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다르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수양버들은 푸르러 가고 벚나무는 화려함을 내보이기 전에 속내를 먼저 내보이며 붉은 미소를 보이며 부끄러워하는 듯하다.
날은 흐려 비가 올까 싶은데 벚나무들을 보면 그러거나 말거나 한껏 준비해 온 축제를 열려고 하는 듯하다.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하는 분위기다.
터지지만 않았지 이미 닫힌 입에서 삐죽 혀를 내밀듯 내밀거나 아니면 웃기 시작한 꽃몽우리도 보인다.
그런 걸 보며 걸어가니 여러 생각이 든다.
낭만을 어디서 찾지 어떻게 찾지 싶은 게 헛소리 같은 이조심판을 외치기보다는 근대사에 기록된 추억된 낭만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낭만의 절정 70년대 80년대가 다시 올리는 없고 이 시대의 낭만을 그려 내야 할 텐데...
그러고 보니 낭만은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 같이 보이기도 하는 게 전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낭만을 배격하고 나면 낭만의 가치 또한 사하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요즘 젊은 친구들의 낭만은 자연이 아닌 만들어진 공간 같은 곳으로 들어간 거 같다.
기획된 공간의 낭만은 자연친화적이지는 않아 보이지만 나름의 낭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 속의 낭만과 기획된 공간의 낭만을 뭉뚱그려 놓으면 어떤 낭만이 될까.
알 수 없는 것이나 새로운 낭만을 찾아내거나 만들어 갈 필요는 있어 보인다.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거나 즐기고 공유가 될 수 있는 낭만 그건 뭘까.
우리 동네에 딱 어울리는 그런 낭만을 찾고 싶다.
은하철도 구구구도 어느 세대에게는 낭만이고 성장 동력이었으리라
지금 그 은하철도 구구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낭만이 이 시대를 관통하며 역사가 될 거 같다.
감사합니다.
2024/04/03
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