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죽 먹기!

in #sitcom7 years ago (edited)

꿈을 꿨다.
사막 한 가운데서 두리번 거리고 있는 나에게 신의 음성이 들린다.
"어디로 가느냐?"
모든것이 뿌옇다.
그 곳에서 내가 누군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어리둥절한 나에게 신은 다시 되 묻는다.
" 넌 애굽에서 나 왔느냐?"
"에???"
웬 애굽? 속으로 화들짝 놀란 내 모습을 신께 들킬까 애써 태연한 척 한다.
그리고 신께 되 묻는다.
"애굽이라면 ....성경에 나오는....그러니까...사막에서 길 안 물어보고 40년간 고집스럽게 방황했다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잡혀 있었던 그 나라 말씀이신가요?"
신께서 약간 짜증나신 듯 다시 물으신다.
"넌 누구냐?"
이 벼락같은 질문에 잠을 깼다.
내가 누구냐고? 신께서 나한테 애굽에서 나왔냐고 물으셨으니 내가 모세인줄 아셨나? 그 홍해도 쓱 갈랐다는 모세?? 머리가 복잡해지며 '넌 누구냐?' 라는 질문이 화두가 되어 온 종일 머리가 복잡하다.

자칭 갱년기 과도기 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 자칭 '갱과위'라고 칭하는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신은 이런 날 혹 모세라고 생각하신건가 하는 의혹도 생기며 나에게 기대가 있으신건가, 이런 저런 생각속에 진지하게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기억들을 떠 올리며 말이다.
나의 기억은 어느새 십여년를 훌쩍 거슬러 올라 태평양 너머에 있다.

눈을 떴다.
누운 채로 창밖을 본다. 어라 왠일! 하늘이 파랗다. 비가 안 온다!! 오호, 오늘은 날씨가 넘 좋은거다! 이런 날은 왠지 설레인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듯한 예감으로 벌떡 일어나 바삐 준비하고 집을 나선다. 룰루랄라 콧 노래를 부르며 기분좋게 도서관을 향한다. 오늘은 책도 잘 읽힐것 같고 그 간 이해되지 않던 내용들도 그냥 이해될 것 같은 마법 같은 날이 되길 바라며 나의 발걸음이 가볍다.

기분 좋은 상상으로 버스를 타고 도서관이 보이는 정거장에서 사뿐히 내려 길을 재촉한다. 음...공부하기 전 벤취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기분은 더더욱 좋아진다. 아 이 얼마나 여유롭고 행복한가 말이다.
비가 오지 않음으로 인해 모든것들이 평화롭고 여유롭고 사랑스럽게 변했다. 그래서 햇빛이 비추는 베를린은 더이상 우중충한 회색빛이 아니다.

학교 정원을 지나 도서관을 향하던 중 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놀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같은...덫에 걸려 비명을 지르는 듯한..듣기에도 고통스럽고 힘든 발작같은 소리였다. 얼음처럼 몸이 굳어 주위를 둘러 보았다. 평화로왔다. 잔디위에 누워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키스를 하는 자유로운 학생들 뿐이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몇번을 두리번 거리며 찾다가 난 키가 작은 나무 뒤에서 몸을 심하게 떨고 있는 한 금발의 여자를 보았다. 조심히 살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얼굴은 번들거렸고 무엇보다 너무 힘들게 통곡하며 울고 있어서 머리통이 금방이라도 터질것 처럼 열이 올라 있었다,폭발하는 활화산처럼 .
두려웠다 다가가는 것이.
정말 그녀의 그런 모습과 상황이 무서웠다. 어린시절, 모습 자체만으로 어린 나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이상한 나라의 폴에 나오는 대마왕처럼, 그녀의 폭발하는 감정과 흐트러진 모습은 어른이 된 나를 무섭게 하기에 충분했다.

온 몸을 떨며 통곡하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괜찮아요? 제가 좀 도와줄까요?"
그녀의 붉게 충혈된 눈과 내 불안한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으로 눈물이 마구마구 흘러 내린다.
"존.....존이날....흐흑...아아아아...날 떠났어!!!"
너무 울부짖은 슬픔에 목소리가 거칠다. 쇳소리가 난다.
그녀의 그 아프고 다급한 목소리가 날 그녀곁에 다급하게 앉혀 버렸다.
"존...존은....날...사랑....아악...."

난 그녀를 와락 안았다. 나도 모르게 너무 빠르게 일어난 일이지만, 난 그녀가 그렇게 죽을것만 같았다.
너무 슬퍼서 너무 아파서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서 죽을수도 있을것 같아 무서웠다. 그 슬픔의 무게로 그녀가 땅 속으로 꺼져 버릴것만 같았다.

