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 Cooper S 1G 2005

in #testdrive6 years ago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얼리어답터의 미니 쿠퍼 시승기입니다.
by jin ([email protected])

미니가 드디어 한국에 들어왔다. 수입차 매장이 몰려있는 도산대로의 구 볼보 매장 자리에 언젠가부터 달랑 물음표 하나만 찍힌 천막이 씌워지더니 안쪽에서 뭔가 한참 공사를 하는 분위기. 당시 길 건너편에 사무실이 있던 얼리어답터에서는 그 앞을 매일 지나가며 무지 궁금해했다. 수소문을 해보니 국내 미니 딜러로 선정된 도이치 모터스의 미니 전시장이 생긴다는 것.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찬 바람이 조금 잦아들 무렵인 2월 말, 드디어 천막이 걷혀 올라갔다.

얼리어답터에서 미니 시승기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내부적인 사정으로 시승이 조금 연기되었지만 도이치 모터스 (http://www.mini.co.kr) 의 성준석 부장님의 배려로 따뜻한 봄날 미니를 마음껏 시승할 수 있었다. 시승차로 고른 것은 미니 쿠퍼S.

Mini

조금 지루하겠지만 미니의 배경을 조금 살펴보자. 미니는 영국이 원산지이다. 당시 석유 수급에 나름대로 고민이던 영국에서 연비가 좋은 소형차의 요구가 높아지자 1959년 8월 26일, 처음으로 미니가 출시되었다. BMC (British Motor Corporation) 라는 생소한 이름의 메이커에서 미니를 제작했는데 영국의 자동차 설계사인 알렉 이시고니스 (Alec Issigonis)는 '작은 차체, 넓은 실내'라는 주제로 설계를 시작해 성인 4명과 수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소형차를 디자인했다. 영국인치고는 이름이 조금 특이한데 사실은 터키인이다. 엔진은 850cc. 국내에서 돌아다니는 경차와 거의 유사하다. 당시 앞바퀴 굴림 방식과 엔진을 횡치(橫置)하는 구성, 그리고 프레임이 따로 없는 모노코크식 차체 디자인은 당시엔 매우 혁신적이었다. 작은 차체에 모든 것을 다 집어넣다 보니 엔진과 트랜스미션조차도 일체형으로 만들어버렸다. 2륜 모터사이클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대충 들어맞는다. 이 구성은 1980년대에 와서야 세계 각국의 메이커들이 앞다퉈 채용하기 시작해 지금은 현재 보급되어 있는 가장 많은 수의 차량에 채용되어있고 소형, 중형뿐 아니라 대형차에까지도 이 구조가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중인 세단의 대다수가 결국 미니의 구조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미니는 1961년 F-1에서 차량 제작자로 명성을 쌓던 존 쿠퍼 (John Cooper)에 의해 Mini Cooper라는 이름으로 새로 탄생하게 된다. 더 크고 빠른 엔진을 장착했고 이어 1리터 오버 엔진을 장착한 쿠퍼S까지 라인업을 구성하게 된다. 이 미니 쿠퍼 시리즈는 1964년부터 1967년까지 몬테칼로 랠리에서 우승을 독차지해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저 귀엽기만 한 줄 알았던 미니가 달리는 것도 예사롭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이후 1980년대 영국의 로버(Rover)사가 미니를 인수해서 그때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로버 미니"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1990년에는 미니 쿠퍼 모델이 재출시 되었는데 당시에 채용되기 시작한 연료분사식 엔진을 탑재하고 에어백, 사이드 임팩트 바 등을 장착해 외형은 변함 없지만 내부는 최신의 테크놀로지로 완전 개편이 된다. 국내에 돌아다니는 올드 미니의 대부분이 이 90년대 발매된 미니인데 당시에 청담동의 한 병행 수입 업체에서 수입해 전시, 판매를 했던 기억이 난다.

1994년은 미니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가 있던 해였다. BMW가 영국의 로버를 인수하면서 미니도 같이 인수가 되었다. 물론 올드 미니는 계속 생산되었고 2000년 10월 6일을 마지막으로 생산이 종료된다. 후에 BMW는 로버를 다시 포드에 넘겼지만 미니만큼은 쥐고 놓지 않았다. 미니를 갖기 위해 로버를 샀다가 팔아 치운 것일까. 참고로 최근 로버는 완전 파산했다.

BMW는 미니를 완전히 재설계한다. 몇 가지 디자인 요소를 제외한다면 아예 다른 차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2001년 드디어 첫 뉴 미니를 발표했는데 당시 라인업은 두 가지로 90마력의 Mini One, 그리고 115마력의 Mini Cooper. 수퍼차저를 장착해 163마력의 풀파워를 자랑하는 Cooper S는 2002년 라인업에 합류했고 2004년에는 모두가 원하던 컨버터블 모델이 추가되었다. 이 중 얼리어답터에서 시승한 것이 라인업 중 탑 모델인 쿠퍼S. 국내에는 Mini One은 수입되지 않고 컨버터블은 2006년으로 예정되어 있다.

S for Supercharger

쿠퍼S가 보통 쿠퍼에 비해 가장 큰 특징이라면 역시 수퍼차저 과급기에 있다. 일반 쿠퍼에 수퍼차저를 달고 늘어난 파워만큼 서스펜션 등을 보강한 모델이 바로 쿠퍼S. 수퍼차저가 무엇일까? 아직 국내에는 수퍼차저가 장착된 차량의 보급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같은 과급기 종류 중 하나인 터보차저에 비해서도 인식이 떨어진다. 수퍼차저란 뭘까? 간단하게 알아보자.

