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에게 세대(世代)란
허우 샤오시엔의 <동년왕사>(85)와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00)을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
허우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은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허우 샤오시엔의 <동년왕사>는 대만 뉴웨이브가 정점에 있던 80년대에 만들어졌다. 이것과 <펑꾸이에서 온 소년>(83) <동동의 여름방학>(84) <연연풍진>(86)까지 네 작품은 허우 샤오시엔의 ‘성장기 4부작’이라 불린다. 새로운 밀레니엄에 만들어진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은 시기적으로 뉴웨이브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를 풍경으로 삼고 가족을 인물로 삼아 카메라에 잔잔히 담아내어 관객으로 하여금 삶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스타일은 뉴웨이브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허우 샤오시엔은 불과 3년 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현재까지 왕성히 활동 중인 예술가이고, 에드워드 양은 안타깝게도 2007년 60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타계했다. <하나 그리고 둘>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출처: 영화 <하나 그리고 둘> - 에드워드 양 헌정 포스터)
<동년왕사>와 <하나 그리고 둘>은 공통적으로 세대(世代)의 연결을 통해 삶이라는 것을 말한다.
<동년왕사>는 (주인공 소년 ‘아하우’를 중심으로 말하면) 1대의 할머니와 2대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3대의 자식들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처음과 중간과 끝에 죽음을 다루며 선대(先代)와 후대(後代)의 관계에 대해 상기시킨다. 선대와 후대는 온전히 같은 시간을 살아갈 수 없다. 후대는 선대의 젊은 시절을 함께하지 못하며, 선대는 후대의 늙은 시절을 함께하지 못한다. 그 함께하는 시간을 끊어내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그리고 후대는 자신의 선대와 같은 성장기를 거쳐 어느새 다른 누군가의 선대가 된다. 이것의 반복, 즉 죽음과 출생, 선대와 후대의 출현이 인생의 진리다.
(출처: 영화 <동년왕사>)
다른 시간 속에서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대사가 <하나 그리고 둘>에 나온다. 맥락상 대사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이어지는 장면들로 보건대 여러 인생에서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것을 뜻하고자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빠와 딸 ‘팅팅’과 아들 ‘양양’의 연결 고리. 아빠가 도쿄에서 첫사랑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과 딸 팅팅이 남자친구에게 상처 받는 장면, 그리고 양양이 좋아하는 여자애를 따라 잠수 연습을 하는 장면의 연결을 보면 마치 이 셋이 하나의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불교 윤회사상의 영향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출처: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이처럼 <하나 그리고 둘>에서도 세대의 연결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하나 그리고 둘>은 새로운 세대(이름 없는 아기)의 등장과 할머니의 죽음을 교차함으로써 이를 (<동년왕사>보다 좀 더) 명확히 나타낸다. 태어나 적당한 시기를 거쳐 성장하고 때가 되면 다음 세대에 순서를 물려주며 이승을 뜨는 것의 반복, 다시 말해 일생의 반복이 세상을 만든다는 것. 당연한 이치이지만 허우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의 카메라를 통해 보고 듣고 느끼니 그게 그렇게 아름답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