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임 서울대학교 2022055892 『장토문적(庄土文績)』을 통해 본 정조(正祖) 대 왕실재정개혁의 이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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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임
서울대학교
2022055892
『장토문적(庄土文績)』을 통해 본 정조(正祖) 대 왕실재정개혁의 이상과 현실

접수과제정보
접수번호2022055892
연구요약문
연구목표
(한글 2000자 이내)

  1. 정조(正祖)는 그가 시행한 정책에서 만이 아니라 자연인으로서도 과대평가되어 왔다. 그는 개혁군주, 호학 군주 나아가 효의 표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역사 연구에서 개인의 영웅화는 금기시되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정조와 그의 정책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2. 규장각 소장 『장토문적』에는 정조대의 정책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자료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워낙 방대하여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자료는 10 종의 342 책으로 편철되어 있는데, 그 규모가 2만 건이다. 시기적으로도 조선시대 양식의 고문서로부터 갑오개혁 이후 문서까지 망라되어 있다.
  3. 지원자는 장기간에 걸친 긴 호흡으로 『장토문적』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분석해서 정조대부터 대원군까지 이르는 병신정식의 실상을 통시대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이는 정조 및 그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읽어내는 토대가 될 것이다.
    기대효과
    (한글 2000자 이내)
  4. 정조대에 대한 패러다임 제시
    정조는 즉위와 함께 단행한 왕실 재정개혁이 ‘병신정식(丙申定式)’이다. 이는 궁방이 규정 외로 보유한 토지에 대해 세금을 내게 하고 대진한 궁방 소유 토지를 호조로 귀속시켜 국가 재정구조를 확대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울러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무토에 대한 도장(導掌) 하송금지 조치를 취하였다. 정조의 왕실 재정개혁은 매뉴얼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대진 궁방의 토지를 호조가 아닌 내수사로 이속함으로써 국왕이 재정을 천단 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정조는 내수사 재원을 바탕으로 장용영 외영과 화성부의 자금 부담을 일부 해소할 수 있었다. 무토도장은 여전히 차정되고 그 권한은 물권으로서 거래되었다. 대원군이 90년이 지난 뒤에 병신정식의 원칙을 재천명한 것은 그것이 갖는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5. 정조의 또 다른 개혁 연구
    정조는 장용영(壯勇營) 외영과 화성부 건설의 재정기반을 위해 전라도 장흥지역에 둔전을 확보하여 운영하였다. 거금을 하사해서 집중적으로 토지를 사들였으며, 둔답 운영과정에서 둔민에게 소를 대여하는 등 필요한 조취를 취하였다. 내노비(內奴婢)에 대한 추쇄관 파견을 제한하고 비총제(比摠制)를 적용했다. 그 결과 『내수사도안』에 노비수를 정해놓고, 그 수효만큼의 신공만 거둬 올리게 했다. 그러나 내노비가 혁파된 1801년 이후에도 노비의 역가를 수취하는 노비도장(奴婢導掌)은 남아 거래되었다.
    무토도장은 지금까지의 이해와 달리 정조 즉위 시(1776년)에 단행되었던 「병신정식」에 따라 혁파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다가 대원군 집권기에 들어서 혁파되었다. 정조대의 개혁은 곧바로 시행되지 못했지만 90년 뒤인 대원군 대에 완성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정조대의 개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즉, 무토도장의 혁파과정을 통해 대원군대의 개혁이 정조대의 병신정식의 완성된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6. 왕실고문서의 생활사적 면모 확인
    『장토문적』에는 역사적 인물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安重根)과 개상상인 임상옥(林尙沃)이 궁방전을 운영하던 도장이었으며, 갑신정변의 주역 서광범(徐光範) 아들은 경상도 양산·남해 지역 소재 노전의 혼탈입지 확인을 요청했다. 왕실고문서에는 재산권을 둘러싼 인간의 다양한 군상이 드러난다. 궁방의 운영 주체인 중관(中官, 내시)의 권력과 재력은 우리가 상상하던 그 이상이며, 상궁과 그 주변 친인척들이 이권을 두고 다투는 모습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7. 새로운 콘텐츠로의 활용 가능성 제시
    『장토문적』은 왕실 관련된 고문서이므로, 이를 역사연구에 활용하면 살아있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궁방전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서로 간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다 보면 그 안에 있는 인간들의 삶의 틀과 규정이 드러날 것이다. 요즈음 영화나 사극에서 왕실 관련 주제가 콘텐츠 자료로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여기에 궁방전을 둘러싼 인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반영된다면 보다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될 것이다.
    연구요약
    (한글 2000자 이내)
    정조가 단행한 병신정식은 궁방전을 출세(出稅)하여 면세결(免稅結)을 줄이고자 한 것이다. 그는 대진(代盡)한 궁방의 전결을 내수사에 귀속시켜 왕의 내탕을 강화하였다. 반면에 무토도장은 폐지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전하다가 폐지는 대원군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조의 왕실재정개혁은 10여 년이라는 기간을 거쳐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즉, 정조의 궁방개혁 천명(1776년), 내수사 토지의 재편과 도장 차정(1776년 이후), 양안(量案) 개수(1783년), 『내수사도안』의 작성(1787년)이라는 과정을 거쳤다. 결국 『내수사도안』의 작성이 정조의 왕실재정개혁의 귀결점 이었다.
     1차년도(9개월 ’22.7.1∼’23.3.31) 연구주제 : 정조의 「병신정식(丙申定式)」과 내수사 전결의 재편
     2차년도(12개월 ’23.4.1∼’24.3.31) 연구주제 : 무토도장(無土導掌) 파견 금지, 그 실재
     3차년도(3개월 ’24.4.1∼’24.6.30) 연구주제 : 정조의 화성부(華城府) 둔답 확보과정:전라도 장흥지역을 중심으로
     4차년도(12개월 ’24.7.1∼’25.6.30) 연구주제 : 궁방의 내노비(內奴婢) 파악과 노비공 수취
     5차년도(12개월 ’25.7.1∼’26.6.30) 연구주제 : 대원군의 왕실재정개혁
     6차년도(12개월 ’26.7.1∼’27.6.30) 연구주제 : 단행본 간행 준비 ; 『정조 왕실 재정개혁의 이상과 현실』 (가제)
    키워드(Keyword)
    (한글 250자 이내)
    정조(正祖), 「병신정식(丙申定式)」, 내수사, 궁방전, 무토도장(無土導掌), 장용영(壯勇營), 화성부(華城府), 내노비(內奴婢), 비총제(比摠制), 노비도장(奴婢導掌), 대원군(大院君)
    키워드
    (영어 500자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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