그렇게 슬픔에 전복되어 해체되어 버릴것 같던 그녀를 꼬옥 안은 순간 내 심장안으로 뭔가 뜨거운 불덩어리가 퍽하고 꽂혔다.
난 지금도 그게 뭔지, 무슨일이 나에게 일어 난 건지 모르지만 확실한건 그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던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듯, 그 불덩이는 내 몸을 태우듯 너무 아프고 날카롭게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나도 모르게 몸을 떨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난 훅하고 올라오는 그 타는 듯한 감정에 목이 매었고 그래서 흐느끼다 어느순간 그녀 보다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보기드문 맑은 날에 검은머리 여자와 금발머리 여자가 함께 부등켜 안고 베를린 하늘을 슬픔으로 물들인 순간 이었다.

얼마를 함께 울었을까, 그녀가 부둥켜 안은 내 등을 토닥토닥 쓸어 내린다. 그리고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한다
"나 이제 괜찮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칠게 잠겨 있었지만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난 흐느끼며 말했다.
"모든게 다 잘 될꺼예요. 힘내요!"
그녀가 언제 울었냐는 듯 방긋 웃으며 일어난다.
"나 이제 집에 갈께요" 그리곤 뒤 돌아 간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난 한참 그 곳에 앉아 있었다. 무슨 사차원 세계를 경험한 것 도 같기고 하고, 아님 이곳 작은 나무 뒤가 나에게만 보이고 들리는 동화속 나라 같기도 하다.
기분 좋게 화창한 날에 만난 그야말로 천둥번개 같은 일이었다.

그뒤로 며칠 아님 몇 주가 지났을까?
난 다시 그 도서관에 왔다. 밖에는 아니다 다를까 비가 우슬우슬 내리고 음산한 냉기가 축축하게 몸에 달라 붙는다. 이런 날은 따뜻한 죽이 좋은데...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헉..오늘 점심 매뉴가 호박죽이다. 그야말로 "앗싸라비야!"다. 그것도 그냥 호박죽이 아니다. 고구마를 넣은 호박죽이다. 금상첨화는 이럴때 쓰는 말이다.

"호오...."
감탄하며 뜨끈한 호박죽을 마주하고 있다. 짙은 주황색과 노란빛이 나는 죽의 자태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먹기 아깝다는 마음에도 없는 생각을 잠깐 하고는 성급히 수저를 들었다.
그 부드러운 죽이 내 온 몸에 온기를 줄 것이며 내 지친 영혼에 평안을 선사할 것이다. 아 얼마나 가슴 떨리는 순간인가!
먹으려는 순간, 그 순간에 예수님이 재림하셨다 해도 난 앉아 죽을 먹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님을 좌청룡 우백호로 앞세우시고 오신다 해도 끔쩍않고 죽을 먹었을 것이다. 이만큼 이 순간은 나에겐 은헤로운 시간, 신성한 순간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누군가 이 순간에 감동하는 날 잡아 깨운다!
"저...안녕!"
나의 오로라 보호막이 깨지는 순간,난 숨을 한번 몰아쉬고 그 쪽을 바라본다. 허탈한 마음 금할길 없다.
금발의 어여쁜 여자가 방글방글 웃으며 날 보고 있다. 애띤얼굴에 볼이 붉다.
"안녕!"
인사를 빠르게 하고 난 다시 죽을 먹으려 했다. 그럼 그 낮선 여자도 그냥 갈 것 아닌가!
허나 다시 수저를 드는 나에게 그녀는 말을 한다. 헐!!
"그 땐 고마웠어요. 내 곁에 있어 주어서..."
아! 그녀는 그 작은 나무 뒤에서 만났던 그때 그 여인 이었다. 콧물 눈물 흘리며 울던 꼬질꼬질하던 그 때와는 사뭇 달라 못 알아 보았다. 아 이쁜 소녀다.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도 그 순간 그녀가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 지 궁금했다,진실로!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없다. 아니 안 한다. 뜨끈한 죽을 먹어야 하니까.

난 그녀에게 한 손으로 모락모락 김이나는 죽을 가리키며 좀 급하게 말했다.
"점심을 먹으려구요!. 좋아 보이네요. 그럼 잘 지내요!"
이 쯤에서 그녀는 가야했다. 난 식사한다고 이야기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다시 수저를 드는 나에게
"존이 다시 돌아왔어요. 날 사랑한데요...자기에게 의존하는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어서... 그래서.....
........."
........."
.........."

이 친구 진짜 말도 많다. -존이 돌아 왔으니 나도 이제 죽좀 먹자구요!-를 속으로 수없이 외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꽃피듯 활짝 웃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봐요! 저 손 흔드는 남자가 나의 존이예요! 존도 당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함께 왔어요."
화들짝!!! 정신이 번쩍 난다. 이 커플 그대로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선수를 친다. 나도 지친다
-정말 왜들 이러셔! 두 분이서 나 죽 못 먹게 어디서 미션 받고 오셨나? 나한테 왜들 이래요!! 죽좀 먹게 해줘요!!!
뜨끈한 죽! 죽! 죽!ㅡ

속으로만, 이런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내며 최대한 차분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다시 함께 한다니 잘 됐네요.행복하세요. 근데 이젠 정말 점심을 먹어야 겠어요!!!"
그녀를 바라보는 내 눈에서 욱하고 레이저가 발사됐을 거다. 나의 먹지 못하는 급한 분노가 눈을 통해 강하게 표출 됐을테니.
순간 그녀가 움찔한다. 주저하듯 우물거리듯
"난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우하하!!!
그녀가 갔다.
따뜻한 음식 앞에선 난 자주 불친절한 사람이 되곤 한다. 미안하긴 하지만...

