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꿈의 해석 - 3
[중편소설] 꿈의 해석 - 3
나는 오늘도 여지없이 새벽 세 시에 눈을 떴다. 새벽의 거리는 어두침침하고, 가로등만이 처량하게 서서 불을 밝히고 있다. 밤 열 시에 전봇대 아래에서 잠이 든 취객은 추운지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나는 성에가 잔뜩 낀 창문을 통해 흐린 세상을 바라보다가 창을 조금 열어 깊은 한숨을 몰아쉰다. 하얀 입김이 공기를 통해 퍼져 나간다. 겨울의 찬바람에 뼛속까지 시린 듯하다. 어머니가 다락방으로 올려다 준 두꺼운 이불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흩날린다.
나는 손을 턱에 괴고 한참 동안 거리를 내려다보며 잠든 취객을 관찰했다. 그러다가 집 근처까지 다가온 앞집 여자를 발견하곤, 얼른 이불로 얼굴을 감추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속도가 생명이다. 혹시라도 그녀가 창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자신을 관찰하는 나를 보면 성 도착증 환자라고 의심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슬쩍 눈만 창틈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앞집 여자를 관찰했다. 가슴까지 아름답게 흘러내린 갈색 머리와 손목에 가득한 장신구들을 봐서 여자는 꽤 여성스러울 것이다. 더구나 그녀의 아기 같은 피부는 슬쩍 연분홍빛을 띠고 있어 살구꽃을 연상케 한다. 언젠가 여자가 거리를 지나갈 때 내 방에 있는 식물도감을 펼쳐놓고 살구꽃과 그녀를 비교한 적도 있었다.
여자는 어김없이 새벽 세 시에서 네 시 사이에 집으로 돌아온다. 여자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봐서 일이 힘들거나, 허약체질이어서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자의 직업도, 이름도, 목소리도 모른다. 단지 앞집에 사는 것과 여자라는 것, 그리고 살구꽃과 매우 흡사한 외모를 지녔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여자는 핸드백 속에서 짤랑거리는 열쇠를 꺼내고 녹이 잔뜩 슨 녹색 철문을 열었다. 곧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는 집 안으로 사라졌다. 여자가 사라지고 나자 텅 빈 거리의 공허함이 내 가슴속에 밀려들어 왔다.
나는 다시 이불에 들어 누웠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 남은 여자의 잔상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어떨 때는 생생하게 여자의 얼굴이 기억나지만, 지금처럼 머릿속에 계란같이 밋밋한 타원형밖에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괴로움에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다시 일어났다. 도무지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으면, 나는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기도 한다. 마치, 정신적 발작을 일으키며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른 반 고흐처럼 말이다. 무엇 때문에 내가 그녀의 형상을 가상의 그림으로 그려놓고 마음속 화폭에 담으려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겉모습이 예쁘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와 같은 냉정한 예술가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함부로 애정에 빠지지는 않는 법이다. 그렇다면 나는 새로운 방식의 예술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법 말이다.
나는 다시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나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앞집 여자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곧 상상 속에서 여자를 내 마음대로 움직였다. 목소리도, 성격도, 행동방식도 모두 내가 원하는 대로다. 나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다.
나의 상상이 만들어낸 세계는 시간도 공간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번화가에 있는 아름다운 카페에서 그녀와 차를 마시고 싶으면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으로 향한다. 또, 공원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며 시원한 바람을 같이 맞고 싶으면 그렇게 한다. 물론, 상상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미 내 머릿속에도 세계화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파리의 에펠탑 꼭대기에서 번지점프를 하기도 하고,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에서 암벽 등반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한다. 가끔, 상상 속에서 여자는 세렝게티 초원에 가서 입 벌린 사자의 치아를 관찰하고 싶다는 제의를 하곤 하는데 그것만큼은 거절한다. 사자의 입에서 고기 썩은 냄새가 진동할 것 같아서다.
그렇게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는 깊은 수면으로 빠져들면서 더는 내가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말 그대로 더 이상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이 꾸어지는 것이다. 잠깐 꿈속에서 헤매고 있노라면 곧 어머니가 문 아래의 큰 틈으로 아침을 넣어준다. 마치 감방의 식사 통으로 죄수의 밥을 밀어 넣듯이,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시간은 정확히 새벽 여섯 시다.
“아침 먹어라!”
어머니는 간단한 말만 남기고 곧장 일터로 나가셨다. 걸어 집에서 십오 분 거리, 버스 정류장으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재래시장이 어머니의 일터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25년째 생선 장사를 하고 계시다. 요즘 들어 경기는 나빠진데다가 재래시장 옆으로 대형할인점이 들어서는 바람에, 하루 동안 판매량이라고는 고작 고등어 몇 마리가 전부다.