자동차는 사람과 유사한 점이 많다. 사람이 제대로 달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식사와 호흡이 필요하듯 자동차도 연료와 공기가 필요하다. 사람은 식사와 호흡을 섞어서 하지 않지만 자동차는 공기와 연료를 섞어서 섭취한다. 연료를 분사해 안개상태로 만들어 연료와 산소와의 접촉면적을 극대화시킨 것을 혼합기라고 부른다. 이 혼합기를 엔진의 실린더 내에 넣어 압축해서 폭발을 일으켜 회전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혼합기에서 공기와 연료의 비율이 중요한데 공기가 너무 많으면 폭발이 제대로 되지 않고 연료가 너무 많으면 불완전 연소가 되어 연비도 나빠지고 배기가스도 지독해진다. 이론상으로 공기와 연료의 가장 효율적인 비율은 14.7:1로 알려져 있고 이 수치를 이론 공연비라고 한다. 폭발력을 키우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 혼합기의 절대적인 양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혼합기의 양을 늘이기 위해 연료만 더 분사해봤자 그만큼 공기의 양이 늘어나지 않으면 불완전 연소만 유도하는 결과가 나오니 분사되는 연료에 맞춰서 공기를 더 빨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연료는 연료분사펌프에서 제어하기에 그 양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지만 공기는 에어필터를 통해 자연스럽게 공급되기 때문에 억지로 흡입량을 늘리거나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공기의 중요성은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공기가 차가운 새벽에 차가 더 잘 달리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착각이 아니다. 차가운 공기는 밀도가 높아져 체적당 산소함유율이 높아지기에 실제로 차량의 파워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도 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어쨌든 흡입되는 공기의 양을 억지로 늘일 수 없는 약점을 보충하기 위해 공기를 과(過)하게 공급해주는 기기, 즉 과급기가 개발된 것이다. 과급기는 쉽게 표현해 공기펌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공기를 밀어 넣어주기 위해서는 의외로 큰 파워가 요구된다. 단순한 전기모터 팬 수준으로는 공기를 필요한 만큼 압축할 수 없으니 엔진에서 나오는 힘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수퍼차저 과급기이다. 엔진의 크랭크샤프트에서 나오는 동력을 이용해 공기를 압축하게 되는데 이 방법의 단점이라면 과급의 결과로 얻는 파워도 있지만 과급을 위해 소비되는 파워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물론 얻는 파워가 더 크기 때문에 이 방식의 존재 의미가 있지만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터보차저가 더 유리하다. 터보차저는 엔진에서 동력을 끌어내는 대신 버려지는 배기가스의 배압을 이용하는 것으로 머플러를 통해 대기 중에 방출되는 고속 고압 가스를 이용해 터빈을 돌려 공기를 압축시킨다. 어차피 버려지는 무에서 유를 창출하기에 상당한 효율을 자랑하지만 대신 과급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한 스텝 먼저 액셀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그 감각적인 시간차가 존재하게 된다. 가속을 위해 액셀을 밟았는데 한호흡 쉬고 튀어나가니 그것이 바로 유명한 터보랙. 수퍼차저는 터보만큼의 효율성은 없지만 터보랙이 없어 조금 더 자연스러운 회전상승 감각을 전해주기에 위화감 없이 한 치수 더 큰 엔진을 다루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장점이 있다. 양산 업체 중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비교적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모델명 뒤에 K가 붙어있다면 십중팔구 이 수퍼차저 엔진이 달려있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수퍼차저보다는 터보차저가 월등하게 많이 사용되고 있긴 하다.

쿠퍼S는 1.6리터 엔진에 수퍼차저를 장착하고 있다. 체감 파워는 2리터 엔진 정도라고 보면 대략 비슷하다. 상대적으로 세금도 적고 무게도 가볍고 공간도 적게 차지하기 때문에 장점이 많다. 대신 발열이 많기에 엔진후드에 에어 인테이크가 뚫려있는 점이 쿠퍼와 쿠퍼S를 구분시켜 주는 디자인 요소로 존재하고 있다. 물론 후면의 머플러 디자인도 다르다.

Go, Mini!

시동 키를 받아 들고 일단 자리에 앉아 마음이 급한지 시동부터 먼저 걸어본다. 꾸르르… 쿠릉~! 의외로 무게감이 확실한 호흡을 토해낸다. 뭔가 알차고 매끄러운 덩어리가 초고속으로 회전하고 있는 와중에 은은히 배어 나오는 존재감이랄까. 아이들링 소음은 적당하다. 잡음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엔진음보다는 배기음이 적당히 묵직한 울림으로 느껴진다. 노이즈(Noise)보다는 확실한 노트(Note)의 필링. 순정 머플러에서 경험하기 힘든 잔잔한 흥분이 어느새 목까지 차오른다. 전륜구동임에도 불구하고 스티어링 휠에서 느껴지는 잔진동은 거의 없어 높은 완성도를 느끼게 해준다.

엔진이 예열되기를 기다리며 시트 포지션을 조절한다. 사실 요즘 엔진은 예열이 거의 필요 없다. 오히려 시동을 걸고 바로 저속으로 달려주는 편이 엔진뿐 아니라 전체적인 구동계가 적절히 윤활 및 예열이 된다. 공회전은 이래저래 불리한 상황에서 엔진 회전을 안정시키기 위해 혼합기가 상당히 짙게 셋팅되므로 배기가스도 그만큼 독해지니 환경에도 좋지 않다. 무엇보다도 주위에 민폐를 끼친다.

