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서번역) 호쿠토, 어느 살인자의 회심(27-28)

in #kr7 years ago (edited)

어머니는 아버지의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고 맞고,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얼굴을 짓밟혔다. 어머니는 차츰 아버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가 맞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두시간이나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나도 어머니와 똑같이 벌을 받았으면. 빨리 때려주었으면. 호쿠토는 벌을 기다리는 심정이 되었다.
눈에 핏발을 세우던 아버지가 거실 소파에서 일어선 시각은 11시가 다 되어서였다. 벙긋 웃더니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잔뜩 헝클어진 어머니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미사코, 미안해. 애를 어떻게 올바르게 지도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지금 너한테 가르친 거야. 알겠어? 이제 나는 목욕하러 갈 거니까, 이번엔 네가 호쿠토를 제대로 가르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는 악마 같은 사람이었다. 공포심을 어떻게 이용해야 사람이 가진 잔인함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훤히 꿰차고 있었다.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목욕탕으로 갔다.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어머니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어머니의 공포심이 잔인함으로 바뀌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휘청거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그리곤 부엌 싱크대에서 옷걸이를 집어 들었다.
"너만 없었으면 저 사람이랑 헤어질 수 있었어. 대체 넌 왜 태어났니!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어머니는 악에 받혀, 말이 끝날 때마다 꿇어앉아 있는 호쿠토를 사정없이 때렸다. 그렇게 15분 동안 호쿠토는 온몸을 얻어맞았다. 옷걸이에 맞은 자리가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정작 더 아픈 것은 마음이었다.
원치 않는 아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아이. 버려진 아이.
옷걸이로 맞을 때마다 고맙습니다,하며 고개를 숙이는 호쿠토의 마음속에서는 그 말들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그 밤, 호쿠토는 잠들 수 없었다.
새벽 3시가 지나자 호쿠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 꺼진 집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깊이 잠든 것 같았다. 맨발로 현관으로 가서 샌들을 신고 소리 나지 않도록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집은 11층이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소리에 부모님이 깰까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호쿠토는 아파트 뒷산으로 향했다. 늦가을의 도시는 한밤이 되면 기온이 0도 가까이까지 내려간다. 더 이상 집에는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젠 싫었다.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아이라 없는 편이 낫다면, 이제 그만 사라져 주자. 이 정도 추위라면 분명 성공할 거야. 얼어죽을 때는 고통없이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고 했어.
호쿠토는 힘없이 뒷산 산책로를 올라갔다. 입김이 바람에 나부끼는 머플러처럼 목 주위에 휘감겼다. 20분 정도 걷자 정상에 다다랐다. 그곳엔 수은등이 켜진 빈터가 있었다. 마치 흑백사진같은 황폐한 빈터로, 있는 것이라고는 벤치와 자동판매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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