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정심(博大精深)
동양사상을 공부해본 이들은 많이 들어본 단어일 겁니다.
박대정심!
넓을 박, 큰 대, 자세할 정, 깊을 심 입니다.
넓고 큰데 자세하고 깊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다가오다 멀어지는 뜻이 알듯모를 듯 합니다.
박이부정(博而不精)이라는 주변 성어를 한번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대정심보다 조금 더 알려진 용어입니다. 넓고 큰데 자세하진 않다.
이것은 어떤 지식이나 사상에 대한 이야깁니다.
가령 예전에 문화부장관이 신문사설에 한자에 대한 지식을 매일 올렸었나봅니다. 무슨 자든 떠올리면 그 본질과 유래까지 척척 설명할 수 있었다죠. 광범위한 지식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사람 인(人)에 대한 풀이를 하면서 이렇게 올렸습니다.
“이 글자 모양을 보세요.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양이죠? 사람이란 모름지기 상호의존하는 사회적 동물, 즉 호모 사피엔스라는 의미가 이미 그 문자의 형상 안에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본 많은 사람들이 경탄했으며 고개를 깊이 끄덕거렸습니다. 그런데 문자학박사였던 모 교수가 그 사설을 보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장관의 해석은 현재 문자체만 알고 푼 해석이며 한자의 뿌리 격인 3000년 전 갑골문자로 사람 인(人)을 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죠.
갑골문자에서 보면 이런 모양인데요. 지금의 사람 인(人)과는 꽤 다르죠?
박사는 장관께 대략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장관님! 한자사설 올리시는 것 잘 보고 있습니다. 설문해자까지 공부하신 터라 그 지식이 매우 넓으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후에 갑골문자가 발견된 것까지는 못 보셨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3,000년 전 갑골문자로 사람 인을 보면 남자성인이 손에 홀을 들고 서 있는 모습입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사람 인(人)은 오로지 남자 성인을 뜻하는 것이었으며 그 상대 한자가 계집 녀(女)였습니다. 후대에 인(人)에 남녀를 포함하기 시작하니 뒤늦게 남자만을 뜻하는 사내 남(男)이 만들어졌습니다. 장관님께서는 갑골문자를 보지 못하셨기 때문에 해서체 사람 인(人)만 보시고 서로 의지하는 존재라고 그렇게 해석하신 것 같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박이부정(博而不精)한 지식이 전해질까 우려되어 외람되지만 개인편지로 이렇게 보내봅니다.”
이 편지를 받은 장관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개인적인 답장을 하진 않았지만 사설에 이렇게 게재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삽으로 팠는데 여기 트렉터로 일구는 이가 있어 저는 이제 그만 삽질하려고 합니다.”
참 절묘한 표현이며 또 그 학자다운 태도에 감탄이 나옵니다. 다만 그 일화를 들은지 어언 20여년이 지나고 지금 다시 그 사안을 떠올려봅니다. 과연 장관은 넓게는 알았으나 정밀하지 못했던 박이부정(博而不精)이었고 박사님은 넓고도 깊고 자세했던 박대정심(博大精深)이었을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보는 사람인은 관직을 가진 남자가 홀을 들고 서 있는 것을 훨씬 넘어선 근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직립하여 손을 쓰는 존재-라는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사실 무엇이 맞는지는 하늘만이 알 것입니다.
그리고 장관의 그런 이론 역시 틀리다고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갑골문자가 나오던 당시, 상나라의 문자적 의식은 홀을 든 남자일지 모르며 지금 21세기의 사람 인에 대한 감각은 서로 의지하고 도와야 하는 의미가 훨씬 타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문자, 한자라는 것도 시대정신의 흐름과 분리될 수 만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리는 있으나 더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어떠어떠하다….라는 관점의 발달이 있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모든 게 그때그때 다를 수 있으니 답이 딱히 없다…이렇게 봐야 할까요?
그래도 그 넓고 깊은 가운데 큰 것이 있고 자세히 들어갈수록 또 심오한 방향이라는 것은 있습니다.
그것이 하늘의 방향이며 생명의 본원을 향한 것이며 반본귀진이며 박대정심(博大精深)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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