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한다면 이들처럼
지금과는 다르게 나는 유난히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고 엄마는 말한다.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잠시 우리를 봐주러 온 이모가 떠나는 날에도 몇 시간이나 울어대는 나 때문에 어른들은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엄마에게 매달려 지하철이나 버스가 아닌 집안에서 출근 전쟁을 일으킬 만큼 잠깐의 이별도 나는 버거워했었다. 이미 훌쩍 커버린 아니 훌쩍 늙어버린 나에게는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이미 익숙한 감정이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이별은 대부분 슬픔을 베이스로 진행된다. 간혹 다소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이 묘한 감정이라는 것이 말로 형언하기가 힘든, 혹은 아직 명확하게 정리가 안된 것들이다. 오늘 이야기는 그것에 대한 것이다.
90년대 초반에 우연하게 본 영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라는 프랑스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 프랑스 영화에 심취해 이해도 못할 기묘한 영화들을 주구장창 봤었던 것 같다. 그 중 하나였던 이 영화의 영제는 <The Hairdresser’s Husband>이다. 아주 오래 전 본 영화이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이런 내용이다. 영화 제목처럼 미용사가 등장하고 그 미용사의 남편 이야기이다. 미용사의 남편이 되겠다라는 꿈을 가진 꼬맹이가 40년이 흐르고 우연하게 만난 미용사와 어릴 적 꿈처럼 결혼한다. 결혼하는 과정도 현실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그냥 나타난 그가 청혼을 하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는 그와 결혼한다. 미용실을 주 무대로 소소한 일상의 시간이 한참 흐르고 폭풍우가 치는 어느 날 둘은 사랑을 나눈다. 사랑이 끝나고 여자는 폭우 속으로 사라진다. 이 후 그는 그녀가 남긴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먼저 떠납니다. 사랑을 남기고 갑니다. 아니 불행이 오기 전에 갑니다. 우리의 숨결과 당신의 체취와 모습, 입맞춤까지 당신이 선물한 내 생애 절정에서 떠납니다. 언제나 당신만을 사랑했어요. 날 잊지 못하도록 지금 떠납니다."
그녀가 떠나기 전 쓴 편지 내용이다. 다소 시니컬 했던 어린 나는 이 장면을 지독한 클리쉐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그 뒤 스쳐 지나가듯 끝나는 엔딩 장면에서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떠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듯한 동일한 미용실에서 남자는 여느 때처럼 손님을 기다린다. 손님 한 명이 들어오고 이발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이 남자는 대답한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미용사가 잠깐 자리를 비웠어요.”라고. 그리고 이국적인 음악이 흐르면서 이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의 제목의 ‘사랑’이라는 말을 ‘이별’로 치환했지만 이 둘이 이별을 한 것인지 아닌지 여전히 모르겠다.
또 다른 이야기이다. 두 명의 내 친구 이야기이다. 한 명은 여자고 또 다른 한 명은 남자고 그들은 연인 사이였다. 우리는 함께 유학을 한 사이로 나는 먼저 귀국을 하고 그 둘은 당시까지 미국에 적을 두고 있었다. 당시 여자 쪽은 뉴욕에서 직장을 구한 상태였고, 남자 친구는 여자와 다르게 조금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었다. 젊은 시절 누구나 그렇듯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비자와 관련된 거취 문제 등으로 쉽지 않은 때를 보내고 있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그 어느 곳에서도 적응을 못하던 그는 결국 귀국을 결심한다. 한국 행 편도 비행기 표를 끊고 여행이라도 가듯 무심하게 그녀에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며칠 후 귀국하는 당일, 출근하는 그녀를 지하철 역에 데려다 주고 “출근 잘 하고 일 열심히 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이고 그녀도 오늘이 헤어지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 날은 평소의 어느 날처럼 그렇게 시작되고 그녀는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그는 그날 미국에서 한국으로 대륙간 이동을 했다. 그리고 끝이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후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왜 그랬어? 왜 깔끔하게 관계 정리를 하지 않았어?”라고 묻지 않았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우리 손목이나 핸드폰에서 제시간을 달리는 시계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각자의 시간. 이별이란 건 특히 연인들 사이의 이별이란 것은 명확한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시간이 다 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한다. 간혹 누군가의 시간이 다하고 상대방의 시간은 아직 남아 있을 때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어쩌면 미용사는 그 시계를 버림으로 영원한 사랑을 꿈꾸었고 미용사의 남편은 시간을 멈춤으로 이별을 미뤘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두 친구는 그들의 시계가 서서히 멈추는 것을 동시에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어설픈 말이나 시도로 죽어가는 시계를 되살리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별이라는 주제를 두고 왜 이 두 가지 에피소드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패턴의 이별이기 때문에 혹은 설명하기 힘든 아련한 느낌의 이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행태가 다양하듯 이별의 형태도 여러 가지가 있다. 좋은 이별을 규정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넣어두고 싶은 이별의 경험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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