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같이 떠나는 배낭여행] 미친여행 CHAP4_20(최종 완결) 이탈리아 - 태어나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어? I love you
태어나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어?
2011년 12월 12일
1
유럽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다른 곳에서 이 나라의 마지막 날이라면,
마지막으로 무엇이라도 눈에 담아 놓으려 부단히도 애를 썼을텐데,
이상하게 이곳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시내를 잠깐 돌고 들어왔다.
이참에 저녁 장 보는 것도 같이 가 본다.
장이라고 해 봐야 많이 없다. 쌀 몇 봉지 사고 끝났다.
오는 길에 커피나 한 잔 하자신다.
아무것도 모르니 누나가 시키는 걸 따라 시킨다. 카푸치노다.
이 때, 카푸치노 2개를 말할 때 복수형으로 말해야 한단다.
카푸치노가 아니고 카푸치니란다. 2를 ‘두에’라고 하니깐 ‘두에 카푸치니’라면 된다고.
영어는 ‘s’만 붙이면 만사 형통인 것 보면
영어는 이런 이탈리아어에 비해서는 그리 어려운 언어는 아닌 것 같다.
크리스마스크리스마스크리스마스
나머지 시간은 마지막 정리를 하면서 빈둥빈둥 보냈다.
시간도 참 주마등이다.
시간이라는 게, 갈 당시는 정말 지지리도 안 가는데, 지나 보면 빠르다.
노숙하다 비 맞고 일어나서 달렸더니 끝없는 산이 나오고,
산을 계속 올라가니 눈이 쌓여 있었던 기억이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오슬로에서 있는 옷 몽땅 털렸던 것,
그 덕에 갈아 입을 옷이 없어 결국 엉덩이에 욕창까지 났던 이야기까지.
처음엔 참 고생 많이 했다.
본격적인 여행은 에스토니아 아구르, 아르고 형제 집에서 묵었던 날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지.
이 집 뒤로는 여행에 적응이 되어서 달리는 거리와 코스 정도는 다 조절이 되었지.
이 이후로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기꾼, 바도비체의 신부님과 성가족들, 프라하의 인연들,
로만틱 가도 위에서 도움을 줬던 분들,
잘츠부르크에서 양복을 빌려준 민박집 사장님과 빈에서 같이 립을 먹은 분들도 지나간다.
크로아티아의 악연이었던 형, 지금도 길 위에 있지.
그리고 같이 락 페스티벌을 뒤었던 마리나, 마르티나, 즈링카, 그리고 로브로.
그 중에 마리나와 로브로는 아직도 연락이 닿지.
기류가 미묘했는데 나와 엮이지 못한, 미호와 아가타.
마음이 따듯함을 안겨 주셨던 목사님과, 엘리스.
그리고 키체보 주민들.
이스탄불에서 내 곁을 스쳐갔던 많은 고객님들. 사람들 참 많이도 나온다.
오래 다니긴 다녔구나. 나도 내가 참 대단하다.
짐을 꾸려본다. 처음과 많이 다르다.
자전거가 없다.
대신 캐리어가 생겼다.
토리노를 뜨기 전 사라와 중국 샵에서 단돈 12유로에 산 것이다.
싼맛에 알뜰살뜰하게 쓰고 있다.
그리고 옷 몇 가지.
스웨덴에서 모두 장만한 후로는 잃어버리지 않았다.
배낭이 바뀌었다.
고등학교 때 들고 다녔던 가방은 노르웨이에서 털리고,
대신 아구르, 아르고가 준 덴마크 군용 배낭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것 이외에...엔 없다.
짐 참 단출하다. 털릴 짐 조차도 없으니 뭐.
이방인에게는 문화유산, 그들에겐 일상
이모가 나를 위해 특별히 저녁 시간을 당겨 주었다.
엊그제 그 사건이 어지간히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저녁으로는 감자탕이 나왔다. 마지막 밥상 참 거하다.
이렇게까진 안 먹어도 되는데.
몇 시간뒤면 우리네 밥 지겹도록 먹을텐데.
2
공항가는 기차로 가는 길은 누나가 배웅해주었다.
돈도 못 벌면서 공항기차는 꼭 자신이 사야 한다고 우긴다.
12유로나 하는 놈을 말이다...
기차가 들어온다.
누나와는 한국에서 보기로 기약한다.
보통 내가 사람들을 보냈는데, 누가 나를 보내주는 건 처음이다.
신기하고 익숙치 않다.
경치를 보면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뭔가 아차 싶었다.
핸드폰. 이렇게 가방 안에 모셔두려고 보낸 핸드폰이 아닐텐데.
마지막으로 떠나가는 길에 사라한테 고맙다는 이야기는 해야겠지?