실내는 의외로 여유공간이 있다. 물론 대형차 수준의 널널한 공간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그래도 밖에서 보는 미니 사이즈를 생각하면 실내에서 느껴지는 공간은 흡사 마술을 보는 기분. 헤드룸이 특히 넓은 것이 주된 이유인 듯하다. 시트 포지션을 조절하기 위해 시트 왼쪽 하단으로 손을 넣었는데 공간이 없어 들어가지 않으니 그제야 미니에 탔다는 실감이 난다. 체감 실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 없는 구석을 정교하게 재배치한 결과다. 모든 시트 포지션 조절은 앞쪽 하단이나 센터 측에 위치한다. 시트는 충분히 뒤로 물러나니 다리가 긴 사람도, 앉은 키가 큰 사람도 불만은 없겠다. 예전에 구형 미니를 시승했을 때 남자 둘이 앞 좌석에 앉으니 서로 어깨가 닿을 듯 말듯해서 민망했지만 연인이 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의 뉴 미니는 그럴 기회가 없겠다. 앞 좌석은 체감적으로는 준중형 사이즈 정도.

액셀과 브레이크 간격을 체크하는데 풋레스트가 없이 발이 미끄러진다. 예전에 닷지 바이퍼를 시승할 때 풋레스트가 없어 무지 당황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데 다시 살펴보니 약간 가운데 쪽 깊이 풋레스트가 당당하게 있다. 아마도 미니 차체 사이즈와 운전석에 바싹 붙어있는 전륜 덕에 휠하우스를 피해 안쪽에 위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심증. 다리가 짧은 사람은 경우에 따라 풋레스트 위치에 위화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 페달은 금속재질로 미끄러짐을 방지한다. 플라스틱 재질은 신발이 젖었을 때 의외로 잘 미끄러진다.

일단은 도로를 나선다. 스티어링 휠은 약간 작은 파이로 손에 짝 달라붙지만 의외로 묵직하다. 여성에겐 조금 무겁지 않을까? 오토매틱 시프터를 D에 놓고 거리로 나선다. 클리핑도 적당하고 초반 발진 토크도 좋다. 도로에 나선지 10초도 지나지 않아 밑도 끝도 없이 좋았어! 하는 뜬금없는 기분이 든다. 미니의 후광 효과일까. 액셀러레이터는 약간 민감한 편. 살짝 밟을 때마다 가르릉거리는 미니는 계속 오른발에 힘을 주게 만든다. 오늘의 시승도로는 북악 스카이웨이. 추월할 수 있는 포인트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 운이 나쁘면 저속 차량 뒤에 계속 이끌려 다니는 스트레스가 있는 도로라 그다지 선호하는 곳은 아니지만 어쩐지 미니에게 어울릴 듯한 도로라 중미산 와인딩 대신 이곳을 택했다. 스카이웨이의 좁은 도로를 탱글탱글 귀엽게 달리는 미니의 모습을 상상하니 이젠 스카이웨이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선 시내를 달리며 주행 느낌을 체크. 스티어링 휠은 일정하게 묵직한 느낌이다. 중고속에서도 적당히 무거운 느낌인데 저속이나 정지 시에도 별 차이가 없다. 좁은 골목길을 연속으로 달리거나 평행주차를 조금 헤매는 경우엔 팔 힘이 조금 필요하겠다. 액셀의 답력은 적당하다. 주행 직후부터 위화감 없이 바로 익숙해졌다. 일단 가벼운 느낌이 아니라 좋다. 브레이크 답력도 재미있다. 소형차의 브레이크 필링이 아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포르셰의 그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부드럽게 꽂히는 감각은 아니다. 둔중한 돌덩이를 밟아 묵직하게 속도를 깎아먹는 느낌. 예민하지 않으니 부드러운 감속/정지 거동이 가능하지만 브레이크 용량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브레이크 답력 하나만으로 전체적인 주행 느낌의 성격이 변한다. 의외였다.
유턴은 차체 크기에 비해 수월하진 않다. 회전반경이 의외로 크니 준중형 차를 회전시킨다는 느낌으로 돌리면 대충 맞는다. 가득 찬 엔진룸 덕에 휠하우스의 여유가 줄어든 탓이다. 원래 전륜을 구동하는 구조는 조향과 구동을 전부 앞 바퀴를 이용하기 때문에 구조가 복잡해져 바퀴를 크게 꺾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않기에 회전반경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미니는 그 당연한 것에 비해 약간 더 크다.

하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오토매틱 트랜스미션. 사실 필자는 3년 전에 쿠퍼S를 북미에서 시승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물론 6단 매뉴얼 트랜스미션. 당시 쿠퍼S에 오토매틱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에 시승한 쿠퍼S와의 차이라면 트랜스미션 이외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주행 감각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당시 시승했던 매뉴얼 트랜스미션의 쿠퍼S의 가속은 감동 그 자체였다. 1.6리터 밖에 안 되는 작은 엔진이 어떻게 이렇게 매끄럽고 호쾌하게 회전수가 올라가는지, 어떻게 이렇게 가멸차게 달리는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손맛이 짝짝 붙어 올라오는 감동을 주는지. 회전 수가 올라가면서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슈퍼차저의 쐐애액 하는 정밀하고도 짜릿한 구동음. 유격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 느껴지는 스티어링 감각과 더불어 온몸의 감각이 쿠퍼S의 부품 구석구석으로 신경돌기가 뻗어 말 그대로 인마일체가 되어 필자 자신이 아스팔트 도로를 코로 훑으며 달리는 느낌이었다.

