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room for dessert! 넷플릭스에서 만나는 미식의 세계

in #netflix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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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엔 좋은 작품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다큐멘터리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 Chef's Table]이야말로 넷플릭스의 간판 콘텐츠가 아닐까 싶다. 나 또한 [Chef's Table]로 넷플릭스에 처음 입문했고, 그렇게 넷덕(넷플릭스 덕후)이 되었다. 매 시즌마다 작품을 보고 난 뒤에는 구글맵에 레스토랑 주소를 표시해 놓기도 하고, 해외를 나갈 때엔 내가 가게 될 도시에 혹여나 [Chef's Table]에 나온 곳이 있진 않은지 확인하기도 한다. 실제로 시즌 3의 첫 화로 소개된 우리나라 백양사 천진암의 주지인 정관 스님의 사찰음식을 먹기 위해 템플스테이를 신청하기도 했고, 방콕에 여행 갔을 때엔 시즌 2의 마지막 에피소드였던 인디안 퀴진 가간(Gaggan)에 예약 전화를 수도 없이 걸기도 했다. 어렵사리 연결이 되었을 땐 이미 예약이 다 찬 뒤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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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s Table]의 크리에이터 데이비드 겔브(David Gelb)는 2011년 일본의 스시 장인 지로 오노(Jiro Ono)의 요리 철학을 그린 다큐멘터리 [스시 장인: 지로의 꿈 Jiro Dreams of Sushi]을 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Chef's Table]은 매 시즌마다 에미상 후보로 오를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데, 데이비드 겔브와 넷플릭스는 [Chef's Table]이란 브랜드를 매우 잘 활용한다. 특히 시즌 1, 2가 성공한 후 미식의 나라 프랑스만 떼어내어 [셰프의 테이블: 프랑스 Chef's Table France]를 스핀오프로 선보였는데, 이를 통해 콘텐츠의 범주를 얼마든지 확장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시즌 3의 첫 화에선 마스터셰프가 아닌, 우리나라 승려인 정관 스님이 출연해 사찰음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에피소드는 탄탄한 구성과 감각적인 영상미로 전 세계 넷플릭서들을 매료시켰을 뿐만 아니라,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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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릴리즈된 시즌 4는 프랑스 편처럼 스핀오프 격은 아니지만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뜻밖의 특별판이다. 바로 '페이스트리 Pastry' 특집. 보기만 해도 단내가 나는 것만 같은 디저트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모든 시즌이 그러하듯 [Chef's Table]의 타이틀 시퀀스(인트로 영상)는 언제나 예술이다. 막스 리히터(Max Richter)가 편곡한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로 휘몰아치며 시작되는데,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 요리들이 고혹적이면서도 강렬한 바이올린 현의 선율에 맞추어 등장한다. 인트로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전반에 깔리는 음악들도 모두 우아하다. 작곡을 맡았던 던칸 썸(Duncan Thum)은 2015년과 2016년 에미상에서 시리즈 부문 최우수 작곡상에 두 차례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이처럼 리드미컬한 영상 편집도 한몫 하지만, 내가 [Chef's Table]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전 세계 유명 셰프들이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셰프라는 직업에 임하는지 엿볼 수 있단 거다. 시즌 4에서도 마찬가지로 디저트계의 스타 셰프 4인의 생각과 철학을 접할 수 있었는데, 유독 다른 시즌에 비해 달달하고 유쾌하지 않았나 싶다. 단것은 역시 언제나 옳다. 셰프 4인의 달콤한 이야기들을 잊지 않도록 메모한 것들을 옮겨보고, 그들의 시그니처 메뉴들을 소개한다.

  • Christina Tosi - Momofuku Milk Bar [New York Cit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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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토시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디저트 가게 모모푸쿠 밀크바의 페이스트리 셰프다. FCI(French Culinary Institute)를 졸업했지만, 처음엔 스타 셰프 데이비드 장(David Chang)이 이끄는 레스토랑 모모푸쿠 쌈바(Momofuku Ssäm Bar)의 시설 관리를 맡았었다. 뉴욕의 식당들은 보건부로부터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큰 숙제인데, 당시 두 번이나 경고를 받았던 데이비드가 보건부에서 일한 경력이 있던 크리스티나를 고용하며 연이 닿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직원 식사로 만든 마약파이(Crack Pie)를 맛본 데이비드가 쌈바의 디저트 메뉴를 맡기며 큰 인기를 끌게 되었고, 후에 새롭게 선보인 자매 브랜드 밀크바의 수장으로 앉혔다. 무명이었던 그녀의 가능성을 데이비드가 알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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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9년 뉴욕에 있었을 당시 밀크바의 시그니처인 '시리얼 아이스크림(Cereal Milk Soft Serve)'을 처음 맛보았었는데, 사실 내 입맛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더랬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콘시리얼 맛이었고,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 유치함과 정키한 맛이야말로 밀크바가 내세우는 것이다. 애플파이,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지극히 미국적인 디저트, 혹은 어렸을 적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디저트를 전문 파티셰가 새롭게 재해석해 만들어낸다. 한 입 먹으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그런 디저트지만, 어디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기발함이 겹겹이 들어차 있다. 옛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동시에 향수를 파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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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밀크바를 통해 요식업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제임스비어드재단상(James Beard Foundation Award)에서 두 차례나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는데, 2012년 떠오르는 신예를 가리는 '올해의 라이징스타셰프(Rising Star Chef of the Year)'와 2015년 '최우수 페이스트리셰프(Outstanding Pastry Chef)'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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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rrado Assenza - Caffè Sicilia [Noto, Sicily|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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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노토에서 태어나 성장한 코라도 아센차. 