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동 충북대학교 2022051033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경서 해석의 쟁점과 주석서 간행
전재동
충북대학교
2022051033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경서 해석의 쟁점과 주석서 간행
접수과제정보
접수번호2022051033
연구요약문
연구목표
(한글 2000자 이내)
본 연구는 조선 전기부터 17세기 영남학파와 기호학파가 분화되어 경학이 본 궤도에 진입한 때까지의 유가 경서를 일괄 조사하여 서지(書誌) 및 수록 내용을 분석하고 두 학파 간의 경서 해석과 주석서 간행의 차이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고려 말부터 조선 세종조까지 사서(四書)를 중심으로 한 성리학의 도입기, 경서 언해가 완성되는 정착기, 이황과 이이를 중심으로 한 학파 간의 경서 해석 차이가 발생한 성숙기 등으로 시기를 대분하여 각 시기별, 학파별 차이를 실물 자료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16세기 경서 언해(諺解)의 완성은 조선 경학의 전성기를 가져왔으며, 그 토대는 조선 초에 유입된 유가 경서를 우리식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경학 및 경서 해석 자료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선초의 경서 대본에 대한 분석부터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경학 전성기를 구가한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경서 주석을 원문 대조를 중심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의 원활한 수행과 결과물의 성과 확산을 위해 다섯 편의 학술 논문(KCI 등재지)과 이를 종합한 단행본 간행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단계별 연구의 소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 전기에 유통된 경서는 원대(元代) 학자 예사의(倪士毅)의 <사서집석(四書輯釋)>과 명(明) 영락제(永樂帝)의 칙찬(勅撰)으로 간행된 사서오경대전(四書五經大全)이 그 중심에 있었다. <사서집석>은 예사의의 스승 진력(陳櫟)의 <사서발명(四書發明)>과 호병문(胡炳文)의 <사서통(四書通)>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사서오경대전은 <사서집석>에 주공천(朱公遷)의 <사서약설(四書約說)>, 정복심(程復心)의 <사서장도(四書章圖)>, 왕원선(王元善)의 <사서통고(四書通考)>, 명(明) 왕봉(王逢)의 <사서정정통의(四書訂定通義)> 및 <주자어류(朱子語類)> 등에서 일부의 설을 발췌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 초기에 유통된 사서(四書) 및 <근사록> 등의 저본이 원간본(元刊本)인지 명간본(明刊本)인지에 대한 정밀한 검토가 1차 탐구대상이다. 실물 자료로는 여말~선초에 간행된 <주자중용혹문(朱子中庸或問)>, <주자대학혹문(朱子大學或問)>, <논어(論語)>,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등이 있으며 이에 대한 대본과 인출된 판종 및 전승 사례 등을 고찰할 것이다. 이를 통해 14~15세기 중국본 경서의 유입과 간행 과정 경서 확산의 실상 등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조선 경학의 성장은 선조조에 완성된 경서 언해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며, 그 과정에 석의(釋義)라는 독특한 경서 해석 방법이 추진되었다. 석의는 이황을 중심으로 한 퇴계학파에서 주도하였으며 당시에 편찬된 주석서는 <사서석의(四書釋義)>, <사서질의(四書質疑)>, <소학석의(小學釋義)> 등이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제판본을 조사하여 원문의 대조 및 교감을 진행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사서석의>의 전승 과정에서 발생한 편찬 주체 시비 및 원본 복원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소학석의>는 본 연구를 통해 처음 소개되며, 퇴계학파에서의 17세기 후반까지 석의류가 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기호학파의 경학은 사서오경대전의 소주(小註) 분석이 핵심 요소 중 하나이므로, 이이를 비롯한 그 문도들의 소주 분석을 집중적으로 고찰해보기로 한다. 기호학파 경학 자료 중 본 연구와 가장 밀접한 것은 홍기의 <경서의오강해(經書疑誤講解)>이다. 이 책은 운회(韻會)의 자획을 기준으로 중국본과 조선본 경서의 사서오경 및 혹문(或問)의 이체자 등을 경문과 소주까지 정밀하게 교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지학과 경학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며, 이에 대한 소개 및 정밀한 분석을 진행하고자 한다.
넷째, <어록해(語錄解)>와 <대학어록(大學語錄)> 등 사서오경대전 소주(小註) 이해를 위해 간행된 어록류 자료들에 대한 원문서지학적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어록해>는 남이성(南二星)이 편찬을 시작하여 송준길 등의 교정을 거쳐 완성된 것이며, 목판본 및 필사본이 다수 전존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수록 내용이 다소 차이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 <대학어록>처럼 특정 경서를 대상으로 어록이 추진된 경우도 있다. 따라서 국학기관 및 개인이 소장한 어록해를 일괄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본 연구에 대한 신뢰성 획득과 오류 점검을 위해 연 1회 이상 전국 규모 학술대회에 참석하여 주제 발표를 하고, 완성된 원고는 학술지에 투고하여 다시 한번 검증을 거칠 예정이다. 학술지 투고는 연 2회 이상을 목표로 한다. 또한 연구 성과의 대중화를 위해 블로그, YOUTUBE 동영상 제작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주제별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은 각 항별로 묶어 최종 단계에서 단행본 간행을 시도하고자 한다.