이번 시승에서는 그때의 그 짜릿한 느낌이 상당부분 반감된 느낌이다. 일단 엔진과 타이어 사이의 직결감이 희박하다. 엔진을 충분히 돌려도 그 회전력이 타이어로 가기 전에 상당부분 어디론가 새어 도로에 흩어지는 기분. 일반 도로를 달릴 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스카이웨이 초입의 성북동 부촌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서 명확해졌다. 언덕 주행이 힘에 부치는 느낌. 지금까지 시승했던 최신 자동차 중에 언덕에서 힘이 딸리는 인상은 오랫만이다. 엔진은 유구하되 체감 파워가 수상하다. 역시 토크 컨버터에서 손실되는 에너지가 예상 외로 큰 듯싶다. 회전에 따르는 엔진 사운드도 매뉴얼 트랜스미션과 틀리다. 어딘가 힘들어하는 기색이 뚜렷하다. 미션 소음으로 추측된다. 시내 주행에서도 변속 시점이 비교적 뚜렷하게 느껴지는 정도였으니 엔진과 차체가 훌륭한 만큼 아쉬운 부분이다.

스카이웨이 와인딩으로 들어섰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마음 편하게 속도를 낼 수 있는 코스는 아니다. 거의 대부분 블라인드 연속 코너에 도로 옆은 도랑이 큼직하게 입을 벌리고 있고 도로 폭도 좁은 와중에 갓길을 산책하는 주민마저 있으니 와인딩이 즐겁다기 보다는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추월 차선이 없어 저속차량을 만나면 꼼짝없이 뒤를 따라갈 수 밖에 없고 그 저속차량이 두 대 이상인 경우엔 추월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지면을 빌려서 한 말씀 드리자면 스카이웨이에서는 차를 마음껏 달리면 안됩니다. 이날의 시승은 매우 조심하면서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미니는 한계를 즐기는 차는 아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한계까지 가지 않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차가 바로 미니다. 요즘 속도를 낼 수 있는 도로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건 한국에 국한된 상황도 아니다.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땅덩이 넓은 미국보다 오히려 한국이 더 달리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어쨌든 달릴 도로도 없는데 계속 빠른 차는 나오고 있다. 뭔가 아이러니하다. 이런 와중에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컨셉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저속 스포츠. 빨리 달려야 기분 좋은 스포츠카가 한 세대 전의 컨셉이라면 지금은 빨리 달리지 않아도 즐거운 스포츠카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로드스터가 그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중저속으로 달리며 도로를 느끼고 바람을 느끼며 끊임없이 차와 무언의 대화를 하며 그 인터랙티비티를 즐기며 희열을 느끼는 차. 그런 즐거움이 있다면 차의 종류나 스펙을 떠나 충분히 스포츠카로 불릴 자격이 있다는 의견이다.

시내 주행이나 주차 시에는 조금 무겁지 않은가 싶었던 스티어링 필링이 연속 코너에 들어서니 제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가벼운 스티어링 휠은 코너를 돌아가면서 예상 라인을 맞추기 위해 의도적인 조율을 해야 하지만 이렇게 묵직하고 돌리면서 적당한 저항감을 갖는 스티어링 휠은 코너 각에 맞춰 무의식적으로 팔에 힘을 실어주면 굳이 휠의 돌아간 각도를 머릿속에 피드백을 시킬 필요도 없이 딱 그만큼 돌아간다. 아무 생각도 할 필요 없이 사람과 차가 하나가 되어 좌우로 흔드는 트위스트. 이 이상 즐거울 수 없다. 끝이 말린 블라인드 코너도 쉽다. 돌아가면서 돌아간 각도만큼 계속 손에 힘만 더 주면 된다. 조향 감각은 뉴트럴에 가까운데 간혹 재미난 거동을 보인다. 어느 조건에서는 약한 언더 기미도 있는데 또 어떤 상황에서는 프론트의 급한 회전을 뒤가 따라오면서 살짝 밀리는 오버도 간혹 느낀다. 그렇다고 언더를 지속하다가 한계를 넘어가면 바로 오버가 되어버리는 리버스 스티어는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 약간 특이한 경험이었는데 기본적으로 약언더 세팅에 뒤가 상대적으로 가볍게 중량 배분이 되어 노면상태가 고르지 않을 때 리어 타이어가 살짝 튀어 미끄러지는 정도가 아닌가 싶다. 물론 뒤가 가벼운 편이라 그 이상의 모멘텀이 발생하지 않으니 거동을 바로 잡을 필요도 없이 차는 계속 앞머리를 따라 안전하게 달린다. 원래 트렁크 공간이 따로 없는 2박스 해치백 스타일은 뒤가 가벼운 편이다. 급한 코너에서 사이드 브레이크로 뒤를 날려보고 싶은 충동. 그런 재미난 시도는 나중에 본인 소유의 미니가 생기면 넓고 탁 트인 안전한 곳에서 한번쯤 시도해보는 것으로 일단 미뤄두자. 스티어링은 매우 직설적이다. 꺾으면 꺾는 대로 돌아간다. 록투록(lock to lock)도 매우 짧다. 기분 탓인지 유격도 거의 없는 듯하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매우 미니답다… 라면 적절할까. 어쨌든 미니를 더욱 체감적으로 미니답게 만들어주는 스티어링 감각이었다.