어머니는 요즘 죽은 생선 냄새를 맡고 날아드는 파리와의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 장사하는 시간보다도 더 길다는 불평을 하신다. 그러고 보면, 예전만 해도 추운 겨울이 되면 파리나 모기는 그 종적을 감추어 버려 사람들에게 곤충 잡기 놀이를 더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곤 했는데, 요즘의 파리와 모기는 계절을 잊어버렸다. 나는 올여름에 식물도감에서 우연히 보았던 파리지옥과 같은 식충식물을 생선가게에 놓아두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머니에게 말해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어머니에게는 다락방에서 꼼짝 않고 있는 아들이 안 그래도 못마땅할 텐데 그런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여 굳이 어머니의 속을 뭉그러뜨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내 방에는 파리는 아니지만, 모기 한 마리가 빙빙 돌아다니며 극한의 겨울을 나와 같이 견뎌내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저 모기는 이미 내 손바닥에 의해 벽에 찰싹 달라붙어 화석이 되어 있겠지만, 운이 좋게도 저 녀석은 나의 강력한 호기심을 자극한 덕분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 난방 시설 때문에 실내 온도가 따뜻해서 모기가 겨울철에도 생존할 수는 있겠지만, 내 방은 여느 방처럼 훈기가 없다. 볕이 잘 들지 않고 난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생을 유지하고 있는 내 방의 모기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과연 모기에게도 생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존재하는 것일까.
어쩌면 모기와 나는 서로 위로하며 함께 지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내 방 안을 이리저리 비행하다 따뜻한 빛이 나는 전등에 옮겨붙는 저 모기도 혼자기 때문이다. 모기는 외부의 위험을 피해 거주지를 내 방으로 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내 방의 모기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내 피를 빨아 마셔야 하겠지만 난 녀석에게 기꺼이 수혈 할 마음이 생겨났다. 그리고 가끔 쓰는 내 일기장에 작은 칸을 만들어 모기가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지를 기술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이번 겨울을 버티고 내년 여름까지 생존한다면 어쩌면 학회에 보고할만한 사례가 되지 않을까? 라는 망상도 잠시 해본다
나는 다시 시선을 어머니가 문틈으로 넣어준 아침으로 돌렸다. 반찬의 종류는 매번 똑같다.
쌀밥, 계란프라이 한 개, 김치, 그리고 시래기 국.
가끔은 반찬이 질릴 법도 한데 나는 결코 반찬에 대해 불평해 본 적이 없다. 나는 큰 키에 비해 비쩍 마른 체형인데도 불구하고 식성이 좋다. 어릴 때는 반찬투정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식성이 바뀌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바짝 마른 북한 아이들과 소말리아의 아이들이 나온 그 불행한 사진을 본 이후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음식을 다 비운 식판을 들고 다락방 문을 열어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와 주방싱크대로 향했다. 그리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식판을 빡빡 씻었다. 이 시간 때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일하러 나간 시간이므로 집은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잠시 바깥으로 나오는 데에도 전혀 부담이 없다.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급할 때를 대비해 쓰는 내 방의 요강도 씻고, 세수도 한다. 아침 식사와 간단한 세수를 모두 마치고 나자 시계는 정확히 아침 일곱 시 삼십 분을 가리켰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나의 일과가 시작된다. 나는 내 은신처로 다시 숨어들어 세평 남짓한 공간에서 앉은 자세로 몸을 풀고, 앞서 설명했던 방식대로 아무 책이나 하나 집어 들었다. 분명히 집어든 책은 수십 번에서 수백 번은 넘게 읽은 책일 테지만 접어둔 페이지들을 마구잡이로 펼쳐보며 빨간색으로 밑줄 친 구절의 조각들을 내 마음대로 이어 붙였다. 내 마음대로 이어 붙인 조각들은 제 마음대로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내고 기존의 지식을 뒤바꿔 놓는다. 나는 미술적 재능뿐만 아니라 이야기꾼이 지니고 있는 감성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알 수 없는 쾌감에 빠져든다. 한참 동안 이야기 짓기 작업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시계는 오전 열한 시를 가리킨다.나는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이불을 덮어쓴 채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전 열한 시가 되면 어김없이 앞집 여자가 기지개를 켜면서 그녀의 거실 창으로 고개를 내미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앞집 여자는 추위와는 상관없이 거실 창을 활짝 열고, 하얀색 민소매만 입은 채 거침없이 양팔을 쭉 뻗어 올렸다. 비록 여자의 머리는 조금 부스스하지만 내 눈에는 참 아름답게만 보인다. 여자의 팔목에 있는 장신구가 햇빛에 반사되면서 내 눈을 자극했다. 빛에 눈이 따가워 눈을 수차례 깜빡거렸다. 그리고 자극받은 눈을 비비고 낫더니 그 사이 여자는 창가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여자가 잠시 나왔다가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몇 초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 밀려드는 아쉬움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나는 한참을 물끄러미 창밖만 내려다보았다.아무리 책을 읽고 이런저런 재밌는 놀이를 하거나 생각해내도,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만 같은 느낌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다. 아마도 혈기왕성한 청춘을 누리고 있는 죄로 그에 합당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공허함이 사라질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위대한 화가들이 그린 걸작들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분야의 책들을 한데 모아 내 다락방을 채워준다고 해도 나는 그것들을 거부하고 차라리 앞집 여자와 10분간 대화할 기회를 택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 심정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상황이다. 나는 나의 상상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살고 싶어 하면서도 사랑만큼은 상상이 아닌 실재와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괴로움에 떠는 자아처럼, 나는 상상과 실재 사이에서 상당한 갈등을 느끼며 괴로움에 울부짖는다.
내가 이불 속에 드러누워 마음속 공허함과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문틈으로 반찬이 담긴 식판이 스윽 하고 들어왔다. 점심이다.
“점심 먹어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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