기대효과
(한글 2000자 이내)
본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최근 인터넷의 발달, 도서관 소장본 고서 도록 등을 통해 송(宋), 원(元), 명(明) 간행한 십삼경(十三經)의 이미지를 일정 부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본 연구는 실물 자료를 중심으로 한 연구 방법을 채택했으므로 중국본과 조선본 사이의 판심(版心)과 흑구(黑口)의 형태 변화, 결획(缺劃)이나 대자(代字)를 활용한 피휘(避諱), 이체자, 방점(傍點)이나 성조의 변화 등 형태서지적 차이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이후에 간행된 판본들과의 형태적 차이 및 경서 판본의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사서오경대전 이전에 고려와 조선에 이미 적지 않은 수량의 중국본 경서가 유통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진주목(晉州牧) 간행 <주자중용혹문>(개인소장), <주자대학혹문>(규장각 및 고려대 소장), <근사록집해>(퇴계수택본) 및 제주목 간행 <논어>(한국국학진흥원 소장) 등이 그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이황이 편찬한 <사서석의(四書釋義)>의 전승 과정을 고찰하고, <퇴계용학석의변오(退溪學庸釋義辨誤)>(소수박물관 소장)와 필사본 <사서석의>(경북대 소장) 등의 원문 대조를 통해 금응훈(琴應壎) 편찬본 <사서석의>가 원형과 다를 수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덕홍(李德弘)의 <사서질의(四書質疑)>는 문집에 수록된 것과 원형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의 내용이 상당 부분 다르므로, 이에 대한 정밀한 대조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사서질의>가 문집에 수록되는 과정에서 기호학파의 비판이 수용되어 원형과 차이를 보이게 된 내력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서석의>와 <사서질의>는 퇴계학파 경학의 정수이자 경학 전성기의 저술이므로 후대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에 대한 특징적인 면모를 서지학적과 경학의 두 가지 관점에서 함께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17세기에 퇴계학파를 계승한 오선기(吳善基)의 <소학석의(小學釋義)>를 형태서지학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학술사적 의미 부여를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할 것이며, <소학제가집주(小學諸家集註)> 및 <소학언해(小學諺解)> 등과 비교하여 향후 연구 촉진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다섯째, 조선 후기 경학을 주도한 기호학파의 경학을 시대별로 통시적으로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이(李珥)의 <대학소주권평(大學小註圈評)>과 <중용소주권평(中庸小註圈評)>의 각 구절을 <대학장구대전(大學章句大全)> 및 <중용장구대전(中庸章句大全)>과 대조할 예정이다. 이이는 대전본 소주를 검토한 뒤 검은색과 붉은색을 사용해 권말(圈抹)과 권점(圈点) 등의 방법으로 비평을 가했다. 예를 들어 쌍봉요씨(雙峯饒氏)[요로(饒魯)]의 설은 많은 부분에 검은색 밑줄을 가했는데, 이는 주희의 설과 의리상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후일 이이는 선조(宣祖)로부터 <대학장구대전> 개정의 임무를 띠고 소주(小註)를 산정(刪定)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작업은 송시열(宋時烈)과 그 문도들에 이르러 결과를 보였다. 그러므로 본 연구를 통해 대전본의 소주가 일부 산정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송시열의 제자로 알려진 홍기가 편찬한 <경서의오강해(經書疑誤講解)>는 경학, 서지학, 문헌학, 사상사 등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논의된 적이 없었다. 본 연구를 통해 경서의오강해의 연구를 촉진하고, 그 학문의 학술사적 가치를 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문서지학은 수작업으로 진행되므로 일정 부분 한계를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검퓨터공학이나 IT 등의 분야와 협업하면 오류를 줄일 수 있고 작업 능률이 배가된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한문으로 쓰여진 텍스트를 이미지문자인식프로그램(PDF OCR 등)을 활용하면, 대조의 편리성 뿐만아니라 유사 연구의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개인용 컴퓨터를 비롯해 모바일에 기반한 문자인식스시템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으므로, 이를 한문 원전 대조 교감 작업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연구요약
(한글 2000자 이내)
경학은 유가(儒家) 경서(經書) 혹은 특정 경학가의 경설(經說)을 다루는 분야로, 전통적으로 원문의 대조 및 교감(校勘) 등 서지학이나 문헌학을 근간으로 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경학은 텍스트 자체보다는 경설에 치중된 경향을 보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조선 전기의 경서 주석 방법이 훈고(訓詁)보다는 의리(義理)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유가 경서에 대한 서지적 분석이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송원(宋元)에서 간행된 경서의 유입 여부, 조선 초기 간행본의 대본, 16세기~17세기 영남학파와 기호학파 경학의 중요 쟁점, 퇴계학파 경학에서 원문 교수의 중요성, 율곡학파 경학에서 서지학적 분석 방법의 중요성 등에 대한 연구는 소홀한 편이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려고 한다.
