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에 대하여

in #krcalligraphy2 months ago

지인이 톡으로 물어왔습니다.

“고요함, 입정…의념, 노력…졸림…벌컥…환장…주이스…어리둥절…궁금…?”

요약하자면 이런 질문 같습니다.

“어떡하면 고요해져요?”

음…이 답을 제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실은 저도 그닥 자신이 없단 말입니다. 다리 틀고 앉아있노라면 100만 마리는 아니지만 예닐곱마리의 당나귀들이 제 마음벌에서 뛰고 있다는….하지만 이번 계기로 저도 고요함에 대해 정리 좀 해보고 또 이참저참 콘탠츠도 하나 올려볼까 합니다.

역시 접근은 문자인문학적으로 해볼까요?

고요하다는 것은 뭘까요?

고요함.jpg

한자로는 정숙(靜肅)일라나?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 써붙여 있던 문구로군요.

고요할 정(靜) 엄숙할 숙(肅)입니다. 조금 더 파고들자면 어디 보자…

다툼이 쉬어짐이 정(靜)이요, 장난끼 빼고 엄숙함이 숙(肅)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 속엔 늘 다툼이 있지요. 무엇과 무엇이 다투나요?

나와 남이 주로 다툽니다. 결국은 사심(私心)이 문제군요. 사심은 곧 이기심(利己心)이고 그게 늘 충족되지 않으니 가상의 남을 만들어 다투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저도 어려서 기억해보면 겉으로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속으로는 참 많이 말싸움 했습니다. 사심이란 남과 분리된 나에 대한 마음이라는 뜻인데 사실 남과 완전히 분리된 나란 게 존재하기나 할까요? 아침에 모든 풀잎에 이슬에 맺혀있고 이슬방울마다 달빛이 비쳐있지만 달이 사라지면 그 모든 달 역시 사라지고 맙니다. 분리된 나라는 건 환상이죠. 그런데 이 환상이 오래 묵다보니 이제 정말 분리된 것 같고 외롭고 불안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정(情)이라는 끈적한 물질을 창조해서 서로 간에 연결하며 위안을 삼곤 합니다. 우리가 남이가? 이러면서 말이죠. 처음엔 가족정을 만들었다가 모자라니 고향정, 학연정, 친구 정, 국뽕정….그 정이 없으면 큰일날 것 같죠. 그래서 누군가 정없는 말이라도 하면 무정한 사람 어쩌구 하면서 그를 원망합니다. 이제….우리가 원래 분리된 존재라는 그 환상을 집어 던져버릴까요? 모두 이어진 생명이라는 감각을 되찾아보면 거기서 무엇이 회복될까요?

연민(憐憫)의 감각이 회복됩니다. 그건 정하고는 다르죠. 찻길로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아기를 보고 얼른 달려가 구하는 마음은 정이 아니라 연민입니다. 그 아기가 내 가족이어서 구하는 것도 아니고 동창이거나 동향이어서 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특정한 조건이 없으니 그것은 진실로 큰 것이지요. 연민이 샘 솟는 근원지는 자비(慈悲)입니다. 너무 나아가지는 말죠. 고요함을 회복하자면 잡다한 정을 버리고 번잡한 사심을 벗어나 그 자리에 원래 가득한 자비에 나를 적시는 게 어떨까요?

자비심은 본래 고요할 것 같습니다.

엄숙(嚴肅)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딴 짓하지 않는 게 엄숙함이요, 까불지 않는 게 엄숙함이며 한 눈 팔지 않음이 엄숙함입니다.

비유하자면 한 마음 오롯하여 바람 피지 않는 게 엄숙함이기도 합니다. 즉 바른 마음이며 정도의 특징이 엄숙함입니다.

한 맛, 한 마음으로 깊이 들어가면 오로지 그 것의 거대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장난의 거품을 아득히 벗어난 것이며 모든 말장난과 순구류를 초월한 것이겠지요.

어떤 이는 그럴 겁니다. 그거 너무 좁고 경직된 상태 아닌가요? 아무 재미없는 상태 같은데요?

실은 그 반대 아닐까요? 샛길, 곁길이 좁은 길이고 갓길이 답답하며 위험한 길입니다. 가장 바른 길이 가장 큰 길이며 무한이 거기에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봅니다.

우리가 고요해지고자 하나 고요해지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가요?

사심이 창궐하여 오만 잡것을 쫓아다니기 때문입니다. 잡념 하나하나를 붙들고 범인 잡았다! 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 모든 잡념은 잡범이고 그 조직의 수뇌를 검거하면 그 순간 일망타진이죠. 바로 사심입니다. 사심은 달리 말하자면 분리되었다고 느끼는 꿈입니다. 분리의 환상!

이제 당신이 망상의 시장통 속에 살 것인지 문득 고요해질 것인지 기로에 섰습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인정받고 싶고 끊임없이 추구하며 쉴 새 없이 여기저기 살피는 그것이 당신인가요?

아니면…

그 모든 잎새들이 떨어져 나간 그 의연한 본체가 당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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