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ic Catch] 메스머의 휴머니티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

in #stimcity2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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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lo, Norway


그를 옹호하기 위해서 수많은 저술들이 출간되었다. 보르도에서는 에르비에 신부가 설교단에서 공개적으로 자기요법의 학설을 옹호하였다. 라파예트는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에 워싱턴에게, 자기는 독립전쟁에 필요한 무기와 대포말고도 메스머의 새로운 학설을 미국인들을 위해 가져갈 것이라고 알렸다.

정치 영역에서처럼 학문 영역에서도 모든 새로운 것과 혁명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프리메이슨이 확고하게 형제르 원조하였다. 그래서 메스머의 열광적인 추종자들은 정부의 뜻과, 왕의 뜻과, 동료 의사들 및 학술원의 뜻에 맞서서 메스머의 파리 귀환을 억지로 이루어냈다. 그 자신이 제시한 조건들이 받아들여졌다. 왕이 메스머에게 거부한 것을 이제 귀족과 시민계급이 그에게 제공하였다. 유명한 변호사 베르가스르 선두로 한 제자 몇 명이 스승 메스머가 왕립 학술원에 맞서 자신의 학술원을 열도록 보조하기 위해서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백 명의 후원자들이 각기 금화 1백 루이도르씩을 내기로 서명하였다. '메스머의 휴머니티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 였다. 그 대신 메스머는 그들에게 자신의 학문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자기요법 주식은 발매되자마자 금방 매진되었다.

12개월 안에 메스머가 원래 요구했던 것보다 더 많은 34만 리브르가 모였다. 그 밖에도 그의 학생들은 각 도시에서 이른바 '화목회'라는 것을 조직하였다. 보르도에 하나, 리옹에 하나, 스트라스부르에 하나, 동쪽 끝에 하나, 식민지인 산도밍고에 하나씩이 만들어졌다. 메스머느 승리에 넘쳐서 간청을 받고, 축하받고, 인사받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왕국의 왕관없는 지배자가 되어 프랑스로 돌아왔다. 왕이 그에게 거절한 것을 그는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다. 탐구를 위한 자유와, 생존의 독립이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학술원이 그에게 선전포고를 하면 메스머는 이번에는 대응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_ 정신의 탐험가들, 슈테판 츠바이크



二天十七年 六月十四日




Unit 285.
Photo by @kyotob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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