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2013 >

in #kr6 years ago

<본 리뷰는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잉여가 되고 싶은 우리들에게"

한때 잉여인간 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 있다.

남아서 쓸모없는 것들을 지칭하는 잉여라는 표현을
사람에게 사용한 용어다.

단편소설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이 말은
사회에서 어떤 역할도 맡지 못하고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남아있는 인간을 뜻했다.

이러한 잉여인간이라는 표현은
사회에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를 '불량품' 취급을 하는 현실을 내포하고 있는 듯해
안타까움을 주기도 한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음악을 하는 코이치의 아버지가
코이치에게 개인의 일생보다는
'세계'를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라고
조언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한 사람을 잉여라고 규정하고
인간을 사회를 존속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대하는 사회가 '세계'인 것이다.

이 영화는 자신들을 잉여인간이라
지칭하는 Surplus의 유럽 여행기를
다룬 영화다.


무모하게 유쾌한 그들의 이야기
그들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대학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시작했던 일들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좌절하기보다는
어쩌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잉여의 나날을 보내보자며
무작정 유럽으로 향한다.

그들이 가진 거라고는
카메라 몇 대와 노트북,
그리고 호텔 영상 제작으로
공짜 유럽여행을 떠나겠다는
'꿈'밖에 없다.

지도를 사야 할 돈으로 치킨을 사 먹고도
그들이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꿈을 가지고 평생 살아가라'
'꿈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와 같은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그들에게 꿈이란 그저
몸을 쉬게 할 수 있는 침대와
시금치와 김치가 놓인
밥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영화는 그들의 무모하도록
유쾌한 여정을 잘 담아내고 있다.


잉여가 아닌 잉여들의 이야기

사실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의 주인공들은
잉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촬영에 능하고,
편집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특수 효과와 콘티를 짤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들을 잉여라고 지칭하는 것은
'돈'이라고 하는
물질적인 것을 기준으로 삼은 결과다.

그들은 돈이 없어서
히치하이킹을 하고,
노숙을 한다.

뮤비 촬영을 위해 찾은 런던에서도
돈이 없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촬영하는 신세가 된다.

하루 12시간씩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 촬영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들은 절대 잉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많은 것을 해낸다.
그들은 여러 편의 영상을 제작했으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다양한 경험을 체험한다.

언론에서도 그들을 취재하기 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무모함'이
무쓸모함을 의미하진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히치하이킹과 동료들

영화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부러운 점은 그들이 이룬 결과가 아닌
동료들이다.

다툼도 있었지만 그들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무모함에 같이 도전할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큼
든든한 게 있을까.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
부끄러움 때문에 히치하이킹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노련하게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목표를 정하고 이를 이루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과정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비행기는 빨리 갈 수 있지만
많은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은 무작정 걷고
많은 것을 남겼다.

싸우는 과정,
화해하는 과정을
찍고 또 찍었다.

퍼즐 조각처럼 쪼개진
장면들이 모여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두 다리와
한 대의 카메라였을 뿐이다.

그들은 앞으로 많은 목표를 정할 것이다.
그 목표는 장기적인 것일 수도
단기적인 것일 수도 있다.

때로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목표일수도,
외국 가수의 뮤직비디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히치하이킹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여러 번의 히치하이킹을
거듭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옆에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이 함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영화 '잉여들의 히치 하이킹'은
청년의 무모한 모험이라는 소재를 통해

무모하게 살지 못하는 우리들과
무모한 것을 나쁜 것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세상에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선사한다.

무모하고 위태로운 선택들이
우리를 용기 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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