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도구탓] 홋카이도 여행기 2일차(오후)
12월 24일 오후 / 오타루, 삿포로
점심을 해결한 뒤에는 요이치 역으로 향했다. 역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다들 큰 가방이나 캐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오타루로 가는 여행객들인 것 같았다. 오타루에서는 요이치의 한산함을 기대해선 안 될 것 같았다.
가이드북들은 대체로 미나미오타루 역에서 오타루 여행을 시작하길 권한다. 오타루 여행의 중심이 되는 시카이마치 거리의 시작점, 메르헨 교차로가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이치 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미나미오타루 역엔 정차하지 않았다. 관광지가 아닌 곳도 둘러볼 겸, 우리는 오타루 역에서 내려 메르헨 교차로를 향해 걸었다.
오타루 역을 등지고 나오니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오늘도 날씨가 따뜻했다. 도로의 반쯤 녹은 눈들 때문에 걷기가 조심스러웠다. 큰 도로를 피해 골목길로 들어섰다. 머리 위의 고가도로나 지붕에서 눈 녹은 물이 뚝뚝 떨어져 피하기 바빴다. 그러다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인지, 아직 제설작업을 마치지 않은 곳인지, 눈이 녹지 않은 골목길을 마주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런 길을 만날 때마다 눈싸움을 했다.
└ 눈이 다 녹지 않은 오타루의 골목길요이치 역에서의 예감이 맞았다. 골목길들은 한산했지만, 본격적인 관광지인 메르헨 교차로는 여행객들로 붐볐다. 오타루가 고즈넉하진 않더라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고 여유로울 거라 기대했던 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메르헨 교차로에서 먼저 들른 곳은 오르골당이었다. 기념품으로 하나 살까 싶었지만, 눈에 차는 것들은 다 내 기대보다 비쌌다. (비싸다고 투덜댔지만 한국 와서 보니 오르골 가격이 크게 차이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동화 속 소품 같은 착각이 드는, 정말이지 다양한 오르골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 오르골당의 외부와 내부
└ 정말 비쌌던 오르골. 160만엔 정도. 일반 상품들과는 다르게 만질 수 없다.4시 정도에 오르골당을 나왔다. 해가 져 반쯤 어두웠다. 상점들이 등을 켜면서 거리의 운치가 살아났다. 당장 눈이 내리지 않는 것도, 지붕마다 눈이 쌓여있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타루 역에 처음 내렸을 땐 느낄 수 없었던 설렘과 기대가 살아났다.
오르골당을 나와 스위츠 전문점들을 순회했다. 오르골당 맞은편에는 르타오 본점이, 그 뒤로는 기타가로와 롯카테이가 있다. 하나같이 눈과 입이 즐거운 곳들이었다. 형형색색의 스위츠들이 방문객들을 유혹했다. 그것들 전부는 아니어도, 다양한 디저트들을 맛볼 수 있었다. 처음 접하는 달달함에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나중에 몇몇은 면세점에서 구매했다)
롯카테이에서는 85엔짜리 슈크림을 사면 무제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평소 슈크림을 좋아하는 여자친구는 맛있어했다. 나는 슈크림의 빵이 다소 질긴 것이 아쉬웠다. 슈크림과 빵이 같이 녹아내리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커피는 일회용 종이컵에 직접 따라 마실 수 있었다.
└ 오른쪽 건물이 르타오 본점
└ 르타오 본점 내부 전망대에서 바라본 메르헨 교차로
└ 롯카테이와 기타가로시카이마치 도리의 상점들을 구경했다. 5시 쯤 됐을 때 어떤 건물에 들어섰다. 목조 지지대가 천장과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전구, 유리 램프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내부는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딱 커플들이 있기 좋은, 분위기 있는 장소였다. 6시 마감이었지만, 분위기에 압도된 우리는 이곳을 지나치지 못했다. 눌러앉아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나중에 가이드북을 보니 기타이치 3호관이라는 곳이었다. 점등식을 할 때는 영화 해리포터의 한 장면 같다는 평이 쓰여 있었다. 아마 호그와트의 연회 장면과 비슷하다는 말일 것이다. 점등식을 보진 못했지만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 기타이치 3호관 내부저녁에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기타이치 3호관에서 나왔을 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서둘러 오타루 운하로 향했다.