차체의 강성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이 정도 수준의 차체라면 200마력 오버의 심장을 달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예전에 시승했던 쿠퍼S M/T의 경우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거의 이상적인 조화 덩어리였다. 이번에 시승한 A/T는 동력성능이 차체를 약간 못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차 두 대를 번갈아 가며 타야 느낄 수 있는 수준이니 단독으로 달린다면 그저 즐겁게 달릴 수 있다. 미국에서 시승했던 쿠퍼S는 생산 초기 모델이라 그런지 뒤쪽에서 삐그덕 소리가 간혹 들리곤 했는데 지금의 쿠퍼S는 삐그덕의 삐 소리도 없게 잡음은 치밀하게 잡아냈다. 오토매틱 트랜스미션의 변속 타이밍도 적절한 편이다. 이러면 변속하겠지? 싶은 타이밍에 딱 맞춰서 업/다운이 된다. 한가지 특필할만한 내용은 내리막길에서도 쓸데없이 시프트 업이 되어 속도가 빨라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리막길에서 굳이 매뉴얼로 전환해 기어를 고정시킬 필요가 없다. 물론 이런 비슷한 기능은 여러 차종에서 경쟁적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쿠퍼S처럼 입맛에 딱 맞는 세팅은 처음이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스티어링 휠 주위에 달려있는 매뉴얼 시프터를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좋을 듯. 적절한 위치에서 업/다운이 되고 또 기어가 고정되었으면 하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활기차게 달릴 수 있게 배려해준다. 토크 컨버터의 파워 손실에 대해 약간 아쉬운 기분이었지만 이런 적절한 세팅이 모자란 부분을 어느 정도 채워준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온갖 잡생각을 하며 쿠퍼S를 이리저리 내던지는데 앞에 저속 차량이 보인다. 비교적 긴 코스에 비해 추월차선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묘한 도로 스카이웨이. 왕복 두 번째 주행을 막 시작한 터라 어쩔까 고민하며 눈치를 보고 있는데 앞이 트인 연속 S 코너에서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줄여준다. 손을 흔들어주고 바로 추월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순간 추월 가속은 불만 없다. 폭발적이진 않지만 예상했던 시간에 원하는 공간까지 이동해준다. 예상에 맞아 떨어지는 느낌. 차와 운전자의 이런 정밀한 상호 감각은 언제나 즐겁다.

북악 스카이웨이는 벚꽃과 개나리가 동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쿠퍼S의 선루프를 끝까지 개방하고 좌우 윈도우를 모두 열었다. 오픈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충분한 개방감이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황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런 상쾌한 즐거움에 폐가 조금 노래지면 어떤가. 선루프는 개방하면 앞에 밀려 올라오는 대형 디퓨저 덕에 풍절음은 그다지 크지 않다. 예전 메르세데스 벤츠 C 쿠페를 시승할 때 파노라믹 루프를 어중간하게 개방하면 실내에 우웅하는 묘한 중저음에 고막이 고생스러웠는데 쿠퍼S는 개방 위치와 상관 없이 조용했다.

승차감은 스포츠카의 시선에서 보자면 적당히 무르고 적당히 단단한 정도. 일반 세단의 시선에서 보자면 당연하겠지만 딱딱하다. 어디까지나 달리기 위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컨셉. 달리지 않고 미니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부드러운 서스펜션을 채택한 옵션이 있으면 어떨까. 물론 그런 역할은 일반 쿠퍼가 하겠지만 쿠퍼 역시 세단의 시각에서 보자면 딱딱한 편. 성능과 승차감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 어불성설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일반 대중이란 그런 존재다. 이렇게 당돌하게 빠르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얌전하고 부드럽게 달릴 수 있는 미니가 한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
Interior

스카이웨이 반복 주행에 배가 슬슬 고파져 (미니가 아닌 필자가) 팔각정에 차를 세운다. 이제야 인테리어가 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2002년도에 시승했던 미니와 가장 큰 차이라면 계기판. 당시엔 속도계가 센터페시아 한가운데 큼직하게 달려있었고 스티어링 휠을 통해 보이는 계기판은 회전계 하나만 존재했었다. 지금은 속도계와 회전계가 스티어링 휠쪽에 한 쌍으로 모여있고 센터페시아의 커다란 원형 계기판은 내부적으로 좀 더 세분화되어 역할을 나눠가고 있다. 센터 계기판은 네 가지의 아날로그 계기판의 집합과 여러 경고등으로 이루어져있고 위로부터 냉각수 온도, 유압, 유온, 그리고 연료계로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다. 참고로 유압계와 유온계는 최근 모델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게이지로 쿠퍼S의 스포츠성을 대변하고 있다. 실용적인 부분보다는 디자인적인 면이 더 강하지 않은가 싶다. 일반적인 주행 패턴에서 평소 체크 루틴만 따른다면 유압계나 유온계는 그다지 참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센터 계기판 좌우에는 비슷한 이미지로 대칭의 송풍구가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경고등과 계기판 밝기 조절 버튼이 위치하고 있다. 속도계는 240km/h까지 프린트되어 있다.

스티어링 휠은 나무랄데 없다. 디자인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양보 없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좌우의 버튼은 작지만 조작하기 편리하고 매뉴얼 모드일 때 기어를 수동으로 바꿀 수 있는 패들 시프터도 적당히 볼륨감 있는 것이 좋다. 조작감도 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절도감이 확실하다. 좌/우를 +/-로 나누어 놓지 않고 당기면 시프트업, 누르면 시프트다운의 패턴. 패들 기능을 좌우로 나누어 놓은 쪽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헷갈리지 않아서 좋다. BMW는 같은 라인업 내에서 두가지 패들 시프터 타입을 모두 채택하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직관적인지 사내에서 조금 의견이 갈리는 듯하다.

