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엄마/노자규

in #story6 years ago (edited)

연어 엄마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http://m.blog.naver.com/q5949a/221355408248
연어 엄마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늘 막아 세운채
알코올 중독과 놀음으로 자신을
학대해 나갔다

결국 나는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집을 나와버렸지만
남편의 폭력보다 무서운
풀어헤쳐진
시간의 늪을 헤쳐 다녀야만 했다 “

남편이 준 고통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여자 혼자 힘으로
산다는 게 벅찬 일이었지만
남겨둔 아들 생각에
이를 악문 채 버텨야만 했기에
“죽은 자의 날”에만
살아있는 사람이 된 채
내 기억도 아들을 버리고 떠나
올 때인 6살에 멈춰버렸다

말에는 열매가 있다더니만
“그리 살려면 차라리 죽어 벼려.. “
소리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서였을까
어둠은 골목에서 누군가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남편
그 또래 애들은 다 가지고 있는
부모조차 없어진 아들은
한 칸 두 칸 쌓아 올려진 저 담벼락처럼 달세가 밀려 있었기에
돌아갈 집조차 없어져 버렸을 것이다

못 다진 짐이 돼버린
아들의 생사를 찾아 헤메 다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자식을 버린 여자라는 무거운
형벌만 뒤집어쓴 채 22년의 시간은 흘렀고
암이란 이름 앞에 내 삶의 구간은
정해져 버려야 했다

가만히 서있는 것조차 위태로운 나는
영원할 것만 같은 이 순간을 사는
너네들 역시 시한부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생이 끝나는 순간이 오면 올수록
살면서 한일보다는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일어나서일까
병색이 짙어갈수록
“그래도 애미인데......”
아들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가고 싶다며
경찰의 도움으로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이별 뒤에 남겨진 서툰 그리움 조차
아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에
또 다른 혼란과
마주 선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
떠난 후의 짐까지
짊어지게 하는 엄마이기가 싫어
내 심장은 아들을 기억 했지만
“내가 네 엄마야”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걸
침 넘길 때마다 같이 삼켜가며
아들이 일하는 직장에
청소부 아줌마로 남기로 했다
“놀음과 폭행 때문에
헤어진 불쌍한 엄마가 아니고
날 버린 엄마일 뿐이었기 때문에..... “

이별 뒤 또 다른 해후를 기대해서일까
세상에 물든 흔적들이 여기저기
묻어나 있는 아들은 보며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만 했지만
늘 고생한다며 우유 하나라도
챙겨주며 위로해주는 사이가 되어갔다
“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어떻게 살았니 “

"제 아픔은 내 몫이니까요."

“엄마 얼굴 기억나 “

“전 엄마 얼굴도 기억 안 나요
울며 뛰어가던 뒤 모습만.......”
말끝을 흐린 뒤
땅바닥만 쳐다보는 아들을 보며
가슴 끝이 뻐근해지는 걸 억지로 참으며

“어릴 적 널 버린 엄마가 밉지 않니”

“아뇨 엄마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

신에게도 비밀이 있다는 듯
자신의 아픔보다 엄마를 먼저
이해하려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무리 둘러봐도 모자라는 건
저.... 엄마였기 때문에
까만 비닐봉지 안에서 꺼내놓은
말들처럼 또 작아져가기만 했다

퇴근 무렵
당직실에 청소를 하러 들어가니
감기 몸살에 아픈
아들이 아직 자고 있었다
구멍 난 양말 사이로 빠져나온 발가락
이렇게 아픈 눈물이 또 있으랴....
“저런 양말 천 개 만개라도
사주고 싶었건만....,,,”

편의점에서 양말과 약봉지를
머리맡에 놓고 나오며
곤히 자는 아들 얼굴 한 점이라도 놓칠세라
보고.... 또 보며....
매일매일 널 키우진 못했지만
하루하루 잊은 적 없는
내 가슴에서 키운 아들이라며
아픔으로 마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리창을 닦는데
차고 슬픈 게 아른거린다
“영업부 김대리가 어제부터 안 보이네 “

“모르셨어요
엊그저께 출근길에 교통사고로
지금 중환자실에..

