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기 문자 리스트’ 단상
‘장충기 문자 리스트’ 단상
얼마 전 한국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장충기 문자 리스트’ 사건 당시 별다른 감상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헬적화’(‘헬조선 최적화’)가 완료되었나보다. 그냥 그러고들 사나보다 싶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든 생각은, 정치권이 자꾸 삼성 괴롭히면 삼성이 한국을 떠날 거라는 식의 우익의 협박은 성립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헬적화되었듯 그들도 헬적화 되었으니까. 아니, 그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이 헬을 만든 것이니까.
삼성에 대해서는 남한 진보와 보수가 각기 만들어낸 두 가지 신화가 있다.
진보의 신화는, 삼성은 한국의 나머지 부분을 착취하여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수의 신화는, 삼성은 초일류기업이며 한국에선 규제에 묶여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둘 다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나는 삼성이 한국의 나머지 영역을 쥐어짜서 이윤을 내는 기업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소지가 있더라도 한국의 다른 재벌그룹보다는 나은 정도, 세계의 다른 초일류기업들과 비슷한 정도라고 본다.
탁 잘라 말하면 삼성이 한국의 국가권력과 나머지 영역들을 조물조물하는 것을 포기하고 만사를 대체로 법대로 지키며 통장 잔고만 딱 생각하는 경영을 하더라도 지금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잘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렇게 왜 안 하느냐... 그렇게 살기 싫기 때문이다.
장충기가 그 많은 사람들을 문자 보내고 답문 보내며 얼마나 귀찮았겠느냐, 얼마나 그 사람들을 하잘 것없이 봤겟느냐고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그거 안 하면 장충기는 무슨 일을 하겠는가. 그걸 하면서 장충기는 얼마나 삶의 희열을 느꼈겠는가.
각 정부부처 출신들, 아주 무슨 검사 출신이니 외교관 출신이니 다 잘라버리고 딱 시장상황과 소비자, 그리고 통장 잔고만 생각하는 경영을 하기 싫은 거다. 왜냐하면 그런 권력자들을 조물조물하는 게 무척 즐겁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헬의 맛’ 아니겠는가. ‘이 맛에 헬조선’ 아니겠는가.
그러니 세금을 올리니 뭐니 하면 더 많은 아재들을 고용해서 헛돈을 뿌려가며 그걸 피해가려고 노력할 뿐, 미국이나 유럽으로 본사 옮길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건조하게 살기 싫거든.
돈 많으면 24시간 편의점 그득한 한국이 가장 살만한 땅인 거랑 비슷한 거다. 내가 중년의 부장이면 칼퇴해서 집에 들어가기 싫고 부하 직원들이랑 같이 회식하고 싶은 거랑 마찬가지다.
그리고 만일 그런 귀찮은 삶을 포기하고 싹 다 정리해버리면... 그걸로 끝일 뿐 굳이 한국 뜰 필요도 없다.
솔까말 ‘탈조선’ ‘탈조선’ 거리는 치들도 가만히 얘기 들어보면 ‘...그냥 당신이 그 따위로 구는 인간관계 다 정리해버리면 힘들게 모국어 통하는 한국 떠나지 않아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투덜거리는 거 같은데? 그걸 하기는 또 싫고, 그걸 하면 그걸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치들에게 무시당하기 싫어서 그냥 욕이나 하고 사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