나는 사라 번호를 기억하진 않지만, 어떻게 걸 지는 안다.
사라가 우겨서 무려 자기 번호를 단축번호 1번에 모셔두니...
‘따르르르르르릉.....툭!‘
“어, 여보세요?!”
반쯤 업 되어 보이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어.. 나야.”
“지금은 어디야?”
“어, 이제 공항가. 좀 있으면 한국 가는 비행기 시간이야.”
“진짜? 벌써? 시간 빠르네!”
“그치.”
“그리고 2년도 빨리 갈거야.”
“뭔데?”
“나 한국 가는거.”
“안 오기만 해봐라.”
“아니야. 진짜 꼭 갈거야!
지금까지 모아 놓은 돈도 있고, 더 모아서 갈거야!
봐봐. 진짜 서빙하고 학교서 일하면서 10000 유로는 모았단 말이야.”
“응응”
“진짜 나는 몇 년 전부터 계속 한국행을 준비했으니깐.
대학도 거기로 가서 진짜 3개 국어는 마스터할거야!”
또 시작되었다. 한국행 이야기. 그리고 자칭 언어 습득 천재설.
“그래그래.”
“그리고 거기 가서 오빠들도 꼭 볼거고... 나중에 오면 도와줄거지?”
“연락이나 끊기지 말어.”
“그래야지. 이제 또 학교 끝나면 또 돈 벌기 시작해야지.”
“그렇지.”
“엄마가 옆에서 그 동안 너무 즐거웠다고, 잘 들어가라고 전해달래.”
“나도 사랑한다고 전해줘.”
“잠깐만! 방으로 가서 할게.”
발 소리가 난다. 주위가 고요해진다.
더 이상 도마 소리가 나지 않는다.
사라의 목소리가 바뀐다.
무게가 잡힌다.
“오빠.”
“응?”
“일 주일은 절대 잊지 못할 거야.”
“응, 나도. 이탈리아를 그렇게 깊숙이 체험하게 해 줘서 고마워.”
아까만치 발랄하진 않은 목소리다.
“프란체스카도... 오빠... 고맙데...”
“어, 응...”
전화 너머 목소리가 떨려 온다. 나도 덩달아 뭐라 할 수가 없다.
“한국 가면 도와 줄거지?”
“그래야지?”
“우리... 친구... 맞는거지....?”
“어.. 어어... 응...”
머릿속에 오만 생각이 떠 다닌다.
혹시... 혹시.. 하면서도
착각이겠지라는 반대 생각도...
그래.. 착각이지.. 그럴거야.
“태어나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어?”
“뭔..... 데....?”
“I love you.”
가슴이 저리다.
머리가 하얗다.
밤 7시. 칠흙같은 마을 너머 공항의 불빛이 보인다.
잠시 후 피우미치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승객 여러분들...’
“들려?”
“응?”
“방송.”
“아니.”
“공항 왔다고.”
“아... 어...”
“부모님께 고맙다고 전해드려.”
“그... 래...”
“그리고, 너도.. 고마웠고.”
‘피우미치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잊으신 물건 없이...’
이제 끊어야겠다.
“안녕, ‘친구’. 2년 뒤에 보자.”
“그래. 연락할게. 꼭 봐.”
Ciao,
툭.
I love you.
그 말에 나는 답을 하지 못하고 난 공항에 도착했다.
3
티켓을 받았다.
꿈은 끝났다.
이제 복학이라는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7개월 반 동안 정들었던 유럽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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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o!
근 1년 동안 연재해왔던 미친여행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THE END -
<이전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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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12 욕창 터지고, 기차에 실려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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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8 한국영화 많이 컸네? + 9 첫 주행, 첫 노숙, 첫 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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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_5 첫 주행 + 1_6 북한도 자전거로 달린다고?
CHAP1_3 + 1_4 Bryan Almighty + 자전거의 운명은?
CHAP1_1 + 1_2 인천 출발 + 히드로 도착
CHAP0 준비
CHAP0_번외 가져갔던 장비 일람
CHAP0_6 출국 그리고...
CHAP0_4 자전거 맞추기 + 5 쉥겐조약
CHAP0_3 항공권과 장비 마련하기
CHAP0_2 어디를 어떻게 가볼까?
CHAP0_1 다짐
혹여나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시는 스티미언분들.. 도움이 되셨을련지요?
도움이 되었다면 UpVote + 리스팀 부탁드리겠습니다 -_-)/
후문을 선물해주신 @mimitravel 님 감사합니다!!
여행지 정보
● Roma, 로마 이탈리아
● Fiumicino Aeroporto, 피우미치노 로마 이탈리아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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