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9일차.
순례길 9일차 (2017.06.15)
나헤라 -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22km.
어제 하룻밤을 묵게 된 알베르게를 우리들끼리 펜션 독채인 마냥 전세낸듯 편하게 이용하고 일어나기도 여느때 보단 조용하고 느즈막히 일어났습니다.
하나둘씩 씻고 다같이 어제 장봐둔 아침거리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 후 7:30이 돼서야 길을 나섭니다. 출발이 늦어서 그런지 역시 우리 앞엔 아무도 보이지 않네요.
오늘따라 날씨도 약간 흐릿한게 사진으론 별로여도 걷기엔 최고였어요. 사촌동생과 저는 간만에 우리들의 페이스대로 걷기위해 동생들보다 앞서 걷기 시작했어요. 오늘의 목적지 산토 도밍고 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한시간여 걷다 보니 첫번째 마을 아소프라(Azofra) 가 나왔는데 여기까지 저희 앞엔 아무도 없었어요 ㅜㅜ
하지만 마을을 접어들어보니 Bar에 간간히 동료 순례자들이 아침식사를 하며 휴식중이예요 역시.
저희도 잠시 쉬면서 순례길의 명물 Cafe con leche (까페라떼) 한잔을 하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오늘의 구간은 22km 로 비교적 짧아요. 어제 31km에 비하면 아주 널널합니다 ㅎㅎ 아소프라를 나와 걷다보니 눈앞에 넓은 평야가 보입니다. 구름이 전반적으로 낀 이 순간 갑자기 어린시절 즐겨봤던 반지원정대의 한장면이 떠오르네요 ㅋㅋ
1시가 되기 전 무난히 알베르게에 도착했고 웰컴 드링크와 함께 체크인을 합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해 붐비지 않는 샤워장을 이용하고 세탁기도 돌려놓고 주방에 가서 공동재료로 뭐뭐 있는지 확인하는게 첫번째로 할 일이예요. 휴식은 그 다음!! 주방에 식초가 있네요.
오늘은 여태껏 같은 일정을 걷고 Camino(길) 위에서, 알베르게에서 항상 마주치고 즐겁게 떠들고 놀던 실비아가 일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날 이예요. 오늘밤을 숙소에서 보낸 후 내일 아침으로 이탈리아로 돌아가 다시 일터로 복귀한다네요 ㅠㅠ 참 흥겨웠던 친구로 클라우디오와 함께 정이 많이 들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저녁을 대접하기로 했어요. 식초가 있으니 쫄면!! 일단 저녁 약속을 해 두고선 휴식을 취해요.
이곳에서 @gghite 님과 남편분인 @lager68 님과 제가 독일에서 뭘 하고 지내는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더랬죠 ㅎㅎ 정말 밝으시면서도 많은것들을 알고싶어하시고 무엇보다 부부 내외분들이 둘 다 순수해 보이시는게 참 보기 좋았어요^^
자 이제 배도 고프겠다 동생과 함께 동네도 둘러볼 겸 점심을 사먹으러 나갑니다. 숙소 바로 오른편에 식당이 있고 순례자 메뉴를 판매해서 그냥 고민없이 들어갔어요.(뭣보다 인테리어가 보기드물게 깔끔했어요) 각각 순례자 메뉴를 코스마다 다른 음식들로 주문을 하고 먼저 에피타이져가 나왔네요.
저는 약간 뭐랄까 고추장찌개(?) 같은 고깃국을 주문했고 동생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시켰어요. 본식으로 먹는거라 생각했던 파스타를 여기선 주로 에피타이져로 많이들 먹더라구요 ㅎㅎ 레드와인과 함께 전식을 다 먹고 나니 본식이 나옵니다.
저는 닭다리요리와 감자튀김, 샐러드 가 나왔고 동생은 미트볼과 감자튀김이 나왔어요. 확실히 단백질 보충에 치중된 본식인것 같아요. 양은 적어 보이지만 전식과 후식까지 그리고 마실것과 함께 먹다보니 전체적으로 부족하단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후식으로 동생은 아이스크림을 주문했고 저는 플레인요거트로 시켰습니다.
- 팁! 순례길 중에 매일 유산균 섭취는 참 중요한 부분인것 같아요. 남자분들 군대를 갔다오셨다면 힘든 생활의 훈련소에서 토끼똥의 경험은 한번쯤 있으실거라 생각하는데, 여기서 배변활동을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죠 ㅎㅎ
점심도 먹고 나니 식곤증으로 피로가 급 몰려오네요 ... 한숨 자고 일어나서 저녁의 조촐한 파티를 위해 장을 보러 가려는데 선생님께서 돈을 쥐어주시며 오늘 금전을 제공할테니 실비아 송별회를 잘 부탁한다 하시더라구요 ㅠㅠ 이렇게 또 한끼를 얻어먹게(?) 됐습니다.
