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에 이어지는 잡설
동키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녀석 앞으로만 달려나간다. 돌아오지 않는다. 뭐 행태만 보자면 옛날 운동권 노래인 "돌아오지 않는 화살"로 하고 싶었지만 아메리카 인디언이 아닌 이상 그렇게 이름 붙이는 것은 좀 너무하다 싶었다. 또 내가 뭐 그렇게까지 옛날 세대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의식이 투철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좀 허황되더라도 거침없이 생을 살아가라는 의미에서 동키호테에서 두 글자를 따서 '동키'라고 부르기로 했다.
세화의 벨롱장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바야바처럼 털이 수북하게 자라서 눈을 덮고, 물 묻은 대걸레처럼 털이 뭉쳐있었다고 한다. 벨롱장 셀러들은 이 녀셕을 벌써 한달 이상 보아왔다고 했다.
작년 이맘 때다. 딩요가 떠났다.
앞 마당이 있는 집. 섬에 오면서 딩요의 삶에 대한 고려 안한 것이 아니었다. 잔디도 좀 있고, 앞에는 말티즈가 뛰어 놀기에는 충분히 넓은 빈 터와 공간이 있어서 딩요에게 완벽한 환경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집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원했던 것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평생을 아파트 생활을 해왔던 그 녀석은 전원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20~30평 정도의 아파트 크기가 녀석에게는 적당했고, 창문 밖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환경은 녀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변화무쌍했었나보다. 게다가 집 앞으로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노루며, 그 노루를 잡아보겠다고 미친듯이 달리는 야생상태의 개들이라니!!!
창밖을 보며 끊임 없이 짖어댔다.
스트레스였다. 이사 온 지 1년이 되지 않아 딩요는 떠났다.
얼마나 미안하던지 3개월 이상 술만 먹으면 눈물이 났다.
물론 그건 1부에서 이야기했듯이 나도 이제 호르몬의 변화를 겪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은 종, 딩요와 너무 닮은 동키를 식구로 데려오기까지 많은 갈등과 주저함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카페에서 동키의 사진을 보자마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채제를 찾는 문제가 아니었다. 동키가 가족을 못찾고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진다면... 그것은 딩요를 다시 떠나보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걸 반복할 수 없었다.
동키는 버려진 경험이 있는 아이였다. 눈치가 너무 빨랐고, 아직까지도 심하게 불리불안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얼마일지 모르지만 야생을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바깥 공기를 맡기위해 창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고, 처음 본 사람에게, 처음 본 개들한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다. 정말 동키호테처럼 일단 다가가고 경험해보는 것이 이 녀석의 성격이다.
처음 며칠간은 활동성도 없어보이고 눈치만 보고 우울한 듯하더니, 점점 본색을 드러냈다. 얼마전부터는 밥 달라고 꿍얼거리고, 놀자고 꽝꽝 짖어댄다. 팔을 끌어당기고, 다리 사이에 앉겠다고 다리를 벅벅 긁는다.
중요한 것은 체온이다.
잘 때면 늘 다리 사이 혹은 나의 배 쪽에서 자던 딩요가 떠난 후 그 녀석이 없다는 상실감이 격하게 밀고 들어오던 시점은 다리와 배에서 느껴졌던 그 녀석의 체온이 그리울 때였다.
아랍 소년 '모모'. 동키가 오기 전에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을 읽었었다면 동키의 이름은 아마도 모모 아니면 모하메트가 되었을 것이다. 동키 이 녀석... 모모와 닮은 구석이 많다.사람을 그리워하고, 또 두려워하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고, 버려졌었고, 버려졌지만 또 그건 상처이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나이보다 약싹빠르고... 그리고 이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나를 믿는 것 같다. 하...
그러고보니 애월이뇬에 대한 이야기를 못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