 병력은 대관령으로부터 진부 간에 집결하여 차기 전투를 준비 중임.
(4) 금 29일 12:00까지 강릉지구에 공폭(空爆)을 요청함.
(5) 대관령까지 탈취당하면 군 및 사단의 차기 작전은 지대한 타격을 받게 될 것임. 또한 장병은 사기 극도로 저하되었으므로 강릉 공폭은 사기 앙양상 지대한 도움이 될 것임.
(6) 적의 공폭을 받기 전에 선제를 가하여 주시기 바람.
(7) 즉시 응신을 바람.
07:00 대관령을 확보 중인 제21연대는 수색대를 구산리 방면에 출동시켜 적정을 탐색하게 하고 대관령 정상에 배치된 대전차포는 강릉에 위치한 적 사단사령부를 목표로 약 4,000발을 발사하였다.
08:40 아 공군의 지원을 예상하고 진부의 대공 연락반은 유천으로 이동하였다. 강릉을 점령한 적은 병력을 정비하고 강릉경찰서에 오대산 지구 괴뢰군 총사령부를 설치하였으며 적 1개 분대는 대전차포 2문을 가지고 08:00 구산리로 진출하고 지서 북방 약 1㎞ 지점에 대전차포 진지를 구축하였다.
10:05 작전국장으로부터 『오전 중으로 폭격할 것임. 최후로 전력을 다하여 수고할 것』이라는 전문이 도달하였으나 사단장은 11:00 총참모장에게 공군의 지원을 독촉하여 또다시 다음과 같이 타전하였다.
가. 강릉은 아군 폭격으로 말미암아 화재를 일으키고 있음.
나. 29일 05:00 타전한 비행기 폭격의 가부를 회전하여 주시기 바람.
적은 수색 행동을 활발히 하고 사복수색대 8명을 금동까지 진출시켜 아군 병력 배치를 피난민에게 문의하고 구산리 방면으로 도주하였다.
11:30 예하 각대에 국제연합의 한국원조와 미군이 29일부터 참전한다는 것을 시달하여 아군의 침체한 사기를 앙양시켰다.
15:30 구산리 방면으로부터 적병을 가득 태운 트럭 4대가 대관령으로 향하여 왔으므로 아 대전차포는 일제사격을 가하였으나 적은 대관령 1/3지점까지 진출하고 진지를 구축하였다. 이날 밤 아군은 특공대를 조직하여 야습을 감행하고 유천 사단 전투지휘소를 진부로 이동하려 하였으나 익일의 강릉 공격을 위하여 중지하였다.
강릉의 적은 강릉 농업학교에 약 2,000명, 아 제8사단 병사적(兵舍跡)에 약 2,000명이 주둔하고 강릉, 묵호간의 수도(隧道: 터널)와 그 일대에 약 2,000명이 잠복하여 야포 3문을 은폐하고 주문진에서 강릉으로 야포를 운반 중에 있었다. 광원리 지구의 적 주력은 창촌리를 점령하고 그 선견대는 창촌리 남방 1㎞ 지점의 802고지와 무명고지로 진출하여 계속 남하 태세를 취하였다.
강동지구의 적은 아군의 후퇴 후 강릉의 적과 합류하여 그 주력은 남하를 개시하고 12:00경에는 임계 남방 10㎞ 지점까지 진출하였다.
6월 30일의 정황(부도 제16 참조)
6월 30일 03:00경 유천 전투지휘소 부근에서는 우군을 적으로 오인한 관계로 약 5분간 우군 상호 간의 전투가 있었다.
대관령 공격의 적은 아 제21연대의 반격으로 미명 격퇴당하였다. 이에 따라 07:00 사단 전투지휘소는 유천으로부터 대관령으로 이동하고 포 1개 중대의 지원 사격하에 10:00경 후퇴하는 적을 추격하여 제21연대 1개 대대는 적의 정면을 공격하고 1개 대대는 적의 우측배를, 1개 대대는 좌측배를 각각 공격하여 장갑차 1개소대가 15:00경 대관령으로부터 강릉으로 전진 보병을 엄호하여 16:00 강릉 삼면 포위공격을 개시하였다.
아군은 맹렬한 공격을 감행 중 육군본부로부터 제6사단 경유, 전화로 다음과 같은 명령을 접수하였다.
제8사단의 영웅적 분전을 치사(致謝)함. 제8사단은 원주로 이동하여 원주를 사수할 것. 이에 사단은 강릉 포위공격을 중지하고 대관령으로 철수하였다.
7월 1일의 정황(부도 제16 참조)
02:30 사단 전투지휘소를 진부로 이동하고 대관령에 1개 대대 병력을 배비하여 적의 추격을 견제하면서 사단 주력은 대관령으로부터 원주로 이동을 개시하였으나 안흥리는 이미 적에게 점령되어 경강도로는 차단되었다.
사단 주력은 돌연(突然) 이동으로 완전한 부대 파악을 하지 못한 관계로 적을 공격하지 못하고 13:30경 평창에 도착, 병력을 정비 후 20:00 제천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이날 야간 적은 횡성을 점령, 원주는 적의 선견대가 침입하였으므로 아 제8사단 주력은 충주로 향하여 이동하고 후위부대 제7연대는 원주를 포기, 제천으로 후퇴를 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