좌우의 레버도 적절하다. 크기도 적당하고 직관적이라 굳이 매뉴얼을 볼 필요도 없다. 오른쪽 레버의 노란 팁 처리는 너무도 귀엽고 앙증맞다. 이런 차밍 포인트가 차량의 전체적인 호감도를 급격히 올려주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왼쪽 레버의 버튼을 누르면 트립 컴퓨터의 디스플레이를 토글시켜준다. 트립 컴퓨터는 엔진 회전계 내에 위치하고 있다. 속도계에 내장된 디지털 디스플레이는 적산거리를 표시해주는데 옆의 리셋 버튼으로 시계 기능을 토글할 수 있다. 어차피 시간 가는줄 모르고 미니를 즐길테니 굳이 시계는 필요 없을지도.

센터페시아의 디자인은 근사하다. 보통 자동차의 인테리어의 인상을 결정지어주는 역할을 하는 부분이 센터페시아 쪽인데 쿠퍼S는 공조장치와 오디오와 각종 버튼이 참 절묘하게 조합되어있다. 오디오가 공조장치보다 상단에 위치한 패턴은 예외는 있지만 전형적인 독일식. 오디오는 미니의 디자인 감각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다. 전원버튼을 겸하는 볼륨 조절 다이얼은 일단 손을 대는 순간 반해버리고 만다. 어떻게 이렇게 작고 귀엽고 앙증맞고 탱글거리며 돌아갈 수 있는지. 다른 버튼들 역시 조작성도 우수하고 시인성도 좋다. 공조장치도 깔끔하다. 가운데 큼직하게 배치한 동그란 다이얼과 그 안에 내장된 디스플레이는 귀여움과 동시에 묘한 첨단을 느끼게 해주는 절묘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풀 오토매틱이라 AUTO 버튼을 누르고 다이얼로 원하는 온도만 맞추면 나머지는 건드릴 필요가 없다. 과거에는 풀오토 공조장치의 알고리즘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오히려 다이얼식 수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는데 지금의 기술은 그저 믿고 맡기면 인간의 감각을 정확히 배려해준다. 경험 상 20도 근방으로 온도를 설정해두면 1년 내내 쾌적하게 탈 수 있다. 공조장치 하단은 똑딱이 스틱으로 구성된 각종 기능 스위치들이 배열되어 있다. 윈도우 개폐, DSC, 도어락, 안개등 등이 배열되어 있는데 스위치 사이마다 초미니 파티션이 달려있어 오작동을 방지해준다. 일반 컨슈머 지향 제품이 아닌, 밀리터리나 방송용 장비에서나 보던 디자인이다. 너무도 참신하고, 그리고 미니답다. 사실 미니 인테리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하단에는 사물함으로 쓰일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고 그 앞으로 큼직한 컵홀더 두 개와 시가라이터가 배치되어 있다. 컵홀더의 크기와 숫자는 북미에서는 차의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된다. 컵홀더에 꼭 맞게 디자인이 된 재떨이가 눈길을 끈다. 필요 없으면 빼도 상관없고 배치도 자유롭다. 재미있는 아이디어. 괜히 부록을 하나 끼워 받은 기분도 좋다.

오토매틱 스틱 디자인도 충분히 미니답다. 변속 기어 상단의 스위치의 빨간 S 각인이 이채롭다. 게이트식은 아니지만 최근 트렌드인 P-R-N-D의 디자인. D에서 우측으로 레버를 밀면 스포츠모드가 되고 그 상태에서 상하로 레버를 딸깍이면 매뉴얼모드로 자동 전환이 된다. BMW의 패턴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잘 살펴보면 미니 곳곳에 이런 BMW의 유전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그것도 재미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시승차의 문제인지 N과 D의 레버 전환과 모드 표시 라이트가 정확히 연동되지 않고 약간의 유격이 생겨 N 상태에서 살짝 아래로 힘만 주면 D 표시등에 불이 들어오지만 내부적으론 N 상태에 머문다는 것이다. D 상태인줄 알고 액셀을 밟아도 공회전 소리만 우렁차다. 그 하단에는 사이드 미러 조절 스틱과 시트 히터 버튼이 있다. 사이드미러를 접는 버튼도 물론 준비되어 있다. 미니답게 너무도 귀엽게 접힌다. 기울어진 피봇으로 비스듬하게 위로 올라가며 접히는 귀 역시 BMW 유전자.

조수석의 글로브 박스는 소형차 평균 크기. 커버 부분에 컵홀더와 유사한 볼록구조가 있어 정지 시에 간단한 테이블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부분 역시 BMW에서 차용된 아이디어로 보인다.

뒷좌석은 어디까지나 "미니치고는" 넓은 편이다. 물론 앞좌석의 승객이 얼마나 레그룸을 확보하는 타입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성인 네명이 나름대로 쾌적한 장거리 여행을 할 수도 있다. 뒷좌석 바닥에는 전용 카시트를 장착할 수 있는 앵커도 마련되어 있다. 시트 형태가 2인승을 기본으로 디자인되어있어 공간이 비교적 넉넉한 것에 비해 형태상 문제로 세 명이 타기엔 곤란하겠다.

천정은 넓직한 파노라믹 루프. 거대 선루프가 앞뒤로 두 개 위치하고 있다. 물론 앞쪽만 열 수 있고 햇빛이 뜨거운 경우는 그물 스타일의 블라인드로 안쪽을 가릴 수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블라인드는 수동이라는 것인데 운전석에서 뒤쪽의 선루프 블라인드를 조작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C쿠페의 자동 블라인드 방식이 아쉽다.

