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maker] 또 하나의 거인을 보내면서...
오래전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때 삼성그룹 신입사원 연수를 꽤 오랫동안 받았다. 입사 후 무려 9개월 동안을 연수원과 공장 그리고 대리점 등을 돌아다녔는데 요즘처럼 그룹이 아니라 개별 회사단위로 입사하는 사회 초년생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룹연수였지만 아무래도 주계열사인 삼성전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삼성그룹의 임직원이었던 어느 강사는 삼성전자의 경쟁사는 일본의 파나소닉이라고 했다. 당시 소니는 넘사벽의 전자회사였으므로 경쟁사라고 감히 입에 올리기도 민망했던 것이 삼성전자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에 대한 선언을 했고 필자가 입사했던 당시는 이회장의 교시대로 '마누라와 처자식 빼고는' 몽땅 다 바꾸는 변혁의 기로에 있었다. 선대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던 1980년 무렵에는 반도체의 수요가 급감해서 사양사업으로 여겨지던 때다. 반도체의 주 소비처였던 PC를 잇는 클라우드 서비스나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기기 전 반도체의 긴 암흑기에 그룹의 명운이 달려있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희 회장은 선대 회장의 3남 중 막내로서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경영권을 승계할 수 없었으나 때마침 터진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인해 장남 이맹희와 차남 이창희가 밀려남으로써 우열곡절 끝에 삼성그룹의 회장이 된 사람이다. 이병철 회장이 삼성그룹을 세계 무대에 데뷔시킨 공을 세웠다면 이건희 회장은 명실상부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경영권 불법 승계, 정치권 로비, 비자금 차명계좌 사건 등 부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보다 삼성을 더 유명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을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의 초입에 진입하게 만든 것은 이건희 회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이건희 회장이 지적한 그룹 내의 부조리는 최고경영자로서는 파악하기 힘들었을 사소하지만 핵심적인 문제였고 이러한 부조리를 사원들이 자각하고 이를 일소하는 것이 중간 관리자들의 중요한 목표가 되면서 삼성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십수만명에 이르는 임직원들은 다 뭐했기에 이 모든 공적을 이회장 한사람의 것으로 돌리느냐...하는 질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삼성그룹에서 근무해본 사람은 오우너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오우너의 결심이 그룹의 명운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잘 알 것이다. 이회장의 판단과 또 그 리더쉽을 잘 따라준 수많은 임직원들이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만든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이제 이건희 회장의 대를 잇는 이재용은 현재 국정농단과 경영권 불법 승계 문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재용이 삼성전자를 지배하기 위한 불법적인 행위로 이로 인해 삼성물산의 주주들과 국민연금이 피해를 입었고 이는 곧 많은 국민들을 피해자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상속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데 기업을 승계하는데 있어 막대한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하는 것은 사회적 담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익이 발생하는 부분에 과세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기업이 우리사회에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할 때 기업의 항상성을 유지해야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의 경영권 승계가 주로 뉴스거리가 되어서 그렇지 중소기업 또한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유한한 생을 사는 인간이 자손들을 통해서나마 영속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실존적인 문제이지 단순한 부의 축적으로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다. 지난 수백년간 세계 금융과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로스차일드가를 생각해보라. 상속이 불가능한 사회에선 기업 또한 영속하기 힘들다.
사회적 존재로선 이미 몇해 전에 사망했을 이건희 회장이 지난 25일 동물적인 죽음을 맞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를 가졌지만 침대에서 보낸 지난 몇년간의 와병치레는 그에겐 지옥이었을 것이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된 그에게 심심한 애도와 함께 진심어린 축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