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새해의 기운을 받은 지도 벌써 다섯 달 째다. 지난해는 어땠고, 그 전 해는 저땠고, 솔직히 어렴풋이 생각날 뿐이지만 확실한 것 하난 백 퍼센트 만족스러운 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시 글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다. 아니지, 못 할지도 모른다고. 지난 8월에 사실 터키에서의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갔었었지. 한국에 가면 새로이 취업도 하고 헬조선을 맛보며 이리저리 삶에 치여 살기 바쁠 것이라 생각했었다. 실제로 일도 시작했었고. 그런데 거짓말처럼 두 달 만에 다시 터키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때는 말이다, 운명인 줄 알았다. 내가 터키에 사는 것이 사실은 살아야'만' 하는 것이구나 했었다. 왠지 이번에는 될 것 같기도 했고? 다니던 직장도 관두고 가족도 뒤로한 채, 떨어질지 붙을지도 모르는 면접을 두고 비행기에 몸을 싣었으니 다들 대단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운 좋게 취업이 결정 나고 다시 직장인이 된 지 7개월째가 되었다. 그래도 터키어 배워놓으니깐 기회가 올 때 잡을 수는 있구나 싶다. 여긴 터키니까.
중요한 건 말이다. 요즘 내가 그다지 행복하지가 않다.
한국에서 벗어나서, 그렇게 좋아하던 나라에서,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일도 적고, 아무 간섭도 안 받고 혼자 살면서 뭐가 문제일까 싶겠지. 실제로 내 친구들은, 특히 터키 애들은 좋겠다고, 앉아 있다가 월급 날에 월급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아니, 그건 뭔 꿈도 없는 후진국 마인드냐고! 나는 항상 스스로를 계발하고 싶단 말이다. 퇴근 후 보람 있는 일이 기다리는 삶을 살고 싶다고! 근데 지금 내 인생은 내가 바라던 것과 한참은 동떨어져있다. 그래 뭐, 일 찾더니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 수 있겠지. 근데 인생은 그저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게 다가 아닌 거였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그렇게 취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일을 찾았다고 해서 행복해진 건 아니다. 사실 내 행복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게 아닌가 하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해보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건 변함없는 거니까.
1. 혼자 사는 건 힘든 거였다.
왜 누구나 한 번쯤은 부모님 간섭 없이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나야 물론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더 큰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었지만. 12월부터였나 일하면서 짬짬이 sahibinden.com에서 집 나온 거 보고 몇 번은 찾아가 보고, 그 전까지는 월세방 구하는 게 그렇게 힘든 줄 몰랐었기 때문에 2개월이 가도록 마음에 드는 방이 없어서 울기도 했고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사실상 다 내려놓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방을 보던 중-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발견하고는 "Yeter artık!!!"을 선언한 후 바로 이사를 감행했다. 그 전의 살던 집은 이제는 구 남친이 되어버린 그와 가족의 집이었고 물론 2년여간 사는 동안 무지하게 많이 얻어먹었었다. 하지만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결혼하기 전부터 마치 합가한 신혼부부처럼 2년여를 살고 보니 이제는 내 삶을 살아야겠다 싶었었다. 1월 전까지 이사를 하기로 약속했던 터인데 늦어지는 바람에 눈치도 엄청 많이 봤었다. 눈치를 줘서 봤던 건지 내가 그냥 본 건지... 아니 나라고 안 나가고 싶은 게 아녔는데 그 2달이 너무나도 지옥 같았다. 시어머니 -당시에는- 가 되실 분이 의사 출신의 당차고 사실은 따뜻한 분이지만 워낙에도 갈라타 타워보다 더 높은 콧대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잘 주시는 분이었고 난 모든 게 불편했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혼자 집 계약부터 해서 이사, 살림 장만까지 단숨에 끝내놓고 "와- 드디어 봄이 시작되나 보다." 했더랬다. 그때까진 몰랐었지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예상치 못 했던 문제들이 하나둘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걸...
1-1. 밥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맞다, 나 요리 못하지.
