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극장에서 예고편을 보면서 기대를 했다. 살인을 목격한다는 사실만으로 섬뜩하다. 영장류라고 하는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사실만으로도 큰 충격을 준다. 세상의 모든 제도와 법, 홍익인간을 외치던 단군 할배도 살인은 사형으로 처리했다. 인간이 군집과 사회를 이루면서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범죄다.
나는 사형집행의 지지 또는 반대를 주장하지 않지만 인간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로 사형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범죄인의 인권과 선량한 사람들의 인권을 교환함으로 사회적 제도와 파장을 안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살인, 유괴, 강간, 마약사범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는 중국이 후진국 또는 선진국이란 잣대가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를 갖고 있는가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범죄로 인한 불안한 현대사회의 단절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진보된 메시지가 없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좌절되고 무능력한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상훈...이성민이 연기한 배역의 이름이다. 중년의 나이에 주택을 구매하고, 어린 아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다. 직업이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중산층, 타인의 부탁을 받을 정도로 역량과 지식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기대를 갖게 한다. 아무런 이유없이 구속된 피해자의 탈주가 시작되고, 범죄자는 야수와 같이 사냥을 나선다. 그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다.
그 이후부터 전개되는 스토리는 인간 존중은 눈꼽만치도 없는 현재의 세상을 과감없이 보여준다.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기에 수사협조를 하지 않는 주민들을 보면 맹자가 이야기한 측은지심은 내 이야기일 때나 발현되는 인간의 능력같다. 하지만 기대가 배신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은 한상훈이 만들어가는 비겁하고 치졸한 행동이다. 신변보호가 필요한 사람이 더 움츠러들면 범죄 사실을 은닉한다. 그로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려는 의도와 달리 한상훈은 또 다른 살인의 동조자이고 적극적인 협조자이다. 나는 그런 등신력이 싫다. 감독이 관객모두에게 너희들도 마찬가지라는 메세지를 주려고 했다면 나는 "너는 어떠한가?"라고 반문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를 통해서 배우고 나아지면 좋은 일이다. 모두가 사람에게 기대를 하는 이유중에 이런 바램이 존재한다. 하지만 요단강을 건너서 깨닫는다면 의미가 아니라 비난과 소외, 자책만 존재한다. 한상훈을 통해서 나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봤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씬에서 공허한 아파트에서 "살려달라는 외침"이 고난과 실수를 통해 배운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면 아주 아둔한 접근이다. 함께 하자는 외침을 외면한 모습이 유지되고 나에게 관심을 갖아달라는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동네 이웃들에게 아침마다 인사를 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자세만 못하다.
그래서 나는 현재를 살며
골목길에서 사라진 아이들의 수만큼 세상은 훨씬 비인간적인 방향으로 접근해간다고 생각한다. 물질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물질의 발전속에 인간성의 퇴보가 이루어진다면 질적 발전은 훨씬 퇴보한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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