한가지 주목할 부분이라면 운전석 측의 선 바이저가 전면 측면 두 개가 따로 존재한다는 점. 이런 설정은 무척 반갑다. 일반적으로 측면에서 오는 햇볕을 막기 위해서는 전면에 위치한 바이저를 고정 상태에서 떼어 90도 돌려줘야 하는데 그 과정이 그다지 인체공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바이저는 고정 상태에서 떼는데 너무나 힘들다. 운전 중에 억지로 떼다가 힘이 잘못 들어가 차가 휘청하기도 한다. 측면에 따로 바이저를 마련해준 배려가 너무 기쁘고 앞으로 많은 차량에 이런 컨셉이 채용되기를 희망해본다.

Exterior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주차시키고 밖으로 나와 천천히 살핀다. 시승차의 색은 하이퍼 블루 (Hyper Blue).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란 파란색이다. 뭐랄까 이런 작은 소형차는 보통 당돌하게 서있는, 속칭 톨보이 (tall boy) 형태를 하기 마련인데 이 미니의 경우는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넙데데하게 바닥에 넙죽 붙어있는 느낌. A 필러를 충분히 세워서 엔진룸을 낮게 위치해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소형차나 경차에 비해 충분히 누워있는 엔진 후드가 묘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전해준다. 차의 디멘젼을 보자면 전장, 전폭, 전고가 각각 3,655, 1,688, 1,416이다. 보통 대형차의 길이가 5미터 정도니 3.6미터 남짓의 미니의 사이즈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보통의 경차보다는 약간 길다.

사이드 라인이 특이하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묘한 느낌이다. B필러는 물론이거니와 C필러마저 윈도우 안쪽으로 밀어 넣어 A필러를 제외하고는 거의 통유리처럼 한 바퀴 둘러놓았다. 바디라인은 엔진후드에서 뒷 트렁크까지 하나의 크롬 몰딩 직선으로 상단과 하단을 강하게 나눠준다. 너무나 독특해서 세단의 형태보다는 오히려 픽업트럭의 그것에 가깝다고나 할까. 지붕을 씌워놓은 무쏘 SUT를 생각하면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

얼굴은 참 귀엽다. 한눈에 개구리 왕눈이를 떠올리게 한다. 처음 뉴 미니가 발표되었을 때는 사실 조금 갸우뚱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미 발매 중이었던 뉴 비틀은 올드 비틀의 형태와 컨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너무도 귀엽고도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선보였다. 뉴 미니는 올드 미니의 디자인 요소를 충분히 계승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인 실루엣이 많이 차이가 난다. 미니가 동글동글 앞으로 구르는 새끼 돼지의 형상이라면 뉴 미니는 바닥에 넙죽 엎드린 두꺼비의 모습. 그때는 뉴 미니보다는 뉴 비틀의 르네상스에 한표를 던졌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디자인이 눈에 익숙해지면서 상황은 완전히 반대로 역전. 뉴 미니의 디자인은 그야말로 발군이다. 뉴 미니에 익숙해진 지금, 드물게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올드 미니의 모습이 오히려 빛이 바랜다. 당분간 페이스 리프트 없이도 수년은 지속시킬 수 있는 디자인. 충분히 감탄할 만하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헤드라이트와 프론트 펜더가 엔진 후드와 일체식이라는 점이다. 엔진 후드를 들어올리면 전부 따라 올라간다. 마치 미국의 머슬카를 보는 기분이다. 완성도가 지극하게 높은 전면 형상을 후드 라인으로 건드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펜더는 사실 접촉사고 등에서 가장 쉽게 손상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일체형으로 되어있는 형태는 아무래도 견적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데 미니는 그것을 휠하우스 가장자리에 두툼한 블랙 트림을 덧댐으로서 어느정도 방지하고 있다. 사이드의 S 엠블렘은 노멀 쿠퍼와의 차별성을 보여준다.

뒷모습 역시 귀엽다. 올드 미니의 이미지를 많이 차용하고 있다. 리어 윈도우 상단에는 작은 스포일러가 달려있어 주행 중 와류로 인해 리어 윈도우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보통 다운포스를 유도하는 리어 윙과 와류를 방지하는 리어 스포일러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니는 리어 스포일러를 달고 있다. 미니와 같은 2박스 해치백의 경우 트렁크로 이어지는 라인이 없어 천정 위를 통과한 흐름이 리어 윈도우에 와서 갈 곳을 잃고 마구 헤매는데 이 와류(turbulence) 덕에 리어 윈도우는 쉽게 더러워진다. 그래서 3박스 세단에는 거의 생략되어 있는 리어 와이퍼가 2박스 해치백에는 대부분 기본으로 달려있는 것이다. 범퍼에는 이제는 표준이 되어버린 파킹 센서가 내장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기능이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다. 오히려 삐삐삐 혼란만 유발하니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모두가 원하고 이제는 표준의 영역에 달한걸 보니 필자가 첨단 기술을 못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범퍼 하단에는 쿠퍼S의 또 하나의 상징, 듀얼 머플러 팁이 가운데 가지런히 모여있다.

