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션윈공연 후기

in #krcalligraphy2 months ago

4월 25일 목요일에 우리 지역 몇 분과 함께 고양시 아람누리극장에서 션윈 공연을 보았습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이 날이 중국 중난하이에서 4.25평화청원이 일어났던 기념일이기도 하네요.

그 일에 대해선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오늘 제가 본 션윈을 반추해봅니다.

저는 작년에 처음 션윈을 보았었고 올해가 두번째인데요.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관람하는 저 자신의 내적 그릇의 변화였다고 봅니다.

작년에는 간장종지로 션윈을 받았다면 올해는 주전자 정도로는 받은 느낌입니다.

우선 션윈의 스토리에 대한 사전 공부가 좀 되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고 또 다른 이들의 션윈 후기가 의외로 큰 자극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 저렇게 온 몸의 세포를 열고 보는 방법도 있구나!’ 이런 감수라고 할까요?

또 한 가지는 션윈쮜핀 1년구독을 하게 되면서 집에서도 수시로 션윈작품을 보게 된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매년 션윈의 모든 내용은 새로 짜여지기 때문에 반복되거나 지루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션윈의 무용기법에 대해서도 예전엔 그저 신기방기했다면 이제는 그 기술이 중국 고대의 무용기법이며 신적인 사상내포가 표현된 거라는 것도 어렴풋하게 알고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이번 회 션윈은 [구도의 서막을 열다]-천상세계에서 창세주가 황금마차를 타고 나타나 외치는 사자후로 우리 의식의 봉인된 기억을 한차례 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나를 따라 지상으로 내려가 모든 생명을 구도하자!”

그에 호응하여 헤아릴 수 없이 무량한 신적 존재들이 그 뒤를 따라 웅대한 발원을 하고 그 뒤를 따르는 장면이 완전 압권입니다.

그 뒤로 이어진 [남성고전무], [여성 소매춤] 등은 비록 스토리는 없지만 내 몸 안에서도 다른 공간에서 또 다른 내가 그 춤을 따라 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관람자가 아니며 완전 객관적인 나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이 컸습니다. 자꾸 션윈쮜핀을 통해서라도 무용동작을 보고 또 보라는 조언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그것은 아마도 내 다층적 구조물에 강대한 정화를 진행하고 청리를 가속하는 것이겠구나! 또 한 내 안의 신적 요소를 일깨우는 것이겠구나! 하는 통찰이 솟아났습니다.

이어서 제가 매우 애호하는 [서유기-오공과 홍해아]입니다.

당승 일행이 겪는 9*9=81난은 우리 모든 존재가 득도원만을 함에 겪어야 하는 고험과 관문을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당승 삼장이나 오공 팔계 오정 용마 등은 모두 한 존재 속의 주원신과 정념과 각종 사람 마음 등을 심볼화 한 것입니다. 한 사람 속의 사정도 의심과 조급증과 독단과 원망 등이 교차하며 삐걱거리는 경우가 많을 수 있는데 그럴 때면 고험이 그 균열된 틈을 타고 파고 들어와 난을 극대화 시키곤 합니다. 홍해아는 그 고험 중 불기운을 뜻하는 극단성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나중에 오공이 온갖 능력으로 홍해아와 대적을 하나 역시 한 존재의 힘만으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지요.

하늘이 우릴 언제나 지키고 도우려 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내 뜻대로 하되 막히면 가피를 요청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들의 사부 격인 관음보살이 적시에 나타나 홍해아를 간단히 굴복시키고 데려가는 것으로 그 난은 종결됩니다.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 하나 그건 낮은 층차의 논리일 뿐이고 광대한 층차에서는 언제나 도가 마를 압도합니다.

[노란 꽃 피었네]-라는 무용은 우리 내면의 황금빛 불신을 자극하는듯한 황홀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서시]에 대한 무용극은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은원이 교차하는 엄청난 스토리인데 우리가 간파할 것은 역시 색심이라는 거대한 함정에 대한 경고가 있고 또 한 사람 정이 내포한 엄청난 교란작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왕이 서시에 빠져 희희낙락하다가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되고 서시를 지키려 하다가 칼을 맞고 죽어가며 부르르 떠는 모습에 내 안의 심장 한켠이 동조되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서시 또 한 목적을 이루고서도 사람정에 휘말려 고통스러워 하는 그 마지막 모습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음식점]-이라는 무용극은 가볍고 경쾌해 보이는 스토리입니다. 한 큰 음식점에 주인의 포부와는 달리 직원들이 전부 수동적으로 제각각 게으름과 딴짓을 하니 결국 위생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폐업 통고를 받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많은 직원이 울며 떠나는데 남은 몇몇 직원과 주인이 정신을 차리고 식당을 부흥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뭉쳐 잡된 자아를 죽이고 정체적인 협력을 하게 되면서 다시 음식점은 개점 허가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단순해 보이지만 이게 우리 각각의 내면 상태를 빗댄 것이라고 본다면 얼마나 섬칫한 경고인가요?

음식점의 폐업은 더 이상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 존재의 훼멸 아니겠어요?

