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능력

in #kr-pen7 years ago

ca.png

@thecminus, 갈증 // Cactus Girl

사람들은 내 능력? 체질? 아무튼 그걸 동정해. 목이 마르면 선인장이 자란다니, 너무 바보 같잖아? 나도 알아. 바보 같아. 나는 선인장 때문에 죽을뻔 한 적도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차마 바보 같다는 말을 못 하고 어떻게든 좋게 말을 한단 말이야. 가장 만만한게 개성이야. 개성 있지 않냐고. 그런데, 어차피 항상 물을 마실텐데, 선인장은 자랄 일도 없을텐데, 물을 자주 마시는게 무슨 개성이야? 나름 나를 배려한다고 하는 말이겠지만, 별 필요 없는 배려야. 이렇게 말하면, 또 나를 배려하려고 해. 좋은 소리를 늘어놓아. 다시 말하지만, 별 필요 없는 배려야. 왜냐면 사실 나는 내 바보 같은 선인장을 꽤 좋아하거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냐고?

첫만남을 생각해봐. 어지간히 사람 잘 사귄다는 사람들에게도 첫만남은 쉽지 않은 법이야. 공통점이 아주 많고, 기회만 있었다면 아주 좋은 사이가 되었을 사람들도, 첫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 하면 관계를 가질 여지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공부를 한다고. 상대의 관심사를 찾고, 평소에 즐기지 않는 활동도 좋아하는 척 하며 말문을 열어. 사람을 잘 사귄다는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능력은 없어.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하는거지. 뭐, 살인적인 미소를 가지고 있다면 편하긴 하겠네.

아마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어도 첫만남은 어려웠을거야. 첫만남에서 대뜸 "당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는 사람에게서 흥미를 느낄 사람이 어딨어? 무서워하거나, 미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 밝히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흥미 없음'이라 마음에 적혀있는 사람의 생각을 읽어서 뭘 하겠어? "당신은 나에게 흥미가 없군요."하면 신기하다고 흥미를 가져줄까? 마음 먹고 활용하면 못 써먹을 능력은 아니지만, 공부를 많이 해야할거야.

그런데 나는 그냥 제때 선인장이 자라도록 적당히 목이 마른 채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은 뒤에 화분 하나를 꺼내면 끝이야. 물론 연습을 좀 하긴 했어. 처음에는 아무데서나, 아무때나 자랐거든. 이제는 타이밍도, 위치도 조절할 수 있어. 그래, 그렇게 화분에 선인장을 피워내면, 그 다음엔 신비로운 표정. 이것도 연습을 좀 했어. 그럼 시선을 확 끌 수 밖에 없겠지? 그 다음은 식은 죽 먹기야. 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 없어. 그냥 신비감을 주고, 그 다음에 내 얘기를 하는거야. 신기하게도 나는 내 삶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소한, 바보 같은 선인장 이야기를 좀 했을 뿐인데, 상대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줄줄이 읊어. 얼마나 쉬워?

어디 이것 뿐인줄 알아? 나도 긴장할 때가 있고, 긴장하면 표정관리가 어려워. 너는 긴장하면 뭘 해? 시선을 피해? 휴대전화를 쳐다봐? 나는 냉수 한잔이면 끝이야. 표정도 감추고, 긴장도 풀어. 다른 사람들에겐 어려운 일이야. 물을 너무 자주 마시면 긴장한 티가 나잖아. 하지만 나는?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야. 내가 물을 얼마나 자주 마셔야하는지, 나 말고 누가 알겠어?

이제 내가 왜 선인장을 좋아하는지 알겠지? 세상에 쓸모없는 능력은 없어.


모티브를 주신 씨마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Sort:  

Cheer Up! 많은 사람들이 이 포스팅에 관심을 갖고 있나봐요!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목이 마를때마다 선인장이 자란다면 누구와도 별다른 어색함없이 대화를 틀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목이 마를 때마다 스팀이 생겨났으면 합니다.....감성적인 좋은 글에 이런 속물적인 댓글 송구합니다...

저도..스팀좀 생겨났으면 ㅠ

목 마를때마다 0.1스팀 ㅋㅋㅋㅋㅋ

저는 물을 하도 자주 마셔서 활용은 못할 능력이네요.

주인공이 목이 마르면 선인장이 자란다?
"바보같은 선인장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상대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줄줄이 읊어"
솔직히 줄거리에서 왜 그런것인지는 이해가 잘 안되네요.
전체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 건지 애매모호하네요.

신비감을 잔뜩 준 후에 신비감을 해소한거죠. 상대는 주인공이 노출한만큼, 자신을 노출하는게 예의라고 생각할테니까요.

세상에 쓸모없는 능력은 없다.
나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정말로 쓸모가 있다는게 반전이었는데... 전달력이 부족했나 봅니다.

kmlee님의 이런 글은 처음보네요. 몰입해서 순식간에 다 읽었습니다.

여신의 고뇌라는 글도 썼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글도 꾸준히 쓰려고 합니다.

kmlee님의 이런 스타일의 글은 너무 반갑네요.
그동안 써주신 주옥같은 글들은 사실 부족한 저로서는 몇번이나 읽어야 했거든요 ^^

이 글은 그림 속 소녀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소리내어 읽어야 합니다.

소녀의 구어체를 잘 살리질 못 해서 아쉽습니다 ㅜㅜ

입에 쫙쫙 붙는데요? 되게 새침을 떼며 읽었는데...

다행이군요 ㅋㅋㅋ

소녀의 구어체...ㅋㅋ를 살짝 붙여보면 어떨가요..??

사람과의 관계의 어려움
늘 평생의 걱정거리가 되는것 같습니다
쓸모없는 능력이 있을까요
분명 있을거란 생각입니다^^

흑흑... 최대한 밝게 썼는데 그렇게 현실적인 말씀을 하시면 슬퍼집니다.

ㅎㅎㅎ 활짝 웃고 갈께요 밝게요^^

한 편의 멋진 에세이입니다. 길이는 짧아도 메세지가 아주 명확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세상에 다들 각자의 능력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kmlee님의 선인장처럼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사회에도 책임이 있죠. 우리나라 교육과정 중 어디를 봐도 자신만의 능력을 찾고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와.. 이렇게 그림과 글이 콜라보가 되네요. 신기해요. @kmlee 님은 뭘 보아도 이만한 분량의 글을 쓰실 수 있을것 같아요. 부럽습니다.

뼈대는 씨마님이 다 쌓아주셨고 살만 조금 붙인게 전부죠.

와 이 아가씨 꽃집만 차려도 대박나겠는걸요, 진정한 창조경제-!
그보다 킴밀님 눈은 좀 괜찮아지셨나요?ㅜㅜ

예. 특별한 이상이 있는게 아니라서... 그냥 쉬었습니다 ㅋㅋㅋ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쉬셨다니 잘됐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5
TRX 0.23
JST 0.032
BTC 84591.55
ETH 2182.56
USDT 1.00
SBD 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