미스터 시칠리아(Mr. Sicily)라는 별명답게 그는 시칠리아로부터 영감을 받고, 시칠리아에서 나고 자라는 재료들을 사용한다. 그가 만든 모든 디저트엔 시칠리아가 녹아있다. 카페 시칠리아는 4대에 걸쳐 이어져 왔고, 코라도는 이제 자신의 아들인 프란체스코에게 전수한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내려온 카페 시칠리아는 곧 시칠리아의 역사나 다름없다. 어릴 적 유모차를 타고 왔던 아기 손님들이 이젠 부모나 조부모가 되어 자식과 손주들을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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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코라도는 바다에서 수영한 후 그의 아버지가 손수 심은 과일들을 따먹곤 했다. 시칠리아의 자연으로부터 갓 딴 과일은 신선하고 다디달았으며 단순했다. 그렇게 코라도는 땅의 단순함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고, 시칠리아만의 디저트들을 만들게 된다. 시칠리아의 여름은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무덥기 때문에 카푸치노가 아닌 상쾌한 그라니타를 먹는다. 카페 시칠리아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시칠리아산 아몬드로 그라니타를 만들어 달콤하고 풍부한 맛을 끌어낸다. 요리 기술만 알아서는 안된다. 자연에서 나는 원재료를 잘 알아야 하고, 땅을 존중해야 한다. 코라도의 삶의 목적이 그의 땅, 그의 시칠리아를 보존하는 것인 만큼 말이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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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rdi Roca - El Celler de Can Roca [Girona|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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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와 피레네 산맥 사이에 있는 스페인의 아름다운 도시 지로나. 이 작은 도시 외곽에 미슐랭 3스타에 빛나는 레스토랑 '엘 세예르 데 칸 로카'가 있다. 할머니와 어머니에 이어 레스토랑을 가업으로 삼는 삼 형제가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음식은 장남 조안(Joan), 와인은 차남 조셉(Josep), 그리고 디저트는 막내 조르디가 맡고 있다. 로카 가문의 식당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의 정상에 두 번이나 올랐다. 비법이라면 형제들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무척 뛰어나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르디가 페이스트리 셰프로서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두 형과 열두 살 이상 차이 나는 늦둥이다. 어릴 적부터 요식업에 뜻을 둔 형들과는 달리, 조르디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했다. 이미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던 형들로부터 느낀 열등감은 후에 그를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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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디의 디저트는 남다르다. 흐름을 거스르는 반항적인 생각의 결과물로, 그의 자유로운 창의력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그는 특히 '냄새'에서 영감을 얻는데, 어릴 적 갖고 놀던 예메나 계곡의 흙을 증류시켜 끌어낸 향기로 '비 오는 숲'이란 디저트를 탄생시켰다. 아기의 머리에서 나는 우유 냄새와 보드라움을 양젖으로 만든 둘세데레체로 표현하기도 했으며, 시가를 태워 아이스크림 기계에 불어넣어 만든 시가 맛 아이스크림 '아바나로의 여행' 같은 도발적인 디저트도 선보였다. 막내의 디저트로 세 형제의 세계는 하나가 될 수 있었고, 레스토랑은 비로소 완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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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ll Goldfarb - Room 4 Dessert [Ubud, Bali|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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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골드파브는 뉴욕에서 지치고 불행했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이던 엘불리(elBulli)에서 일하고 뉴욕으로 돌아와 실험적인 디저트를 선보였으나 그는 계속해서 실패했고, 평론가들의 잔인한 비평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런 그가 처음 '디저트의 진보'라는 호평을 받은 레스토랑이 바로 룸포디저트다. 로어맨해튼에 문을 연 룸포디저트는 디저트 외에 어떤 음식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끼니처럼 디저트를 먹었고, 디저트가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매거진 뉴요커는 룸포디저트를 레스토랑이 아닌 하나의 문화운동(cultural activity)이라 칭하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의 손님들이 점점 더 늘어났고, 제임스비어드재단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동업자들은 윌에게 쏟아진 관심을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문을 닫게 된다. 그는 또다시 좌절했고, 뉴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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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적인 뉴욕 요식업계의 굴레를 벗어난 것이야말로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윌은 인도네시아 발리라는 낯선 땅에서 자신의 삶과 재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디저트의 기초는 발리에 다 있었다. 커피, 초콜릿, 육두구, 계피, 코코넛, 바닐라, 야자 설탕까지 나고 자라는 천혜의 땅이었으니까. 셰프에겐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윌은 그곳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들을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다시 한번 시작할 마음이 생겼고, 우붓 외곽의 한적한 곳에 룸포디저트를 열게 된다. 그는 갓 딴 카카오 열매로 핫 초콜릿 무스를 만들고, 천연재료인 야자 설탕으로 달지 않고 맛있는 머랭을 만들기 위해 1년 동안 실험하기도 했다. 발리는 윌에게 기초부터 다시 쌓을 기회를 줬다. 이제 그는 자존심을 위해 추상적인 요리를 하기보다 사람을 보듬는 것에 더 마음이 간다고 한다. 그의 요리 또한 훨씬 평온하다. 본인이 그렇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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