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나의 멘토였다.steemCreated with Sketch.

in #life7 years ago

2010년 4월! 봄 같지 않은 봄 날씨가 연일 계속 되고 있다. 지금 난 장애인이지만 장애인이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장애라는 것은 내가 장애에 굴복하여 장애란 굴레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 장애인이지 장애의 굴레에 벗어나 사는 삶은 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초록의 푸른 봄날! 해살이 눈부신 따스한 오후에 7살,4살 난 두 아들이 아버지 같이 놀자 하며 나의 품으로 달려온다. 뛰어 오는 두 아들의 모습이 봄날의 햇살보다도 더 눈 부셔 보인다.
만일 내가 지난날의 고통을 감수하고 인내 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 순간의 눈부신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1994년 내 나이 스물일곱! 대학을 졸업하고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에 공채로 당당히 합격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담고 있었다.
그렇게 우쭐하며 열심히 생활을 하고 있었다. 유난히 산에 가기를 좋아하여 쉬는 주말이면 늘 배낭을 메고 지리산을 올랐다. 산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구례 화엄사를 시작하여 노고단을 거쳐 연하천에서 머물고 세석평전의 철쭉을 보며 장터목의 고사목에 세월의 흔적을 살피고 천왕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가슴이 터지는 듯한 행복이었다.
산은 나의 안식처이자 휴식처였다. 오래된 등산장비를 새것으로 바꾸고 다가오는 주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주말은 영원히 나에게 오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기다렸던 주말은 나에게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를 안겨 주었다. 죽음보다도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 드는 순간이었다.

나의 스물일곱 살은 희망이 아니라 죽음보다 깊은 절망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스물일곱은 저물어 갔다. 스물일곱만이 저물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청춘도 함께 저물어 가는 듯 했다.
삶을 이어갈 열정도 꿈도 내게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넌 아직 젊으니까 다시 털고 일어 설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을 하지만 누워 있는 나는 “당신이 여기 누워있어 봐라. 그런 마음이 드는지? 그냥 죽고 싶은 마음 외에 그 어떤 것도 안 생기는데. 젊다고 일어설 수 있다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마라” 라고 외치고 싶었다.
나에게는 더 이상 긍정의 힘은 없었다. 오로지 지배 하는 것이라고는 움직일 수 없는 두 다리와 스물일곱에 차고 있어야 하는 기저귀가 죽음보다 더한 치욕이었기에 세상의 모든 일이 부정적이었다. 1년이 넘는 병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서야 같은 사고로 인해 장애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이야기라도 했지만 퇴원을 한 후에 집에서의 생활은 정말 문밖을 나서지 않는 고립 그 자체의 시간을 살았다. 세상에 나 혼자 병신이 된 것 같고 세상에 나 혼자 모든 고통을 다 받아 내고 있는 것 같아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늘 같은 천장만을 바라보며 그때 안전벨트만이라도 메었더라면 그때 조금만 천천히 갔더라면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복귀해 보았지만 달라지는 결과는 전혀 없었다. 수 만번이 넘게 곱씹어 보고 또 씹어 보았지만 여전히 같은 결과였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왜 하필 나냐고 왜 하필 나여야만 했냐고 수없이 물어보고 외쳐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것 밖에 없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방구석에 누워 짜증만 피워 대는 시체보다도 더 구린내 나는 인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있었다. 형님이 컴퓨터를 가지고 온 것이다. 내가 회사에 다닐 때 에어컨 설계 일을 하였으니 그 방향이든 아니면 무엇을 하든 가지고 놀아보아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첫 관문이 되었다.
이제 산이 아닌 컴퓨터가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PC통신으로 대화를 하고 컴퓨터에 관해 물어 보고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할 때는 난 장애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년이란 시간을 집에서 컴퓨터와 함께 보냈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고 비록 휠체어는 타고 다니지만 컴퓨터 일이라면 앉아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7년 창원! 난 창원에서 5평정도의 창고를 임대하여 컴퓨터 가게를 열었다. 건강하게 걸어 다니는 내가 아니라 휠체어에 앉아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처음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첫 걸음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장애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어서도 아니었고 컴퓨터가게를 열어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아니었다. 그냥 집에 있는 것 보다는 바깥세상 구경이나 해보자라고 마음먹은 것 뿐 이었다.
내가 돈을 벌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내가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냥 서른이라는 나이에 한 지붕아래서 늘 같은 천장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지루해서였을 뿐이다. 컴퓨터 가게의 장사가 되든 안 되든 그것은 관심이 없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컴퓨터와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것만 해도 만족 할 수 있었다. 그러다 간혹 찾아오는 손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예전에 설계한 기술이 있기에 찾아오는 손님 중에 설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어 도움을 준 것이 입소문을 타서 가끔 손님이 오곤 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내가 굳이 손님을 더 유치해야겠다는 욕심이 없었다. 걸어 다닐 때와 휠체어에 타고 있을 때와는 너무나 판이하게 달랐다. 돈을 쓸 일이 없었다. 술을 마시러 나갈 일도 없었고 더더욱 놀러 갈일도 없었다. 그저 밥 먹고 담배 사 피울 돈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더 이상의 바램 도 희망도 필요 없었다. 시간은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2000년! 밀레니엄의 시대라고 들뜨기 시작한 2000년! 그 2000년에 내 인생에 있어서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기적이었다.
그 해 11월 내가 결혼을 한 것이었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일이었다. 나 역시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것 이라고는 꿈에서 조차도 생각지 못했다.
우연히 친구가 와서 설치 해준 채팅 프로그램이 나의 인연을 찾아 준 것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 축복이 시작된 것이다. 나의 인연은 인터넷이라는 선을 타고 나에게 왔다.