어쨋든 이젠 죽을 먹을 수 있다.
오랫동안 지체되었던 첫 수저를 염려하며 입안에 떠 넣은 순간!
ㅡ아 아 아......!!!ㅡ

식었다. 죽이!
완전 식었다!!!
그녀가 나에게 맛있게 먹으라고 했던 죽이 그 고구마를 넣은 호박죽이 식었다.
그 뜨끈뜨끈했던, 김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그 맛난 죽이 식었다.
ㅡ아 아 아....아 아 아......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이란 시를 떠 올렸다. 내 마음을 담아..

ㅡ죽은 식었습니다. 아아 뜨끈했던 나의 죽은 식었습니다.
주황호박을 깨치고 붉은 고구마를 넣어만든 뜨끈한 죽은 내 염려치를 뒤로하고 차디차게 식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죽 먹는것도 사람의 일이라, 뜨거울때 미리 식을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식은 죽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다시 신께서 물으신 "넌 누구냐"는 질문을 생각한다.
난 식은 죽 먹기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다. 확실하다. 그러다가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 생각났다.
천사와 싸워 이겼다는 야콥의 형 사냥꾼 에서다.
장남인 에서가 배고품을 참지 못하고,급한 성격인 것을 이용해 평소 아끼던 아들 야콥에게 장자권을 팔게 한 그의 어머니도 엽기적이긴 하다.
그러나 어머니가 끓인 팥죽 한 그릇에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장자권을 판 에서도 참 보통 인물은 아니다.
허나 그를 난 백분 이해한다.
에서는 배가 고파 장자권을 판 것이 아닐수도 있다.
그 상황을 한번 그려보자.

2000년 전,
사냥을 마친 에서가 허기를 느끼며 움막 안으로 들어온다.

에서: 어 냄새가 좋네! 엄마 팥죽 끓였어?
엄마: 그래, 팥죽이 아주 돌냄비에서 철철 끓는다!
에서: 엄마! 얼른 한그릇 줘!
엄마: 근데 에서야. 너 장자권 야콥주면 안 되겠니?
에서: 뭐야 엄마!!! (욱하며) 나한테 너무 하는 거 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고 팥죽이나 좀 빨리 줘요!
엄마:에서야 안 되겠니?
에서:(분노하며) 절대 안돼요!!
이때 엄마의 필살기
엄마:에서야...근데 ...죽 식는다!
에서:....(자리에 급히 앉으며) 야콥 가지라 해, 장자권!

그렇다. 에서는 단지 뜨거운 죽을 좋아했을 뿐일지도 모른다,나처럼.
그리고 식은 죽 먹기를 너무너무 싫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난 그가 충분히 이해된다. 나 같았어도 펄펄끓는 죽 앞에서 장자권을 팔았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알아 가고 있다고 해야하나. 모르고 죽을 수도 있으니 좀 부지런히 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성경속 나와 닮은 에서란 인물을 알고 나니 왠지 내가 보이는 듯도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식은 죽 먹기'는 내게는 '식은 죽 먹기'가 아니다.
남들이 너무 쉽게 하는 일들을 난 참 어렵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직도 애굽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모세가 되어 나와야 하는건지. 모세를 기다려야 하는 건지.나와도 40년을 방황한다는데 그냥 여기에 있어야 하는건지....생각이 많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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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 죽 먹기에서 먹는 죽 생각은 못했는데... 새롭게 다가와요 폭소를 자아내며 훅 읽어내려갔습니다^^ 신의 목소리를 들으셨다니...복권부터 사심이~~
재밌고 좋은글 잘봤습니다.

하하하~
완전 대서사시구먼. 에서는 언니와 같은 스타일일꺼야.
단지 먹고 싶어서 식은 죽이 싫어서 장자권을 넘겼을 뿐이지 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할 일 많은 장자권이 대수였겠어? ㅎㅎ

엄마:에서야...근데 ...죽 식는다!
에서:....(자리에 급히 앉으며) 가지라 해, 장자권!

그나저나 언니 꿈에 고구마 호박죽을 못 먹게 했던 그 커플은 현세의 무엇일까? 누구였을까? 어떤 가르침을 주려했을라나? 단지 언니가 식은죽을 싫어한다는 걸 알게 하려고 한건 아닐 것인디..
그래도 언니 성격에 식은 죽 그릇 안던진게 다행일쎄, 물론 식은 죽이라도 먹을까 싶어서 그랬겠지만 말야..ㅎㅎ

하하하..그지! 그 커플이야기는 나의 생생한 경험이야. 글이라 그렇지 내 얼마나 무안하게 가라고 했게.ㅋㅋ

못 들은척하고 그냥 죽을 먹었어야지..
그게 죽을 좋아하는 사람의 자세야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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