생과사의 유리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엄마 왔어
눈떠봐.. 지석아...
지석아
눈떠... 자지 마....."

이대로 보낼 수가 없다며
아픔으로 얼룩진
조각난 기억의 파편들을
난 목 터지게 불러 세우고 있었다

“아주머니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왜 우리에겐 행복이랑
싸울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인지
열어도 열어도
닫혀버리고 마는 현실 앞에서
난 또 하나의 눈물로 무너질 수밖엔.......

아들 앞에선 늘 가해자인 엄마였기에
시간이란 물의 유속 속에
떠밀려간 나는 가라앉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의 힘으로 버티고 있었기에
햇살은 비추고 있었지만
나의 가슴은 캄캄한 어둠 밖에서
서렸다가 사라지는 유리창에 입김처럼
수없이 어린 눈물 사이로 지우고
또 지워야 하는 눈물이 되어야만 했다

           수혈중(rh-ab)

22년 만에 아들과 나란히 누워본다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려온 시간이었던가
이렇게라도 같이 누워볼 수 있다는 게...
나의 눈에서는 복받쳐 흐르는
눈물을 가슴으로 삼키다
아련한 옛 기억을 소환하고 싶어서일까
의식이 없는 아들의 손을 만지고
또 만져보고 있다

“ 자식은 엄마를
삶 가운데 붙들어 두는 닷“ 이라더니
여한이 없다 여한이 없다....
소리만 난 되뇌고 있었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안다는 거라더니만
그래도
암은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병이기에
꼭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삶을
살아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내 아들에게 살기 좋게 만든 기억
하나라도 가져갈 수 있다면....>

아들과
작별하는 것만큼은 견딜 수 없었지만
연명치료를 거부한 채
하루하루 아들을 위한 날들을
모아가고 있었다

이젠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었을까

아들을 그리워할 시간이
자꾸만 줄어드는 게
엄마인 나를 더 힘들게 해서일까

죽음도
행복할 수 있다 수없이 되뇌며
깨어난 아들을 휠체어에 앉히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산책을 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아줌마....
아줌마가 꼭 어릴 때
헤어진 우리 엄마 같아요 “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게로구나 “

“저는 하루도 엄마를 잊은 날이 없어요
엄마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22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젠.... 엄마가
제 앞에 있어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어째서
이 못난 엄마를 그렇게 기다렸는지...
무정하게 내다 버린 채
한 번도 찾지 않은 어미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왜 그리 기다렸느냐고..
이별 중에 가장
지독한 이별이 죽음 이라더니만
그렇게 보고 싶고
만지고 싶었던 아들을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만나 져야 하다니.....

“이 아줌마가
널 한번 안아봐도 되겠니... “

22년 만에 처음 안아보는
아들의 품이 이렇게 따뜻할 줄이야.....
엄마의 얼굴도 기억도... 다 잊어도
네 곁에 머물고 싶었던 엄마의
이 마음만큼은 잊지 말아 줘...라고
속으로 속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엄마의 하루엔
잃어버린 기억들이
늘 함께 매달려 다녔기에
인생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속절없이
아름답다 말할 수 있었으리라>.

“연어는......
알을 낳은 후
부화되어 나온 새끼들을 위해
어미의 살을 내어 주어 키우다
뼈만 남아 죽게 된다는 이야기 알아 “

“아뇨.... 모성애가 강한 물고기군요 “

엄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로 이별의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이별 앞에
줄 수 있는 건 다 주고 가야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가
못난 이 어미가 남기고 간 빛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난 행복하니까.... “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자식을 살리는 저 연어처럼
             아들에게 세상의 빛을 
         하루라도 더 빨리 보여주려
          연명 치료조차 포기한 채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연어 엄마는....

                   자신의 생일날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병실에서
                      헤어진 아들 
            사진 한 장 만을 손에 꼭 쥔 채
                    죽어있었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18-09-09-15-59-34-110_dec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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