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하면서 사람 곁에 살아온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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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에 세운 최고의 유학 기관인 명륜당 마당에는 특별한 은행나무
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임진왜란 소실 된 문묘를을 복원한 해에 새로
심은 나무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성을 전환한 은행나무’로 알려
졌다. 400년 전부터 이 나무는 씨앗을 풍성하게 맺는 암나무였다. 가을
이면 마을 사람들이 나무 곁에 모여들었다.

학문 탐구에 열중해야 할 명륜당의 앞마당은 야단법석이고, 유생들은 공
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백성들을 강제로 내쫓을 수 없었던 유생들은 나
무가 씨앗을 맺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마침내 한뜻으로 제사를 올렸다. ‘나무가 더 이상 씨앗을 맺지 않게 해달
라’는 제사였다. 씨앗을 맺지 않으려면 이 은행나무가 암나무에서 수나무
로 성전환을 해야 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생들의 간
절한 소원이 나무에 닿았다. 이듬해 가을부터 나무는 씨앗을 맺지 않는 성
전환에 성공했다.

물론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 터무니는 이야기
속에는 옛사람들의 자연주의 철학이 담겨 있다. 베어내도 될 법한 성가신
나무를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려서 더불어 살고자 한 것이다.

1년 내내 은행나무의 아름다움을 보다가도 고작해야 보름 정도 고약한 냄새
를 견디기 어려워 암나무를 뽑아내는 일을 서슴없이 감행하는 이들에게
큰 교훈을 전해주는 전설이다.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본문 이미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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