2000년 11월 12일 결혼을 하였다. 결혼을 하면서 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고 뚜렷한 소득이 없었고 그렇다고 재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빈손과 고장 난 두 다리가 전부였다. 아내 역시 서울에서 창원이라는 지방으로 내려와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부부는 국민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었고 교통안전공단에서 지원하는 교통사고 피해자 지원으로 매달 받는 15만원이 우리 소득의 전부였다. 한 달 생활비가 20만원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우리는 아끼고 모았다. 나의 목표는 5년 안에 수급자 생활을 청산 하는 것이었다. 장애뿐만 아니라 경제에서도 홀로서기를 하고 싶었다.

가정을 꾸리고 한 집안의 가장이 되다보니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분이 너무나 확실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돈 이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변해 있었다.
시간 때우기로 시작한 컴퓨터가게를 본격적으로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 때부터 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마케팅에 관한 공부를 하고 경영에 관한 공부를 하고 경제에 관한 공부를 하였다. 새벽5시에 일어나 잠지기전 11시까지 죽어라 공부를 했다. 그리고 컴퓨터 가게 일에는 목숨을 걸었다. 내가 휠체어를 타고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 외에는 보이지 않았고 내가 이일을 해볼까 저 일을 해볼까 하는 시간적인 여유도 가지지 못했다. 7년이 넘는 시간을 그냥 그렇게 보낸 것에 대해 보상을 받기위해서는 지금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컴퓨터 가게 일에 목숨을 거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방도는 내게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비장애인이 하는 실수는 그래 그럴 수 있지 라고 봐 줄 수 있지만 장애인이 실수를 하면 병신 꼴값 떨고 있네, 라는 소리가 바로 돌아오는 것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장애인이라서 내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있으니까 정상인들이 좀 너그럽게 봐 주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나를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인 전체를 죽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난 적어도 비겁하게 장애라는 이름 뒤에 숨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비록 내가 장애인이지만 정상인 못지 않는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일에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피터지게 살아야만 했다. 나를 위해서 나의 가정을 위해서.

새벽5시 어김없이 일어나 책을 보고 고객들에게 한자 한자 정성들여서 편지를 쓴다. 때로는 우편으로 보내고 때로는 예쁜 복 돼지 저금통과 함께 넣어 택배로 보낸다. 그리고 자주 연락이 오지 않는 고객들에게는 계간지 형식으로 안부를 여쭈어 보는 엽서를 보낸다. 매일 20장씩 엽서를 보내고 편지를 쓰고 복 돼지 저금통을 보낸다. 그렇게 고객과 관계를 맺어 가고 있다.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던 매출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 목표로 한 5년 안에 수급자 생활을 벗어나겠다는 나의 목표는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실현 되었다. 난 수급자에서 벗어난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수급자 생활이 잘 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난 적어도 국가가 나를 책임지지 않을 정도로 홀로서기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것이기에 더 없이 기뻤다. 그리고 다시 목표를 정했다. 5년 뒤 번듯한 내 집을 갖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내와 다짐을 했다.

2004년 7월. 기적의 일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의 2세가 태어난 것이다. 시험관 아기 시술로 어렵게 아기를 가졌고 그렇게 가진 아기가 8개월 만에 세상에 나와 엄마 품에 안기기도 전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무사히 태어나 준 것만 해도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그 때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아들에게 이 말을 했다.
“ 아들아! 세상은 지금 보다도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단다. 지금 이 순간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니 넌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힘내라 아들아”
나의 염원 되로 아들은 불과 일주일 만에 인큐베이터에서 나와 우리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 올수 있었다.

난 더 뚜렷한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목숨을 걸리라.
쉼 없이 뛰고 살아가고 열심히 노력했다. 나에게 있어 장애는 더 이상의 장애가 아니었다. 난 정상인이 하는 컴퓨터 가게보다 몇 배나 높은 매출을 올렸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장애 뒤에 숨어버리는 순간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그 순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5년 안에 라는 목표는 지키지 못했지만 난 지난 2008년 34평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를 했다. 대출은 없었다. 온전히 내가 가진 재산으로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럼으로 인해 지금 교통사고 피해자 지원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아깝지 않다. 내 스스로 장애를 딛고 일어서서 정상인들도 하기 힘든 일을 이루었고 지금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목표는 내 두 아들을 돈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당당하게 일어 날수 있도록 언제나 긍정의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키우고 싶다. 그리고 여유롭게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노후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소원은 내가 죽는 그날까지 만 권의 책을 읽어 보고 가는 것이다. 책은 나에게 있어 나를 일으켜준 원동력이자 나의 재산을 증식시켜주는 길잡이였다. 책은 나의 진정한 멘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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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는 비슷한 연배인것같은데 참 대단하십니다. 일어서기위해 몸부림치고 꿈을 이루어가시는 모습이 참 아릅답습니다. 사랑하는 사모님과 자녀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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