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선

in #kr6 years ago

매일 아침 김포공항역에서는 강남으로 출근하기 위한 사람들이 급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 출근하던 날의 놀람이 아직도 여전한데, 급행과 일반 열차에 맞춰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나뉜 곳에 사람들이 네줄로 서있었다. 먼저 일반 열차가 도착해 초록색 일반열차 줄에 서있던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떠났다. 일반 열차 문이 닫히고 나자 깜짝 놀랐는데, 빨간 줄에 서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앞도 보지 않고 다같이 한걸음 내딛더니 스크리 도어 앞에 바짝 붙어 섰기 때문이다. 중간쯤 서있던 나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라 가만히 서있다가 뒷 사람의 눈짓에 엉거추춤 한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그리고 급행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다들 자리에 앉기 위해 우다다다다 뛰어 들어갔다. 어리둥절 하면서도 밀려 들어와 빈 자리에 앉고 나서 보니 노리던 자리를 놓친 사람들이 여기저기 빠르게 움직이며 지금이라도 남은 자리를 찾아 앉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제 이것도 몇달째 보다보니 이젠 익숙해져서 어쩌다 맨앞에 서있으면 일반열차 문이 닫히자마자 나도 스크린도어에 코를 붙이고 선다. 어쩌다가 핸드폰 보느라 깜빡하고 한발짝 앞으로 안가면 뒤에서 한걸음 내딛던 사람이 살짜쿵 부딪히며 신호를 주기 때문에 놓칠 일도 없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자리에 앉는걸 집착하나 했다. 근데 그럴만 하다. 앉지 못하면 강남까지 가는 40여분동안 지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키가 작은 나는 고개도 들 수 없는 채로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민망하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뜨끈뜨끈하게 손하나 까딱 못한채 서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럴때면 문득 서대문 형무소의 세워놓은 관과 같은 곳에 가두는 고문이 생각난다. 모두가 매일 출퇴근 약 두시간여 자발적으로 형무소의 세워놓은 관 안에 들어가는 꼴이 다름없지 않나. 매번 늦어서 고문 당하며 출근하던 와중에 어쩌다 5분 일찍 나온 오늘은 앞에서 두번째로 서있던 덕분에 여유롭게 자리에 앉았다. 근데 앉자마자 한 여성분의 분노에 가득찬 소리가 온 지하철에 울려퍼졌다. 자신이 지하철에 타려 할 때 한 남성분이 우산으로 자기를 막았다며 자신을 막고 자리에 앉은 남성분에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분노를 뿜어내고 계셨다. 근데 그 소리지르며 화를 내는 여성분의 목소리에, 또 내가 빨간줄에 서있었는데 왜 나를 막았냐고 따지는 그 이야기가, 억울하다는 그 여성분의 외침 속에 여성분의 삶의 울분이 느껴졌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빨간 줄에 서라고해서 섰는데도. 앞쪽에 서있어서 자리에 앉을 수 있겠다 기대했는데도. 나와 같은 기대감을 갖고있던 누군가가 나를 막아서. 나와 같이 뛰어들던 누군가가 나를 방해해서. 자리에 못 앉은게. 얼마나 억울할까. 얼마나 화가날까. 그 자리에 못 앉아서 앞으로 40여분동안 점점 좁아지는 관속에 겨우 서서 가야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끔찍할까. 사람들이 그만 싸우라고 나를 말리는데. 난 아직도 억울하고 화가나고 두려운데.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걸까. 오늘은 분명 그 여성분이나 남성분이나 서로 하루종일 억울할것 같다. 여성분은 일반행이 떠나고 나서 남은 세줄의 급행 열차에 선 사람들이 스크린도어에 다닥다닥 붙어있느라 바닥의 빨간줄이 남아 있는걸 모르셨던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 억울했을 거다. 자기는 제대로 빨간줄에 섰는데 가운데 줄 없는 곳에 서있던 사람들만 다 앉아 가고 있으니. 남성분이 아무리 설명해도 억울했을거다. 남성분도 억울했겠지. 설명을 해도 모르시니까. 이미 그분은 화가 나 계셨으니까. 우산으로 막았는지 안 막았는지는 보지 못해서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매일 아침 수 많은 사람들이 땅값 싼 서울의 끝자락에서 땅값 비싼 서울의 남쪽으로 9호선을 타고 가고 있으니까. 9호선 관속에서 고문 당하는 우리는 누구에게 화를 내야하지 못하는 채로 매일 속안에 화를 쌓은 댓가로 통장에 찔끔찔끔 숫자를 써내려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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