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_ 저녁밥

in #kr7 years ago (edited)

딸년이라는 다소 과격학 단어를 썼다.  기분이 엄청 상했다.

나를 계속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를 싸가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참 예쁜 말이라고 비꼬아 주었다.


엄마는 밤 열시가 되면 혼자 바빠오기 시작한다.

곧 퇴근할 아빠를 위해서다. 

아빠를 위한 따뜻한 밥을 하며, 반찬을 하며 

나에게 화를 낸다. 혼자 이렇게 바빠야겠냐며 화를 낸다.

이렇게 피곤한데도 본인이 밥을 해야겠냐며 짜증을 낸다.


나는 아빠를 위해서 뭐든 하고 싶지 않다.

쉬는 날이면 차피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사람인데, 

밥먹을 때 매 번 몸만 오는 사람인데 

내가 아빠의 밥을 차려주기 위해 태어난 딸인 것처럼 나를 대한다.


집에서 아빠는 아무것도 안해도 이기적이라는 이야기 한 번 안듣는데

아빠의 밥을 준비 하지 않는 난 항상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누군가에게 내 노동을 대신 해달라고 하고 싶지 않다.

나도 누군가를 위한 노동을 무조건적으로 하고 싶진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집에서 내 것만 한다.  

엄마는 딸년이 세상 개인주의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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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머님 말씀이 맞는걸요.

누군가가 밤 열시까지도 집에 오지 못하고 밖에서 고생해서 벌어다 주는 돈으로 배 굶지 않고 추운 바깥에서 떨 필요도 없고 옷도 사입고 나가서 데이트도 하는 풍요를 누리면서 자신은 그 사람의 노력에 대해 최소한의 감사 표현도 하기 싫은 모양인가봐요.

나는 당신 아버지가 참 딱해 보여요.
자식이 가난에 눈물흘릴 일도 없고 치열한 바깥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아픔을 겪을 필요가 없는 나름 풍요와 여유가 있는 삶을 주기 위해 당신의 나이 만큼이나 긴 시간동안 자신을 희생한 결과가 바로 당신이라고 하면요.

최소한의 감사 표현은 꼭 밥차려 주는 것만으로 이야기 할 수 있나 싶어요.
또 밥으로만 표현해야한다면 왜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감사의 표현으로 밥도 차리지 못할까요.

당신의 글을 읽다보면 저에 대해 너무 단정짓고 말씀하시는 글이 많아 어디부터 풀어 함께 이야기해야할지 난감하기도 하네요.
치열한 바깥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아픔은 왜 아버지들만 겪는다고 이야기하는지
이해하기 힘들구요.

제가 아버지와 함께 하고 싶은 건
집안일들이에요.
저희 집은 모두가 바깥에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한사람이 독박 노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
본인이 먹은 것 정도는 치울 수 있는
쉬는 날은 에너지 남는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집 환경이 풍요와 여유가 있는 삶을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빨래도 안 하고, 밥도 안하면서
그런 것들은 기계가 다 하는데
뭐가 힘드냐고 말만 하는 아버지가 아니구요.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다시 맞춰지려면
(=밤 열시에 집에 들어오면 밥을 차려줄 마음과 힘이 생기는)
각 자가 할 수 있는 양의 노동은 한 후에야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요리를 하고 가사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 하나요? 외벌이가 아니라 다들 밖에 나가서 일을 하니까 아버지도 가사일에 참여를 해야 공평하다는 거죠?

그러면 당신도 아버지 처럼 밖에 나가서 아버지 만큼 노동하고 아버지 만큼 벌어오는게 어떨까요? 그래야 공평하겠죠?

근데 아버지는 당신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노동을 하며 당신에게 투자를 했으니 당신이 돈을 벌기 시작한 순간부터 독립을 했다고 가정을 하더라도 이미 당신에게 투자한 금액이 상당합니다. 따라서 지금 벌이가 아버지 벌이 몇배는 되고 아버지에게 한달에 몇백만원 정도는 용돈으로 꽂아드릴 수 있어야 "공평하게 집안일도 갈라서 합시다" 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게 안되면 지금 펼치는 주장은 아버지가 당신에게 투자한 최소 이십년치 기회비용의 상당수는 그냥 없는 걸로 퉁치자는 얘기 밖에 안되요. 날로 먹으려는 심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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