독립하기 전까지는 '그' 가족들이랑 같이 사니까 밥도 잘 챙겨 먹고 후식도 먹고, 게다가 이 모든 것이 공짜였다. 이스탄불에서 한국 식재료를 찾기는 '불가능'은 아니지만 조금은 번거로운 일. 더군다나 원하는 모든 재료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매일 같은 음식 먹기 딱 좋다. 가격 또한 물 건너온 재료라고 해서 한국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나 같은 일인 가구한테는 손해다 손해. 터키 음식은 내가 누르귤 아블라, 프나르 아블라 그리고 안네한테 어깨너머로 배웠으나 역시 혼자 해보기에는 내 의지가 너무 부족한 것. 집이 좁다 보니 거실 겸 주방이 하나인데 내 요리 세포는 좀 로열층인지 "이런 곳에서는 요리 못해!"라고 이미 이삿날부터 선을 그었다.
1-2. 면역력 최저, 온몸이 종합 병원.
나는 면역력 하나는 끝내 주는 사람이다. 각종 전염병은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걸려 본 적 없으며 감기도 일 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할 정도로 상당히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가끔 정신이 조금 아플 순 있어도 신체는 튼튼한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말이다, 이사하자마자 온갖 병이란 병은 다 걸려서 - 물론 시간이 하필 딱 떨어진 것들도 있었지만, 치과라던가 - 내과, 치과, 산부인과, 피부과... 난리도 아니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회사에서 보험을 들어줘서 사립 병원을 가곤 있는데 의사가 더 유능한가는 모르겠고 병원 시설이 좋다 보니까 보험이 돼도 여전히 비싼 건 마찬가지다. 비싸니깐 의사들이 친절할 뿐 친절한 의사가 있기에 비싼 건 아닌 것 같다. 자본주의 의사 같으니라고. 어쨌든 감기는 나았고 이는 수리했는데 뒤집어진 피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자궁도 건강하지가 않댄다. 이럴 때는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로폴리스를 섭취해줘야 한다는데 이 터키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같이 G20에는 들어도 아직 여러모로 후지다. 정말 후지다. 프랑스 산 약국 화장품들이 아무래도 여기서 가깝다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가격보단 싼데 문제는 내가 원하는 제품이 안 들어올 때가 있다. 참고로 얘네가 말하는 크림형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찾는 제품마다 없다고... 참고로 비비크림 하나 살려고 대안의 대안의 플랜 B의 플랜 B를 찾곤 했었다. 없으니까. 없. 으. 니. 까. 요즘에는 비타민이나 미네랄 제를 찾고 있는데 찾는 브랜드가 없다. 아무래도 캐나다나 미국 등 해외 제품이라 아이허브 등 해외 직구를 통해 구매해야 할 듯한데 아이허브가 터키에서는 금지라고 한다. 덕분에 회사에서 검색열만 올리고 있다.
1-3. 외로움에 사무치는 나날.
외롭다. 그냥 외롭다. 친구가 있고 회사에 가서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도 집에 돌아오면 외롭다. 내가 원래 한국에 있을 때부터 혼자 밥도 잘 먹고, 영화도 잘 보고 혼자 만의 시간 가지는 걸 굉장히 좋아하곤 했었는데 여기서는 친구가 있어도 한국 친구들처럼 철든 애들이 별로 없고, 무엇보다도 가족이 없고, 말 많던 내가 집에 돌아가서 재잘 재잘 하루 일과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이젠 없고. 없다, 아무것도 없다. 나만 외딴섬에 떨어진 기분이다. 새삼 나를 약 2년간 따뜻하게 보듬어 준 '그' 가족들이 너무 고맙게 느껴진다. 함께 있을 때도 알고 있었지만 정말 남인데도 너무 많은 은혜를 입었다.
타지에서는 친구랑 남자친구의 힘이 되게 커진다. 가족의 힘은 말할 것도 없는데 어차피 진짜 가족을 대신할 가족을 찾기란 엄청 어려운 거니까. 친구들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 만하지는 못하다. 이 말을 애들이 들으면 서운해하려나? 그런데 사실인걸. 평일 퇴근 후 친구를 만나기란 꽤 큰 결심이 서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지키며 해도 제대로 못보다 보니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피곤해지기 십상이다. 그렇게 일이 끝나면 통근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기껏해야 주말 정도 친구와의 만남 -그것마저도 적어도 2일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이 가능해진다.