트렁크는 미니가 왜 미니인지 겨우 깨닫게 하는 부분이다. 사실 실내는 의외로 넓다. 앞좌석은 물론이고 뒷좌석도 그다지 좁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트렁크는 확실히 좁다. 아이를 둔 엄마가 뒷자리에 카시트를 장착해보고 흐뭇해해도 트렁크를 보면 조금 심난해질 수 있겠다. 유모차 하나 넣으면 쇼핑하러 가기도 넉넉하지 않다. 물론 뒷좌석이 50:50으로 분할 폴딩이 가능하니 뒷좌석을 활용한다면 큰 짐도 비교적 수월하게 넣을 수 있다. 해치백은 입구가 넓어 좋다. 트렁크 하단에 스페어 타이어가 있어야 하는 자리엔 배터리 혼자 달랑 앉아있다. 타이어는 런-플랫을 채용해 펑크가 나도 달릴 수 있어 스페어타이어가 따로 필요 없기 때문이다. 아직은 승차감과 단가 등의 숙제가 남아있지만 자동차 업계의 흐름은 점차 스페어 타이어 대신 런플랫 타이어를 채택하는 분위기다. 휠도 하나 줄일 수 있고 중량이나 공간 확보는 말할 것도 없다. 스포츠 세단으로 유명한 BMW M3의 경우는 런플랫 타이어도 아니면서 중량 문제로 아예 스페어 타이어를 없애버렸다. 스페어 타이어는 위치 상 보통 오버행에 위치하는데 이렇게 중심에서 벗어난 무게 덩어리는 운동 성능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트렁크에 위치한 것도 BMW의 흔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미니가 원조다. BMW에서는 전후 중량 배분을 위해 무거운 배터리를 트렁크에 위치하지만 미니는 중량 문제보다는 단순히 엔진 룸에 자리가 없었던 것이 그 이유.

시승을 마치고

약간 불완전 연소의 기분이다. 오후 내내 따뜻한 서울의 봄을 미니와 함께 즐기고도 뭔가 아쉬운 느낌. 아마도 오토매틱 트랜스미션으로 인한 파워손실이 계속 마음에 남았나 보다. 사실 필자의 기억은 그다지 정확한 편은 아니다. 게다가 매뉴얼의 쿠퍼S를 시승했던 것은 이미 3년 전. 그때의 감동을 3년동안 이것 봐 이것 봐 내 안에서 이렇게 커졌어 스스로 너무나 부풀린건 아닐까. 어쨌든 쿠퍼S에 오토매틱이 딱 절묘하게 맞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미니의 국내 고객층은 대충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미니의 앙증맞은 디자인에 취해 그 귀여움을 즐기는 부류, 그리고 또 하나는 양의 탈을 쓴 늑대의 발톱을 눈치채고 그 사악함을 즐기기 위해 선택하는 매니아 층. 전자는 보다 저렴한 쿠퍼를 구입하면 된다. 하지만 후자는? 생각해보면 조금 애매해진다. 쿠퍼S의 날카로운 발톱의 서늘한 날을 느끼려면 오토매틱은 역부족이다. 매뉴얼의 손맛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성능과 체감 주행 감각이 차이가 많이 난다. 한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몰아칠 때 차가 버거워하는 기색이 은근히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수치적인 성능이 그만큼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감각의 영역이랄까. 그렇다면 쿠퍼S보다는 노멀한 쿠퍼쪽이 본래의 컨셉을 더 제대로 살린 모델이 아닐지. 쿠퍼S는 오토매틱 트랜스미션과 조합이 되면서 그 본래의 감성이 많이 훼손된 듯한 느낌이다. 귀여운 양의 탈이 무뎌진 늑대의 발톱보다 더 의미가 높아진 상황. 그렇다면 차라리 그저 귀여운 이미지의 쿠퍼 쪽이 낫지 않을까 싶다.

내년에는 쿠퍼 컨버터블이 수입된다고 한다. 컨버터블을 한번 맛을 보면 평생 컨버터블을 탄다는 얘기가 있다. 일단 중독되면 국내 실정 운운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아직까진 개인적으로 자금 상황이 빡빡하지만 올해 말쯤에는 조금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현재 쿠퍼를 주문하면 몇 개월은 기다린다고 하니 내년 초에 수입 예정인 쿠퍼 컨버터블 선예약을 위해 남은 2005년을 열심히 뛰어야겠다.

그리고 사족.

요즘 자동차 세상을 보면 참 삭막하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며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일까 가끔 의문이 든다. 단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게다가 정부의 자동차 산업 국수주의 정책의 오랜 관행 탓인지 사람들 심성도 많이 피폐해졌다. 수입차에 대한 시각은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지고 좀 더 넓은 선택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불만도 극에 달해 차만 생각하면 즐거움보다는 부정적인 생각만 잔뜩 떠올리게 만들어버렸다.

차는 기본적으로 즐거운 것이다. 차를 입양하는 (구입보다는 입양!) 과정도 온 가족의 즐거운 이벤트이고 차와 함께 만들어가는 수많은 추억도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좋은 소재인 것이다. "차는 어디까지나 필수품일 뿐이다" 만을 외친다면 그 얼마나 삭막한 사고방식인가. 차의 존재 의미에 대한 변천 과정은 일정한 편이다. 후진국 형태의 신분과시의 상징 의미에서 개도국 형태의 필수품으로 인식이 변해간다. 다음 단계는 "차는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이 아닐까.

생각만 해도 즐거운 차가 있다. 이 차를 정말 사버릴까? 생각만해도 기쁨에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차가 있다.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차. 어쩌면 차의 가장 궁극적인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그 선상에는 미니 쿠퍼가 다소곳이 앉아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미니를 부활시켜 이 세상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을 추가해주신 BMW 엔지니어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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