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은 실핀이 떠오르게 한 것들
녹슬은 실핀이 떠오르게 한 것들
점심 약속이 있어 늦지 않으려고 급히 약속 장소로 가는길. 신호를 기다리다 우연히 보도 블럭 사이에 박힌 오래된 실핀을 본것 같다. 두어걸음 뒷 걸음하여 확인해보니 진짜 실핀이다. 실핀은 가엾게 녹이 슬어있다. 와! 이렇게 오래된 실핀을 누가 떨어뜨렸을까? 순간 실핀에 관한 어린날의 추억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계절따라 구분된 놀이가 있었다. 어느때고 즐기던 공치기, 고무줄 놀이, 술레잡기 그리고 평평한 땅에 여덟칸으로 나눈 모양을 그려놓고 손바닥만한 납작한 돌을 1번에서 8번 방까지 순서대로 던진뒤 그어진 금을 밟지 않고 한발로 던져진 돌을 주워오는 팔방이라는 놀이등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여름이 되면 아이들은 시원한 그늘을 찾아 공기 놀이를 했다. 기왓장 깨진것을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 곱게 다듬은 공깃돌이 최고였다. 아이들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공기놀이를 했는데 옷을 더럽혔다고 혼날것이 두려운 아이들은 쭈그리고 앉아 저린발을 달래가며 즐기던 놀이다. 공기 놀이를 할때 아이들은 다투기 일쑤였다. 옆의 돌을 건드렸다느니, 건드리지 않았다느니. 그러다 지켜보던 제삼자중 한명에게 '내 말이 맞지?~' '아니지. ~ 내말이 맞지?' 하며 좀더 실력있는 친구를 지목해 심판을 요청했다. 본인이 잘못했다는 판결이 나오면 못마땅해 입술을 쭉 내밀고 혼잣말로 궁시렁거렸지만 다음판이 시작되기전에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 했다
공깃돌의 촉감은 시원했고, 공기를 쓸어 올릴때 손에 닿는 흙바닥도 참 시원했다. 가끔 시멘트 바닥에서 공기놀이를 하면 손톱이 물결 모양으로 심하게 패였고 새끼 손가락 옆면은 거친 시멘트에 쓸린 상처가 몹시 아팠다. 그래서 평평한 흙땅을 찾아내고 그늘이라도 질라치면 명당을 잡았다고 좋아들 했다. 문제는 손톱밑에 검정 흙먼지가 끼어 보기에 흉한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이 손을 씻으라는 말을 하기 전에 머릿핀을 빼서 손톱안에 때를 빼내고 비누질을 해서 감쪽같이 깨끗한 손을 만들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 가득 공깃돌이 굴러다녔고 내일도 승자가 되기 위해 연구를 하며 허공에 대고 빈손으로 연습을 해보았다. 나는 공기를 날렵하게 곧잘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엄마것, 동생것, 새것, 헌것등 집에 있는 모든 실핀을 차지해 큰 옷핀에 걸고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핀치기를 하러 나갔다. 남자 아이들의 구슬치기와 비슷한 놀이다. 핀치기는 몇가지의 방법이 있었다. 첫번째 방법은 핀머리로 발을 놓을 자리에 쭉- 선을 그어놓고 그곳에 서서 핀을 던져 가장 멀리 떨어진 핀의 주인부터 순서를 정한뒤 1등이 대여섯 걸음 걸어가 되도록 작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리고 각자에게 몇개씩 핀을 걷어서 그어진 시작선에서 동그라미 안을 향해 핀을 던진다. 순서대로 돌아가며 동그라미 안에 던져서 들어가는것을 따는 방법이다. 운이 좋은 아이들은 몽땅 집어넣기도 하였다. 두번째 방법으로는 자리를 정해서 각자 놓아둔 핀으로 상대편의 핀을 향해 장지 손가락으로 튕겨 부딪치는것을 따는 방법이다. 세번째는 두가지 방법을 합한듯 선을긋고 동그라미를 그려서 그어놓은 선을 밟고 서서 각자의 핀을 원가까이 던져놓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튕겨 원안에 넣는 방법이다. 핀이 원에서 멀리 떨어지면 참 재수가 없다고 투덜댔다.
첫번째 방식은 어른들의 말로 몰빵이었다. 핀을 많이 잃은 아이들이 많이 딴 아이들에게 몇원어치의 핀을 사들고 본전을 찾겠다고 한판 붙은 몰빵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어려서부터 적당한 도박 근성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핀치기를 잘하는 아이들은 제법 용돈을 챙길수 있었다. 어떤날은 내것을 다 따버린 친구에게10원어치나 핀을 되사서 켜켜이 꼽힌 큰옷핀을 몇개씩 가지고도 패잔병이 되어 고개를 숙인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운수 좋은 날은 옷핀 몇개를 채울만큼 따서 개선장군처럼 집으로 돌아가 동생들한테 나누어 주며 내 실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겨울 놀이 핀치기의 문제는 역시 시린 손이다. 장갑도 변변치 않던 아이들이 언손으로 핀을 겨냥해 중심을 잡으려고 언땅바닥에 새끼손가락 옆으로 고정을 시켜야하니 손등이 트는건 당연했다. 심하게 튼 아이들은 마치 이태리 타올로 밀어놓은 검정때와 같이 징그러웠다. 어머니는 밀수품을 파는 아주머니한테 콜드크림을 주문해 언 손등에 발라주곤 하였다. 얼굴에 콜드 크림을 바르고 스팀 타올을 하는게 당시 최고의 미용관리였지만 튼 손등에도 듬뿍바르고 손가락 장갑을 껴고 자고 나면 튼 손등 역시 얼굴만큼 감쪽같이 부드러워졌다. 그렇게도 좋은 콜드크림이 조금 지나서는 만병통치 약인듯한 바셀린이 나와서 콜드의 명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바쁜 걸음에 문득 스친 녹슨 실핀하나가 어린날의 손과 손등,손톱에 낀 때에 얽힌 추억을 생각케하고 어린날 함께 놀던 친구들이 보이는 듯 하여 마음이 생긋 웃으며 따뜻해진다. 지금 아이들은 알지 못하는 추억속의 계절 놀이, 민속놀이... 다음에 손주가 생기면 스마트폰 게임만 하지 못하게 함께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모임에는 조금 늦을것 같지만 나는 미소를 머금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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