단체사진을 찍었던것 같은데 삭제되고 도대체 보이질 않네요... ㅜㅜ 앞으로 사진은 함부로 지워선 안되겠습니다... 그나마 실비아와 클라우디오가 나온 이 사진이 다시금 이 순간을 떠오르게 하네요.
오늘의 주 메뉴 쫄면!! 비록 면이 쫄면 면은 아니지만 제법 식감도 면의 굵기도 비슷한 스파게티면을 삶아다가 찬물에 헹궈내면 충분히 쫄면과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는것 같아요. 해외 유학생활을 하다보니 이런저런 팁들을 방출하게 됩니다 ㅋㅋ 마트에서 봉지채로 손질된 샐러드 팩을 두어팩 넣어주고 만들어놨던 소스와 함께 맛있게 비벼줍니다. 와인은 유독 더웠던 하루라 시원하게 화이트와인으로 준비했어요.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면과 한국의 고추장을 이용한 쫄면 맛이 어우러져 이탈리아인들에게도 만적스러웠고 우리 한국인 동생들과 선생님께서도 무척 좋아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ㅎㅎ
이외에도 이탈리아친구들의 주식 바게트 빵과 함께 다른 간식거리들과 곁들여 와인을 한잔두잔 정말 즐거운 저녁이 아닐수 없었어요.
그런데!! 저 뒷편에서 시끌벅적 합니다 ㅋㅋ 수많은 젊은이들과 어른들이 다같이 소파에 모여앉아서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하나로 어우러 지네요. 국적은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 정말 다양했지만 남녀노소 전부 호응을 유도하는 노래를 다같이 부르는데, 우리의 문화권에선 가사를 다 못외우지만 음정은 알았기에 흥 하면 또 한국인 아닐까요 ㅋㅋ 수민이와 사촌동생이 신들린듯 호응을 유도하며 정말 재미난 파티를 즐겼어요.
이렇게 젊은이들 나이드신 어른들이 다같이 어우러 질 수 있는 이 까미노는 언제봐도 아름답고 오늘 하루도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조금씩이나마 보팅이 늘어가게 항상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 오늘의 가계부
숙소 - 7유로
점심 - 15유로
빨래 - 3.5유로
커피 - 1.5유로
샴푸 - 3.7유로
총합 - 30.7유로
알베르게 분위기가 참 화기애애하고 좋네요 ㅎㅎㅎ
특히 이 날이 더욱 그러지않았나 싶어요 ㅎㅎ 생장 출발 이후 서로 눈치만 보다가 드디어 다같이 친해지기 시작했어요!!
오늘도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 보잘것 없는 글이지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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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아니면 여행 ?
순례하면 거룩해 보이는데 사진과는 전혀 맞지가 않는 군요.
하지만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순례길을 꼭 종교가 있어야 가는것만은 아닙니다. 각자 저마다의 고민으로 또는 그저 스페인의 멋진 자연경관을 보러 가기도 하구요. 그저 놀러 갔다 하더라도 800km라는 힘든 거리를 두 발로 고통을 참고 완주 하면서 각자 느끼는 바가 있다면 그 또한 본인 인생에 있어 순례가 아닐까요. 어느 종교도 모태신앙을 가진자에게만 국한해 교회를, 성당을 절을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항상 문은 그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있듯이 이 Camino 즉 길이란 그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종착지 산티아고에서 완주증서를 받을때도 이 길을 걸은 목적이 종교적 목적인지 관광목적인지 스포츠목적인지 묻고 그에 상응하는 순례증서를 발급하는 만큼 이 길은 꼭 종교적인 관념의 순례자만 걷는곳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저는 이 연재의 처음부터 길을 걷게 된 계기와 이유를 단 한번도 종교적인 목적이라고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길이 거룩해야할 이유가 없으며 단도직입적으로 이런 태클이 거북합니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마주하는 자연과 길 속에서 우리의 인생을 찾아나가는게 조금이나마 거룩해 보이지 않으신지요?
네. 그렇군요.
기회가 주워질 때 가보는 것도 잘하신 것 같군요.
순례길 자세한 설명 감사해요.
맞아요, 이날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어서 저도 저녁에 노래하던 그곳에 있었어요.ㅋ
재미난 시간이었는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