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신문광고의 탄생_The birth of tobacco and newspaper ads
17세기 영국 신문의 광고로 실린 이 삽화에는 담배 농장에서 고되게 일하는 흑인 또는 인디언 노예들과 칼을 들고 앉아 감독하는 백인 관리자 또는 농장주의 모습이 보인다. 담배 연초 농사는 매우 온도가 높은 곳에서 재배되어 건조해야 하며 연초의 심한 냄세와 액체를 온몸에 묻혀야 작업이다.
멀리 바닷가에 보이는 배들은 '포드 버지니아' 담배가 북미에서 만들어져 영국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작은 광고 하나에 17세기말 흑인 노예들의 고된 현실과 식민지적 국제 관계가 고스란이 담겨 있다. 17세기 영국 신문에 실린 '포드 버지니아' 담배 광고이다.
유럽 국가들의 신대륙 침략은 1494년에 스페인은 중앙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정복하면서 시작된다. 마젤란이 서쪽으로 돌아 지구를 일주하는 항해에 나선 1519년에 에르난 코르테스는 멕시코 원정을 시작했다. 16세기 중엽에 이르자 정복자들의 시대는 식민지시대로 바뀌었다. 식민지 건설은 귀금속과 목축 및 농장경제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귀금속은 인디언 노동력을 이용해 손에 넣었고, 목축 및 농장 경제에는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노예들을 이용했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여 자행한 학살과 노예 사냥으로 금과 농산물만을 약탈한 것이 아니라 2010년 기준으로 한해 11억명이 죽어가고 있는 담배와 인류가 오랜 세월 치료하지 못하고 AIDS로까지 발전하는 매독도 함께 약탈해 온다.
식민지 개척과 대항해시대가 절대왕권과 도시 상인들에 의해 추진되고,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긴 영국이 북미를 식민지로 삼아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절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열러놓은 대항해시대는 신문이라는 미디어를 등장시켰다.
이 시절에 거의 유일한 정보 전달 도구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삽화를 곁들인 광고가 등장한다. 사진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삽화 광고는 동판화로 제작되었다. 이 신문들은 커피 하우스(coffee house)라는 것에 주로 배포되거나 판매되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영국인들이 주로 마시던 음료는 커피였다. 1650년경 옥스포드의 제이컵이 영국 최초로 커피 하우스를 열었다. 그후 런던에는 18세기까지 수천개에 이르는 커피하우스가 열리고 이곳이 뉴스를 나누는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세계적인 해운업이 있었지만 선주(船主)와 하주(荷主)를 중개하는 기관은 없었으며 선술집과 연관에서 상담을 하였는데 예루살렘 커피하우스라는 찻집이 생겨 이 집이 거래소를 대신하는 정소가 되었다.
당시 런던에는 수많은 잡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증권이나 테니스 같이 특정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커피하우스가 운영되고 있었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 신문을 무료로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상인들을 위하여 광고의 원고를 신문에 갖다 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