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단체장 유리천장과 민주당

in #politic7 years ago (edited)

지난 5월 2일 허핑턴포스트에 민주당 17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가 전부 남성이란 것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글이 실렸다. 이 사실 자체는 보여줄 가치가 있는 정보다. 그런데 이 기사를 공유하여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좀 낯뜨거운 민주당 비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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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가 그런 반응을 유도했다는 것도 분명하다. 요즘 추세에서 허포가 저런 글을 쓰는 걸 이해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짤’의 시대다. 직관적으로 그림 하나로 무얼 보여줘야 사람들이 납득한다. 그래도 허포 쯤 되니까 커뮤니티 글과는 달리 짤이 조작이란 의심은 안 한다.
 
 
하지만 비평으로 치면 좋은 비평이 아니다. 비평엔 역사성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주어진 구조 속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그게 결실을 맺었는지 안 맺었는지를 추적해줘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비판을 납득한다. 다만 현상 하나를 던져놓고 ‘민주당이 더 하네’라거나 ‘진보마초가 더 하네’ 같은 말들을 나오게 하는 것은 사실도 아니거니와 냉소주의에 복무할 뿐이다.
 
 
나는 노무현 주변 정치인들이 동세대 정치인들에 비해 ‘고위직에 대한 인위적 여성할당제’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실천했던 이들이라고 본다. 진성당원제 정당에서 많은 페미니스트 당원과 공존했던 (민주노동당을 대표로 하는) 진보정당의 그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진정성이었다.
 
 
광역자치단체장 문제도 그렇다. 한국에서 광역자치단체장에 당선된 여성이 아직까지 없으며, 그걸 ‘유리천장’이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2011년 보궐선거 때 문득 이 사실에 관심이 생겨서 찾아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부분에서 나름의 노력을 했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강금실을 후보로 내세워 낙선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한명숙을 후보로 내세워 낙선했다. 2011년 보궐선거에 대해 우리는 박원순이 나경원을 꺾은 선거로 기억하지만, 저 유리천장의 잣대로는 나경원의 패배 역시 유리천장이란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그 당시에도 민주당 후보는 박영선이었다. 박원순은 당시 무소속 후보로, 초기 ‘안철수 현상’의 점지를 받아 민주당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했다. 이것도 민주당이 양보해준 상황이지 뭘 잘못한 건 아니었다.
 
 
말하자면 민주당은 2006년 이후에 서울시장 선거에 세 번 연속 여성 후보를 내세운 정당이다. 평가할 부분이 없을까? 서울시장인 이유도 간단하다. 서울이 그나마 제일 리버럴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총알받이로 소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강금실에겐 법무부장관의 경력이, 한명숙에겐 국무총리의 경력이 있었다. 이 경력 모두 참여정부 때 만들어졌다. 친노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
 
 
해당 기간 동안 민주당이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가능성이 있는 영역은 광주시장에 대한 전략공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기간 동안 광주조차도 안심할 지역이 아니었고, 열린우리당-민주당과 민주당-국민의당의 경쟁이 펼쳐진 곳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이번 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를 여성으로 삼으려고 했다면... 양향자를 광주시장에 전략공천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진보성이 담보될 수 있을까? 진보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양향자는 미심쩍다. 고위직 여성 숫자가 느는 것을 맹목적인 선으로 보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시선과 진보주의자들의 시선에서 분기점이 생기는 부분이다.
 
 
선출직과 임명직은 다르다. 국무총리도 장관도 의원도 여성이 하는데 아직 광역단체장에선 당선자가 없다. 한국 사회 시민들의 평균적인 젠더롤에서 여성의 역할이 광역단체장의 영역과 교집함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평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민주당은 ‘공천을 여성을 주면 될 거 아니야’란 식의 나이브한 방식의 노력은 충분히 기울인 바 있다.
 
 
강금실, 한명숙, 박영선, 그리고 나경원은 각각 다른 유형의 여성들이다. 그들 모두가 패배했다. 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출마해도 시민들이 투표를 기꺼이 할 만한 거의 유일한 정치인은 심상정이라고 보는데, 이 사람은 정의당이라 문제가 복잡하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페미니즘 조류와 접선하기 전까지 심상정의 이미지는 ‘남성화된 여성’으로,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좋아할 여성상이 아니었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어필할 여성은 남성화된 여성이란 것 역시도 페미니스트들이 숙고해야 할 주제가 아닌가. 결국 고위직 여성할당제는 친노정치인들 입장에선 ‘좋은 게 좋은 것’이라 말할 수 있는 부분이나, 진보주의자와 페미니스트 입장에선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영역에서 참여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강경화 외무부장관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현재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만족스러운가. 정장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많고, 강장관 역시 얼굴마담이란 평가가 많다. 물론 후자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외무부와 검찰은 믿지 못하고 직접 컨트롤하고 있다는 특수성의 산물이기는 하다.
 
 
다만 여성 숫자를 늘리는 게 아니라, 실제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성들을 육성해서 그 자리에 올리는 것까지 고민해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지명으로 번번이 실패해왔다면, 기초자치단체장부터 가능성 있는 여성들을 육성하는 길을 고민했어야 했다.
 
 
이 점에서 민주당이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아마 잘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보여줘야 더 설득력 있는 비판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다만 요즘 기사 한 편 쓰는데 주는 시간을 고려해선, 언제 그런 걸 쓰고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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