우리가 정념을 지켜가지 못해 온갖 잡된 사상을 받아들이고 하고싶은 것을 마구 하며 게으름으로 한없이 떠밀려 간다면 바로 그 음식점과 같이 너저분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직원은 줄었으나 일치단결하여 주동적인 자세로 전부 주인이 된 것처럼 일하는 모습은 감동이었습니다. 그것은 또 개인을 넘어 수련인들의 정체적 협력에 관한 중대한 메시지라고도 보입니다.

말세의 죄악-이라는 현대 중국배경 무용극은 션윈에서 꼭 한 자리를 차지하는 대법 박해에 관한 진상극입니다. 이번 극에서는 한 가족 한 남매 사이에 누이는 대법을 믿게 되고 오빠는 경찰이 되어 겪게 되는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역시 이 것도 한 존재 안에서 이리 저리 움직이는 번뇌와 갈등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때로는 뜨거운 가슴으로 믿고 행하고 공부하지만 길어지는 시간과 고험의 틈바구니에서 때로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회색 경계인이 되어 눈먼 박쥐처럼 이리 저리 헤매다니기도 하지요. 그러다가도 결국 바른 정념 하나가 우뚝 일어서면 일제히 하늘이 개이며 모든 측면에서 은총의 빛이 쏟아집니다.

[사람마음이 가로막네]-라는 가곡은 가열찬 창법 뒤에 깃든 주옥 같은 내용이 귀에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사람 구하기 어렵지 않으나 사람마음이 가로막네~그 사람마음이 무엇입니까? 가사에 나오듯 바로 사람의 어두운 측면이 지어낸 무신론이며 진화론이며 현대관념 등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잘못 형성된 요지경같고 헛꿈 같은 논리를 죽자고 고집하여 놓지 못합니다.

몽골 젊은이들의 [신을 위한 춤]-이 춤은 예고에서 잠시 맛을 본 바가 있지만 워낙 우리 맥박을 농울쳐 울리는 힘이 있습니다. 싸이의 말춤은 이 청년들의 말춤과 독수리 춤에 비하면 뭔가 그 골수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상이 사라진 자리에 어지러운 박자만 남아있는 격이랄까요? 하긴 그게 현대 음악이며 예술계의 모습입니다.

[복숭아 따는 선녀들]-이라는 춤은 그냥 복숭아 수확하는 동네 아가씨들의 춤이 아닙니다. 서왕모가 주관하는 반도회에서 선인들을 초대한 대 잔치에 천도복숭아를 따서 드리는 그런 위대한 행사이지요. 여기에는 무병장수가 기본으로 깔려 있으니 이미 육도윤회계의 차원을 넘어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션윈 관객들에게 드리는 선물의 의미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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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후 독주 [천년을 기다린 무대]-얼후는 두 현으로 이뤄진 악기라지요? 우리나라의 해금과 같은데 그 힘이 뼛속 깊은 데서 그 얼줄을 뽑아내어 긋고 퉁기는듯한 깊은 맛이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천년을 기다려 온 그 무대를 우리 삶의 전면에서 맞이하고 있습니다.

각자 맡은 연기를 한번 신명 나게 해 볼까요?

[선행의 보답]-이라는 무용극은 한 방종했던 청년이 어부에게 잡힌 큰 잉어를 자기 돈을 주고 사서 방생해주고 나중에 그로 인해 큰 복을 받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로 보면 단순해 보일지 모르나 이것은 그 복이라는 것도 그저 돈이나 병 없음 만이 아니라 총명함과 지혜라는 다양한 각도로 올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포인트는-이런 스토리의 뼈대를 우리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그 인과응보, 선행선과의 메커니즘을 활성화 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늘은 사람의 마음만 본다-는 이야기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여성고전무]는 말 그대로 신의 춤사위에 울리는 여운이며 휘황한 잔향입니다.

[기쁨을 주는 삼현금]은 중국 소수민족 이족의 악기와 춤입니다. 현악기와 더불어 무용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격조 높은 무용은 보기 드문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커다란 긍정성을 발현시키고 삶의 열락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제공스님] 무용극은 션윈에서 손오공과 거의 투톱을 만들어가는 제공이라는 케릭터의 부각이 눈에 띕니다. 마치 채플린을 즐겁게 발현시킨 동양적 캐릭터인데요.

제공은 초능력적 공능을 가진 속세의 성자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성자 입장에서 속세에서의 어우러짐과 권선징악을 재미나게 보여주어 성스러움의 엄격한 틀을 조금 더 부드럽게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을 다해 기다려온 것]-이라는 소프라노 곡은 마치 다른 하늘공간에서부터 비롯한 음률이 자비의 터널을 타고 이곳 사바세계까지 타고 넘어온 듯한 미묘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내용은 역시 말겁말법시대의 변이된 현상과 그걸 넘어서는 존재들의 위대한 사명을 노래합니다.

마지막 [대원만]이라는 무용극은 역시 현대 중국이 배경입니다. 한 경찰이 대법제자를 잡으려는 과정에서 다리를 다치게 되는데 그가 선과 악이 교차하는 질풍노도 속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위대한 힘을 실감하게 되면서 의식의 깊은 축이 움직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때로 벗어나고 때로 늘어지고 때로 타락하는 자아의 분열, 그 과정에서도 한가닥 자비의 끈이 언제나 이어져 있는 그 느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또 한 아직도 구도 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드리워진 기회의 동아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션윈은 1년에 한번 찾아옵니다. 그런데 매번 자기 몸을 온전히 불사르고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불사조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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