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뜨거운 복수형

in #start4 years ago

한없이 뜨거운 복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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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찍은 한강의 석양

달리기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집 앞 강변을 난 자주 달렸다.
휴대폰을 열고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현재 위치를 확인 하고 목표 거리를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이제 휴대폰에 “시작” 버튼을 누른다..

이어폰을 통해 음악이 흘러나오고 나는 달리기 시작한다.

맞은편에서 자전거 하나가 다가오고 자전거는 할 말이 있다는 듯이 다가오다 무언가를 잠시 착각 한 듯 무심한 얼굴로 지나쳐 간다.
주인을 따라 나온 강아지가 경쟁자를 만난 듯이 나를 따라오는 듯했지만 이내 주인의 제제로 더 따라오지 못하고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게 나인지 강아지 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아쉬움이 더해갈 무렵 게이트볼 경기를 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보인다.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시는 할머니와 손사래를 치며 항변하고 있는 펑퍼짐한 갈색 바지에 빨간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가 보인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또 다른 할아버지 그리고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선 자외선 차단용 모자를 쓰고 계신 할머니까지 기분 좋은 광경이다.
여기를 지나갈 때 게이트볼을 하고 있는 사람만 바뀔 뿐 거의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다.
삶에 대해 떠올려 봤었던 무거운 생각 들이 이 곳을 지나 갈 때면 한 결 가벼워 진다.

이제 숨이 차오르며 심장소리가 여느 때 보다 크게 들린다.
주변 소음이 잦아들며 눈에 보이던 사물들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근육들의 정직한 움직임 만이 자세하게 느껴진다.
내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도 머리에 내리쬐는 태양빛도 내부와 외부를 자연스럽게 통과하며 동적인 변화를 초월한 그 어떤 것들이 고통과 함께 전달되지만 밀쳐낼 마음은 없는 상태를 지나, 이제는 다음 단계에 다다른다.
몸이 무뎌지고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입이 벌어져 너무 많은 공기가 유입되어 숨이 턱까지 차오름을 느낄 때쯤 오른쪽 팔을 들어 암 밴드로 단단히 고정된 휴대폰의 큼지막한 녹색 숫자를 본다.
녹색 숫자는 내가 얼마나 더 가야 할지를 알려준다.
그때마다 - 코스를 변경하여 중간 지점을 예상할 수 없을 때도 거의 대부분 – 거리는 예외 없이 전체 목표 거리에 반 정도 왔을 뿐이다.
‘내가 뛰기 전부터 거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는 지금까지의 레이스를 점검 하고 남아있는 체력을 적절히 안배하여 나머지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아쉬움 없이 완벽한 완주를 무리 없이 완성할 수 있다.

기대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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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죽더라.

대한민국 기대수명은 80세가 아주 조금 넘는다.
그 수치에 대비해 나의 짧은 삶을 무리하게 대치해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완주를 위한 체력 안배가 꼭 필요한, 현재의 페이스를 지키기도 급급한 중간 지점에 와 있다.
그때 그들을 만났다.
이 산문의 주인공 “한없이 뜨거운 복수형”!

“한없이 뜨거운 복수형” 은 내가 좋아하는 단편 소설집 제목을 차용한 문장으로 태양을 뜻하는 ‘해’ 자 돌림 이름의 아이들에게 딱 맞는 옷을 입힌 듯 어울려서 집에선 줄여서 ‘한뜨복’ 이란 별칭으로 둘을 함께 호칭할 때 혼자 부르곤 했는데 어느새 아내도 곧잘 아이들을 그렇게 부른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탄생의 기쁨도 잠시,
아내의 산후조리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 목 디스크가 왔고 그 후 한 달 뒤 저항할 여력조차 없어 보이는 나의 척추는 속 사정을 알 수 없는 시커먼 새벽에 통성명도 없이 덜컥 멱살부터 잡힌 사람처럼 저항 한번 못하고 눌러져 버린 신경 세포들로 극심한 요통을 유발했고 시술을 받으며 일주일을 더 드러누웠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경추(頸椎) 총 7개 중 5번과 6번 요추(腰椎) 총 5개 중 4번과 5번 사이의 추간판(椎間板)이 탈출하여 신경을 자극 하여 통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둘째를 임신하고 무리한 집안 살림을 한 아내에게 임신 5개월 뒤 이상 조짐이 보였다.
산부인과에 찾아가 검사해 보니 절대 안정을 취하지 않을 경우 배 속에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난 이후에 퇴근 후에 마음껏 안아 줄 수 없는 엄마와 하루 종일 씨름했을 안쓰러운 첫째 아이를 보게 되면 늘 마음이 편지 않아 항상 끼고 살았던 게 원래 부실했던 내 척추에 무리를 준 것 같다.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요통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아보게 되었고 검색을 통해 전 인구의 80%가량은 심한 요통을 한 번쯤은 느끼게 된다고 한다. 감기 다음으로 흔한 병인 것이다.
물론, 어쩌다 한 번쯤 아픈 것과 늘 허리를 신경 쓰는 것에는 큰 차이는 있겠지만 흔히 앓는 병이라는 것에는 일정 부분 안도감과 말도 안 되는 소속감 같은 것이 묘하게 맘을 편하게 해주었다.
늘 그런 편한 감정이 휩싸이는 것은 아니었다.
평생 반복될 통증을 안고 살아갈 생각을 하면 다시 침울해졌고 천사 같은 아이들을 안아줄 때 내 척추에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한다는 상황을 떠올릴 때면 우울해졌지만 오늘은 내일의 어제라고 했던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차츰 통증이 없어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다시 디스크가 재발하여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만..
오늘은 내일의 어제가 될 것이다.

시간이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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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これえだひろかず | 是枝裕和)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의 한 장면 속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대기업에서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성공 가도를 달리던 주인공 아빠에 대비해 동네에서 작은 철물점을 하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가족과의 시간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빠에게서 나온 마치 사자 후를 연상시키는 한마디 “시간이야 시간”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 한 건 바로 가족과의 시간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동분서주할 것이며, 나는 그들 ‘한없이 뜨거운 복수형’ 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들은 나를 대신하기 위해 왔고 언젠가 자연스럽게 나는 세상에서 밀쳐질 것이다.
그 무의미의 축제의 마지막을 그들과 또 그녀와 함께 반갑게 맞이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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