첫째, 여말~선초에 유입된 유가 경서 중 한국에서 간행된 서적을 전수 조사하여 전존 현황을 파악하고, 각각의 텍스트가 지니는 의미를 서지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논어집석증정장도통의대성(論語輯釋增訂章圖通義大成)>은 세종조에 금속활자(갑인자)로 간행되었는데, 권수제(卷首題)와 권말제(卷末題)가 부분적으로 상이하며, 간행 배경 등이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고려말 진주목에서 간행된 <주자중용혹문(朱子中庸或問)> 및 1411년 제주목 간행 <논어> 등을 통해 예사의의 <사서집석>이 이미 여말~선초에 널리 유통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419년 무렵 조선에 유입된 사서오경대전과 함께 <사서집석>은 유가 경서의 두 축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조선 전기 유가 경서 학습 및 이해 수준이 제고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신유학의 정착과 확산 과정을 탐구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조선의 경학은 언해의 완성과 퇴계학파와 율곡학파에서 독창적인 학설을 주창하던 16세기를 1차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간행된 경서 주석서는 임란으로 인해 원형이 소실된 채 전승된 경우가 다수 있으며, 후학들에게 오해를 불려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므로 원형으로 추정되는 텍스트를 발굴하여 대조 및 교감 작업을 거쳐 신뢰 여부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퇴계학파의 <사서석의>가 여기에 해당하며, <퇴계용학석의변오(退溪學庸釋義辨誤)> 등 원형 회복을 위한 보충 자료 4종을 비교, 대조할 것이다. 또한 이덕홍의 <사서질의(四書質疑)>는 후대 송시열에게 이황의 설로 오인되어 심각한 비판에 직면하며, 원형이 변개(變改)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필사본과 목판본을 대조하여 변개의 내력과 원인 등을 분석할 것이다.
셋째, 퇴계학파의 경학은 이황과 이덕홍 등 특정 인물에 연구가 치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노수신, 유성룡 등 비교적 소홀하게 다루어졌던 퇴계학파의 경학가를 소개하고 이들이 남긴 경서 주석서의 특징과 의미를 주목하고자 한다. 대상 자료는 노수신이 편찬한 <동몽수지(童蒙須知)>,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등과 유성룡의 <동몽수지발문>, <대학장구발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넷째, 기호학파의 경학은 이이의 사서오경대전(四書五經大全) 소주(小註) 권평(圈評)과 산정(刪定), 김장생의 변의(辨疑), 송시열의 <주자대전(朱子大全)> 주석 작업과 혹문(或問), 정의(精義)의 합편(合編), 권상하(權尙夏)와 김창협(金昌協)의 소주(小註) 오류 극복을 위한 노력 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호학파의 경학은 소주(小註)를 주요 키워드로 설정할 수 있으며, <대학장구대전>과 <중용장구대전>에서 이이의 권평을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송시열이 간행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논맹혹문정의통고(論孟或問精義通攷)>와 <자경편(自警編)>,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등도 원문서지학적 관점에서 접근을 필요로 한다.
다섯째, 오선기(吳善基)의 <소학석의(小學釋義)>와 홍기의 <경서의오강해(經書疑誤講解)>는 각각 17세기 영남학파와 기호학파 경학 이해를 위한 주요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소학석의는 소학과 관련된 석의류(釋義類) 중에는 최초이며, 이황의 <사서석의>와 <경서석의>를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지닌다. <경서의오강해>는 중국본과 조선본 경서(사서오경 및 혹문 포함)를 대조 교감한 최초의 텍스트라는 점에서 경학과 서지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두 자료의 체재, 구성, 간행 배경 등의 분석을 포함하여 본문에서 대상으로 삼은 자료와의 비교 대조를 진행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축적된 연구 성과를 공유하거나 확산시키는 방법을 학술대회, 등재지급 저널에 논문 수록, 대중화 방안 등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고자 한다. 또한 원자료 확보와 텍스트화를 위한 이미지 텍스트 변환 작업 등 IT분야와의 공동 연구 방법을 강구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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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250자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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