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세입자> : 안개 속을 서성이는 마음

in #kr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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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후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사진 출처 - 부천 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법정으로 들어서는 ‘린젠이’(막자이)는 색을 잃은 사람이다. 계속 무언가를 잃어버린 끝에 아무런 것도 남지 않은 사람. 그 창백하고도 무력한 사람에게 판사는 ‘살인 그리고 마약소지 혐의’라는 뜨거운 죄명을 붙인다. 하지만, 린젠이는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그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 죄목의 뜨거움이 무색할 만큼 그의 온도는 조금도 올라가지 않았다. 영화 <친애하는 세입자>는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한 오라기마저 잃어버린 한 남자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남자는 어떤 시간을 거쳐 지금까지 온 것인가. 무엇이 그를 이렇게나 무력하게 만들었는가. 영화는 긴 시간동안 안개 속을 서성이던 린젠이의 자취를 따라간다.

린젠이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이제 막 9살이 되는 아들 요위, 그리고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과 함께 산다. 그가 사랑하는 남자 ‘리웨이’의 식솔들이다. 리웨이가 세상을 떠나고서도 린젠이는 오랜 시간 함께 했던 그의 가족 곁에서 머문다. 세 사람의 관계는 리웨이의 동생 ‘리강’이 등장하며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비록 빚을 지고 나가 살아 오랫동안 얼굴을 못 봐 어색한 ‘아들’이자 ‘삼촌’일 지라도, 혈육 앞에서 린젠이가 부르는 ‘아들’과 ‘어머니’라는 이름은 더 이상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리강의 등장으로 린젠이는 ‘가족’에서 다시 ‘세입자’로 밀려난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집을 탐내는 아들을 어머니는 탐탁찮게 대한다. 새해에 의례적으로 있는 가족식사에는 그를 앉히지만, 그에게 집의 자리와 권리는 내주지 않는다. 어머니가 빚을 남기고 도망간 막내, 리강에게 주는 마음이라는 건 혈육정도의 마음이었다. 요위의 마음도 할머니와 비슷하다. 두 사람 모두 리강에게 거리를 두지만, 린젠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의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세 사람은 시간은 물론 감정적으로도 강하게 얽혀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세 사람은 서로의 어깨를 매고서 리웨이가 없는 시간들을 버텨가고 있다.

린젠이와 요위, 할머니로 구성된 이 가정은 할머니의 죽음으로 급격하게 부서져나가기 시작한다. 리강이 돌아와 요위 명의로 된 집을 가지기 위한 ‘혈육의 권리’를 행사하면서부터다. 영화 속에서 혈육의 권리는 법의 권리보다 강하다. 요위는 린젠이에게 입양되어 둘의 사이는 법적으로 부자(父子)다. 할머니도, 요위도 법도 동의한 가족을 손쉽게 해체하는 것은 린젠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다. 리강으로부터 시작된 ‘린젠이-요위의 부자관계’에 대한 의심으로 린젠이는 갖은 수모를 겪는다. ‘동성애 남성이 아들을 키우는 것이 안전한 일인지’로부터 시작된 의심은 눈덩이를 굴리듯 커지며 린젠이의 삶을 마구잡이로 뒤흔들어 놓는다.

마침 할머니의 몸에서 헤로인 활성제 성분이 검출되며 그에게는 살인의혹이 덧붙여진다. 리강과 경찰은 무례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피의자 린젠이’를 파헤친다. 요위에게 가정 폭력이나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은 물론, 린젠이의 회사까지 찾아와 그의 사건을 조사하는 바람에 그의 피의자 신분이 공개적으로 드러나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린젠이의 관계의 수족(手足)들이 잘려나가는 상황에서 그는 요위와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린젠이와 요위가 캠핑을 간 곳은 린젠이와 리웨이가 자주 오곤 했던 산이다. 린젠이와 요위는 산 아래로 흐르는 구름을 바라본다. 리웨이가 죽었던 날, 린젠이는 저 구름 속에 있었다. 그날 리웨이는 고산증을 앓고 있었다. 린젠이가 말렸지만, 그는 산행을 계속하고자 했고 산 중간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머문다. 그 때 린젠이가 밝힌 고백으로 인해 리웨이는 안개 속을 헤매다 목숨을 잃는다. 린젠이는 고산증에 생사를 오가는 리웨이를 어깨에 메고 절박한 마음으로 안개 속을 헤맸었다. 어쩌면 린젠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요위와 함께 바라봤던 그 구름 속 어딘가를 절박하게 헤매고 있을지도. 그는 리웨이의 죽음에 관련된 죄책감과 사랑과 추억 그 어딘가를 내내 맴돌고 있다.
요위와 캠핑을 떠난 곳에 경찰이 찾아들고, 린젠이는 살인과 마약소지, 두 가지 혐의로 연행된다. 린젠이는 혐의에 대항할 의지가 없다. 죄와 법이라는 강력한 벽 앞에서 그는 무력한 존재다. 피아노 학원의 선생님, 한 가정의 가장, 요위의 두 번째 아빠, 병들어가는 할머니의 처참함을 곁에서 가장 공감했던 사람. 그 어떤 것도 될 수가 없다. 사람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그는 앞의 모든 것들을 부정당했다. 의지란 희망이라는 틈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보았을 때 생긴다. 하지만 린젠이가 린젠이인 이상 어떤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세입자라는 단어도 지우고 그저 죄인이기로 한다.

영화는 ‘요위’를 열쇠삼아 해피엔딩으로 향하며 끝을 맺는다. 하지만 가족이 모두 해체된 채로 끝나버리는 엔딩이 모두에게 행복한 엔딩이었을지는 의문이다. 요위와 린젠이는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한다. 린젠이가 죽은 리웨이를 위해 쓴 노래가 있다. “나는 아직 나는 법을 몰라. 그랬잖아 나한테, 날개가 있다고. 그래서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고. 세상을 내려다보면 행복할까.” 날개가 있어도, 어디든 날아갈 수 있어도 사랑을 잃은 그는 행복한지를 모르겠다. 그 뒤에 요위가 붙인 노래는 이렇다. “아직도 하늘을 날 수 있어? 너는 날개가 있잖아. 잘 모르는 곳으로 날아갔다가 비를 맞으면 집이 그립지 않을까? 넌 행복해. 네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면 나도 행복할까. 꿈에서라도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혈육에 묶여 날아갈 수 없는 요위가 안개 속을 헤맸던 린젠이의 자유와 행복을 기원하는 노래. 꿈에서라도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린 요위의 목소리가 끝나가는 이야기를 다시금 끌어당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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