여행 오기 전 여자친구가 가장 기대했던 곳이 오타루 운하였다. 사진으로 봤을 때 오타루 운하는 분위기 끝판왕이었다. 하지만 메르헨 교차로와 기타이치 3호관에서 한껏 부푼 설렘과 기대 때문인지, 내려다 본 운하는 예상만큼 분위기 넘치는 곳은 아니었다. 해가 이미 다 져버려서, 또는 눈이 쌓여 있지도 내리지도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운하 옆길로 내려와 눈높이를 낮춰서 본 운하는 충분히 특색 있는 곳이었다. 폭이 넓지 않은 물길 옆에 창고로 쓰이던 낮은 건물들이 붙어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는 길이었다. 낮은 건물들을 부수고 조금이라도 더 높은 건물을 지었다면, 답답한 느낌을 주는 길이 됐을 것이다.
오타루 여행의 마지막을 운하를 걸으며 보내다 오타루 역으로 돌아왔다. 기차를 타고 삿포로로 향했다.
└ 오타루 운하여행 둘째 날 저녁은 규탕(우설)정식 먹기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달달하고 열량 높은 스위츠들을 한껏 시식했던 우리는, 단백질 덩어리가 별로 당기지 않았다. 계획을 바꿔 스프카레를 먹기로 했다. 스스키노 역 밖으로 나왔을 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첫날 다루마 만큼은 아니었지만, 스프카레집 스아게 플러스 앞에도 꽤 긴 줄이 있었다. 대기하는 동안 점원이 주문을 받았다. 스프카레에 들어갈 고기 등 메인을 고르고, 스프 종류와 밥 양 등을 정하는 식이었다. 스프는 오리지널 스프와 오징어 먹물이 첨가된 스프(블랙 스프) 두 종류가 있었다. 여자친구는 닭고기에 오리지널 스프를, 나는 양고기에 블랙 스프를 선택했다. 6단계로 매운 강도도 정할 수 있었는데 나는 3단계, 여자친구는 4단계를 선택했다.
국물 한 입을 떠먹었을 때, 빗물과 함께 몸에 스며들었던 한기가 한 순간 녹아내렸다. 삿포로 사람들의 소울푸드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이드북의 저자는 삿포로에 살면서 해장이 필요할 때마다 스프카레를 먹었다고 했다. 정말 한국인의 해장 취향에도 딱 맞는 맛이었다. 평소 카레를 즐겨 먹지 않던 나는, 순식간에 한 접시를 비웠다. 다만 중간 이상 단계를 선택한 것이 무색하게 하나도 맵지 않았다.
양고기가 들어간 블랙 스프는 정말 내 입맛에 맞았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내 스프카레를 한 입 먹어보더니 다시 먹지 않았다. 다루마의 징기스칸과는 다르게, 스프카레에서는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강하게 난다고 했다. 내심 한국에 돌아가서도 같이 양고기를 먹고 싶었던 나는 절망했다.
└ 밑에 있는 게 내가 주문한 양고기에 블랙 스프카레스아게 플러스를 나와 소화도 시킬 겸 오도리 공원을 산책했다. 여의도 공원처럼 한쪽으로 긴 오도리 공원에서는 뮌헨 크리스마스마켓과 화이트 일루미네이션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마켓은 독일 요리와 크리스마스 물품들을 판매하는 행사인데, 시간상 끝물이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45만개의 전구 장식이 거리를 수놓는다는 화이트 일루미네이션은 사진으로 봤을 때 화려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예산이 삭감된 듯, 사진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 실망스러웠다.(오도리 공원을 다 둘러본 것은 아니기에 전부 본 것인지는 모르겠다) 숙소에 짐을 푼 뒤, 근처 이자까야에서 한 잔 하고(맛없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들었을 땐 새벽 세시 정도였다.
겨울 오타루 참 멋지네요.. 새벽 세시까지 다니시다니 피곤하셨겠어요 ㄷㄷㄷ
그래서 다음날 아침은 늦게 일어나버렸습니다ㅋㅋㅋ 보팅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