남자친구와 나는 장거리 연애 중이다. 이스탄불에서 비행기 타고 1시간여 떨어진 이즈미르에 사는 그가 매일, 매시, 매분, 매초 보고 싶다. 우리는 기껏해야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일 수로는 6 - 7일 정도 함께할 수 있는데 보통 주말에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과 주말에 약속 잡기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 모두들 나랑 같은 동네에 살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도 함께 하고 카흐발트도 함께 하고. 내 친구들은 왜 다 유럽 쪽에 사는 것이며 남자친구는 어째서 이즈미르에 있는가! 최악의 시추에이션이 아닌가! 이즈미르에 있는 그가, 한국에 있는 가족이, 친구들이, 미치도록 그리워질 때면 내가 뜻하지 않아도 인간이 숨어들어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한없이 빠져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나를 꼭꼭 숨기고는 다음 날, 월세를 내기 위해서는 회사를 가야 한다는 사실이 뇌를 울릴 때까지 현실로 나오지 않는 거다. 그들 중 딱 한 사람만 옆에 있었더라도 티 나게 더 괜찮았을 텐데.
2.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이래서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가 보다. 취준생 친구들은 내가 부럽다고 한다. 나도 그랬었다. 무슨 일이든 좋으니 시켜만 준다면 -보수도 평균만 된다면- 들어가서 배우겠다, 뭐든지 흡수하겠다던 나였는데...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었다. 물론 학생 때나 취업하기 전에는 목표가 '취업'이기 때문에 월급만 괜찮다면 외적인 요소는 생각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지.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구직은 굉장히 신중해야 하고 이것저것 따져봐야 된다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면 난 언론과 심리학 복수 전공자이다. 사회과학도로서 인간과 사회현상에 친근함을 느끼는 나는 지금 한 기업의 회계부서에서 각종 리포트를 업로드하고, 비용 정산을 준비하며 각종 번역 및 통역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사실 터키어 구사 자로서 번역과 통역은 내가 원하던 일이기도 했지만 재무, 회계 분야에서 전혀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어만 알면 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렇다 보니 보람은 커녕 뭔가를 배우는 느낌도 들지 않는 거다. 가끔은 혹시 내가 의지가 없어서 새로운 걸 못 찾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정말이지 의욕이 안 선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카피-페이스트만 하다 보면 내가 정말 정규직으로서 이 월급을 받아도 되나 싶다.
요즘 들어 헤드헌팅 컴퍼니라던가 직접 회사로부터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는 연락이 자주 온다. 만약에 이즈미르에 있는 회사였다면 직무 내용만 따져 보고 이직을 해버릴지도 모를 것 같은데 이스탄불이다 보니 굳이 만나 볼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물론 개 중에는 현재 맡은 일보다 더 내 적성에 잘 맞을 듯한 포지션도 있다.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아, 행복해지려고 그 경쟁 사회를 벗어나 여기로 도피해 왔는데 올 해는 연초부터 힘들더라니 5월이 되도록 아직도 힘이 든다. 내 나이 스물 일곱, 아직은 젊다지만 언제 쯤 안정적인 길로 접어들 수 있을까, 오늘도 상념에 잠긴다.
그냥 내 사람들이 보고싶은 나날들.
05.05.2017 어린이 날
장 유진
I translated it by google. I kind of understand you. A big city like istanbul makes people feel lonely sometimes. Life is hard also. Work is routine. But you need to focus on positive things. My first years in Istanbul was hard too. But then you find things that makes you happy.
I can offer you a hobby like a ceramic course in your leisure time and visit historical places with a friend, walking around bosphorus (I really love it), movies, books. A gym also is refreshing. Do not be sad, pretty girl. Take care... :)
Hello, thanks for your kind comment. So you are also living in Istanbul, Turkey. Nice to hear :) Yes, as you said i need to more focus on positive things, have to be more active and stop being at home alone while complaining like I am tired, exhausted. Oh, yes I started searching for things that i can do in my free time nowadays. A ceramic course? sounds great! thank you for encouraging me. I will pick myself up and move on. You take care too :)
pretty!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한다는건 힘든 일이다
는 말이 너무나 와 닿네요. 먼 이국땅에서 홀로 딛고 선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전인데, 전문영역이 아닌 일까지 도맡아야 한다는 것은 더욱더 힘들겠어요. 회사 막내도 본인이 지원하지 않은 재정 총무 파트로 들어와 좌충우돌 하며 버티던데, 딱 이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에게 꼭 맞는 일을 찾는 것도 어렵지만 아예 안 맞는 일을 하는 것도 고역이네요. 취업 준비 하시는 분들한테는 지금은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성이란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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